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우주 측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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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상세 부록 4절.

고대 천문학의 가장 흥미로운 기술적 응용 중 하나는 직접 잴 수 없는, 다시 말해 평범한 자로는 잴 수 없는 우주의 거리와 크기들을 측정하는 데 천문학을 사용한 것이다. 이러한 거리 측정은 대부분의 다른 응용 사례들보다 훨씬 즉각적으로 이 세계관의 생산성을 잘 보여 준다. 이는 그러한 측정들이 의존하고 있는 수학적 계산들