자연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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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활동이 세계에 내재한 질서에 관심을 둔다면, 그 질서를 포착하는 방식은 법칙에 의존할 것이다. 그리고 법칙은 과학적 설명과 예측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대의 주류 설명 이론인 헴펠의 설명 모형에 따르면, 과학적 설명은 논증의 형태를 갖추면서 법칙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설명항이 피설명항을 (연역적으로) 도출하는 경우에 설명이 성립하는데, 이때 설명항에는 하나 이상의 법칙적 진술이 포함되고 실제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요구를 만족시켜야 한다. 법칙은 보편진술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그렇다면 법칙은 보편진술 자체인가? 아니라면 그것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나? 자연 법칙의 본성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 주류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규칙성 이론이고, 다른 하는 필연성 이론이다. 전자는 법칙이 기본적으로 참된 보편진술이라고 보고, 거기에 추가적 단서를 덧붙이는 것으로 법칙의 성격과 역할을 해명하려한다. 반면, 후자는 법칙이 참된 보편성을 넘어 필연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그 필연성이 성립하는 방식을 해명하고자 한다. 먼저 규칙성 이론의 현대적 후계자인 Ayer의 견해를 살펴보고, 필연성 이론의 주창자인 Dretske의 견해를 살펴보자.

규칙성 이론

현대 영국 경험론의 대표적 학자인 에이어는 흄의 인과 개념을 법칙에 적용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흄은 인과를 분석하여 그것이 시공간적 근접성, 시간적 계기, 그리고 항상적 연접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철저한 경험론에 비추어볼 때, 필연성이란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무리 원인을 면밀히 관찰해도 그 속에서 결과를 찾을 수 없다. 즉, 원인과 결과가 별개의 것이라면 그것들 사이의 논리적 연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에이어는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법칙이란 보편적 진술(예, (x)(Fx⊃Gx))에 다름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법칙에 어떤 필연성이 있다면, 그것은 예외가 없다는 것을 뜻하는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흄적인 규칙성은 너무 단순해서 여러 문제에 부딪힌다는 것을 인정한다. 첫 번째 문제는 공허한 법칙의 문제로 실질함축(⊃)의 역설을 야기한다. 예컨대, ‘날개 달린 말은 힘차다’는 보편진술은 전건이 거짓이기 때문에 사소하게 만족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전건이 참이라는 전제를 덧붙인다면 관성 법칙과 같은 자연 법칙을 배제하게 된다. 관성 법칙의 경우에 실제로 외력이 없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지만 법칙적 보편진술로서 인정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제는 함수적 법칙의 문제이다. 예컨대, 기체의 부피와 온도를 연결하는 보일의 법칙의 경우에(x=Fy형태), 변수들은 모든 가능한 값을 가질 수 있지만 그 값들이 모두 자연에서 발견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것을 법칙이라고 주장할 때는 단지 실제로 발견된 값들의 함수적 연결 뿐 아니라, 가능한 값과 그에 대한 함수값의 연결로서 해석한다. 두 가지 문제는 모두 가능 사례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엄격한 경험론적 입장에서 법칙이 보편진술이라는 주장은 현실적 사례들만을 고려한 보편진술이라는 말과 같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가능한 사례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이는 자연 법칙에 대한 우리의 직관을 위배한다. 결국 흄적인 인과의 연장선 상에 있는 법칙이론은 가능 사례들을 포괄하는 법칙을 정당화해주지 못한다.

에이어는 이러한 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의 인식적 태도에 호소한다. 흄에 따르면, 사람들이 필연성을 경험하지 못함에도 인과에 필연성에 부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항상적 연접을 경험하면 마음에 어떠한 경향성이나 습관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에이어는 심리적 기제가 법칙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통찰을 받아들여, 법칙의 본성은 보편적 진술과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적 태도에 있다고 주장한다. 규칙성 이론에 대한 대표적 반론 중 하나는 그것이 법칙과 우연적 일반화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에이어는 흄적 규칙성 이론이 그런 구분에 둔감함을 인정하면서, 법칙적 일반화와 우연적 일반화는 사실적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라고 주장한다. 즉, 어떤 사람이 특정한 보편진술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중요한 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함수적 법칙의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보편자 이론

드레츠키는 법칙이 참인 보편진술이라는 주장을 일축한다. 그는 법칙의 역할로서 6가지를 제시하는데, 불투명성, 객관성, 예측, 설명, 반사실문, 그리고 필연성이다. 그리고 법칙을 보편진술로서 파악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역할을 적절히 수행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i)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은 법칙적 진술의 불투명성이다. 보편적 참은 동연적 술어로 치환되는 것에 대해 닫혀있다. 그러나 법칙의 경우, 동연적 술어로 치환한다고 해서 그 역시 법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법칙의 개념은 보편적 참과 다르다.
(ii) 법칙은 객관적이고 인식대상과 독립적이다.
(iii) 법칙은 사례에 의해 입증될 수 있으며, 예측의 유용한 도구가 된다.
(iv) 법칙은 단순한 사례들의 집합이 아니라, 현상을 설명하는 토대이다.
(v) 법칙은 반사실문을 지지한다.
(vi) 법칙은 그저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말해준다(필연성).

드레츠키 견해에 따르면, “모든 F는 G이다”라는 법칙은 F임과 G임이라는 속성들 사이의 관계이다. (예, F임 → G임) 암스트롱과 툴리와 유사하게, 법칙을 보편자들 사이의 관계로 간주함으로써 이 이론은 보편자 이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자연 법칙은 개별자들에 대한 보편적 일반화가 아니라, 보편자들에 대한 단칭 진술이다. 더 정확히 말해, 법칙은 속성들의 내포들 간의 외연적 관계이다. 이렇게 이해된 법칙은 보편적 참을 함축하지만,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드레츠키에 있어, 법칙을 동연적 술어로 치환한 결과가 법칙이 아닐 수 있다는 불투명성 주장은 법칙이 외연들 사이의 관계가 아님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그는 법칙이 인식적 개념이 아니라고 본다. 법칙을 언제 처음 인지하게 되었는지와 관계없이 법칙은 언제나 법칙이다. 법칙은 반사실문을 함축하지만 보편적 진술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그가 강조하는 법칙의 필연성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속성들(n+1-수준) 간의 관계는 우연적이지만 그것들 안(n-수준)에서는 or 그 사례들 수준에서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입법, 사법, 행정의 유비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법칙의 필연성이 확보된다면, 설명과 예측, 반사실문 지지 등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필연성 이론이 어떻게 반사실문을 지지하는지 보자. 법칙에 의해 F라는 속성이 G라는 속성에 연결되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개체 O가 F의 속성을 갖는다면, F임과 G임 사이의 연결로 인해 O은 G라는 속성도 얻게 된다. 그래서 법칙 진술은 어떤 속성을 가진 사물의 집합에 대해 말하기보다 속성 자체를 말함으로써 실제 세계에 대한 참된 일반화보다 더 넓은 범위에 대해 설명할 수 있고, 가능세계로까지 확대된다. 설명이나 예측 활동이 우연적 일반화가 아니라 법칙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법칙이 지닌 필연성에서 찾을 수 있다. 법칙은 단지 현실세계에서만 적용되는 보편적 참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에 설명의 토대가 되고 예측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법칙은 반사실적 조건문을 지지해야한다는 우리의 직관에도 부응한다.

그러나 이 이론에도 여러 한계가 존재한다. 그의 이론은 개별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속성 혹은 보편자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F임이 G임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F라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G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F임 → G임”으로부터 “모든 F는 G이다”가 타당하게 도출된다고 할지라도, “어떤 것이 F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G이어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도출되는지 의문이다. 그는 논증 대신 유비를 들었을 뿐인데, 그의 유비가 적절한지도 문제이다. 그의 유비에 따르면, 헌법 자체는 우연적이지만, 일단 우연적 관계가 성립하면 각 구성원들은 헌법을 따라 강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헌법이 강제력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위반가능한다. 하지만 자연법칙의 강제력은 위반가능하지 않은 강제력이라는 것이 우리의 직관이다. 반대로 확률법칙은 개체 수준의 위반을 허용하지만, 헌법의 강제력은 개체의 위반도 허용하지 않는다. 즉, 헌법의 강제력은 자연법칙의 강제력과 유비하기에 적절한지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또한 보편자들의 관계로서의 필연성이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보편자들 간의 우연적/외연적 관계가 한 단계 내려오면서 개별자 수준에서 필연성을 갖게 된다는 것인데, 그 필연성이 논리적 필연성은 아니면서 어떤 의미에서 필연적인지 더욱 분명치 밝혀져야 한다.

드레츠키 본인도 인정하듯이 필연성 이론은 플라톤주의에 대한 우려가 있다. 그는 “법칙이 존재한다면”, 보편자들이 존재하고 그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가 법칙이라고 주장한다. 보편자 존재론을 수용하면서 존재론적 상승(ontological ascent)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는 인식의 차원에서 존재 자체의 차원으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인식적 차원의 문제는 남겨져 있다. 보편자들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는 규칙성이 법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법칙의 형이상학적 본성을 해명했다고 할지라도, 어떤 가설이 과연 보편자들 사이의 관계를 포착하는지 아닌지를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체계적 접근

브레이스웨이트는 비흄적인 철학자들에 반대해, 자연에 필연적 연결에 대한 추가적 요소가 없다는 흄적 논제를 방어하고자 하면서도, 자연법칙과 우연적 일반화를 의미 있게 구분할 수 있는 이론을 제안하고자 한다. 중요한 지점은 가정법적 조건문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있다. 브레이스웨이트는 법칙이 가정법적 조건문을 함축하기 위해 필연성에 호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보편진술의 기원에 대한 믿음을 고려함으로써 필연성 없이도 가정법적 조건문을 주장할 때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전략은 <A이고 B가 아닌 것은 없다>라는 보편진술을 단지 참인 문장이 아니라, 확립된 과학적 연역체계에 있는 상위 가설에서 연역된 것으로 다루는 것이다. 보일의 법칙을 예로 들어보자. 부피와 인력이 없는 기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알려지기 전에, 반 데르 발스 방정식이 별도의 근거를 가지고 확립되었고, 이 함수적 법칙에서 보일의 법칙이 연역될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보일의 법칙은 부피와 인력이 없는 기체가 존재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확립될 것이다. 가정법적 조건문이 주장하는 바는, 부피와 인력이 없는 기체들이 보일의 법칙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명제는 그런 기체가 없다는 사실과는 독립적으로 확립되었음을 말한다.

그는 자신의 분석을 통해, 가정법적 조건문의 문제 뿐 아니라 자연법칙과 우연적 일반화의 구분도 다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연법칙의 조건으로 다음을 제시한다. “확립된 가설 h는 다음의 조건을 만족할 때 법칙적이다. (그리고 법칙적 가설은 참일 때 자연법칙이 된다.) 조건: 가설 h가 하나의 확립된 과학적 연역체계 안에서 이론적 개념을 포함하는 상위 가설로서 등장하거나, 혹은 한 확립된 과학적 연역체계 안에서 h 자체를 위한 직접적 증거가 아닌 경험적 증거에 의해 지지되는 상위 가설에서 연역된 것으로 등장해야 한다.” 이러한 분석은 자연법칙이 특정인이 특정 순간에 가설이 확립된 것으로 간주하는 방식에 의존하게 된다. 그래서 가설의 법칙성은 그것이 어떻게 증거들에 의해 지지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위의 분석은 가설의 유일한 증거가 자신의 사례 증거인 경우를 법칙에서 배제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런데 위의 자연법칙의 조건은 역설적으로 보이는 귀결을 갖는다. 예컨대,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는 확립된 과학의 하위 수준에 있을 때는 자연법칙이지만, 상위 가설(모든 동물은 죽는다)은 자연법칙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브레이스웨이트는 이런 결과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법칙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어떤 가설이 자연법칙으로 간주되려면, 자신의 사례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근거가 자신의 사례 밖에는 없다면 빈약한 설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례와는 독립적인 증거들이 있어야 일반적 명제는 자신의 사례들을 설명할 수 있다. 이는 이론적 개념을 포함하는 상위 가설에 법칙성을 부과하는 것을 잘 어울린다. 그런 상위 가설은 가설연역적으로 제안된 것으로, 하위 수준의 일반화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참된 과학적 가설이 하위 수준의 가설이나 그 가설의 사례들에 대한 설명적 기능을 제공할 때 자연법칙으로 간주된다고 말할 수 있다.

체계적 접근 vs. 보편자 이론 = 인식적 법칙 개념 : 존재적 법칙 개념
= 형이상학적 부담을 덜면서 드레츠키의 기준 일부 만족 : 존재론적 상승(& 인식론적 부담)
= 역사적 가변성 : 몰역사성과 불변성

카트라이트의 비판

카트라이트는 기존의 규칙성 이론과 필연성 이론의 공통적인 전제를 공격한다. 브레이스웨이트의 체계적 접근이든, 아니면 드레츠키의 필연성 이론이든 간에 법칙의 사실적 참(factually true)은 공통된 전제였다. 그러나 카트라이트에 따르면, 법칙의 이상적 형태로 간주되는 근본법칙들은 사실적으로 참이 아니다. 이는 흄 전통에 대한 결별 선언임과 동시에 심각한 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주장에 대한 주된 논거는 사실성(factual content)과 설명 사이의 거래(trade-off)에 있다. 법칙이 설명에서 사용된다는 실천적 상황을 존중할 때, 근본법칙은 사실적으로 참이 아니라는 것이다.

카트라이트가 모든 법칙에 대해 반실재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떤 현상론적 법칙들이 사물이 운동하는 방식을 정확히 기술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상론적 법칙이 그러한 기술의 정확성을 얻기 위해서는 매우 제한된 범위에만 적용되어야 한다. 카르라이트의 주된 목적은 무제약적인 근본법칙에 대한 실재론적 입장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녀가 제시한 중력과 전자기력에 대한 사례를 보자. 중력 법칙이 참이라면, 그것은 사물들의 운동을 기술하고, 실제적인 힘을 예측할 것이다. 그러나 중력이 작용하는 거의 모든 물체들은 전기적으로 대전되어 있어서, 전자기력의 영향을 받는다. 액면가만 따진다면, 중력 법칙은 거짓이다. 그것만으로는(전자기력과의 협동 없이는) 사물들의 운동과 힘을 올바로 기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력 법칙이 여전히 참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법칙의 적용 범위를 좁혀서 (대전되지 않은) 중력만 작용하는 물체들에만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중력 법칙이 설명할 수 있는 대상을 급격히 줄이고 설명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별 쓸모가 없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우리가 설명에 사용하는 법칙들은 거짓이거나, 아니면 법칙들은 참이지만 설명에는 별 쓸모가 없다.

이러한 접근에는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있다. 기존의 견해들은 사실적 참인 법칙에 근거해서 설명 활동이 이루어진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법칙에 대한 이론과 설명 이론이 정합적으로 짜여진다. 그러나 카트라이트는 사실적 참이 아닌 법칙에 근거하여 설명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함으로써, ‘설명’이 무엇인지부터 입장을 달리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

참고문헌

관련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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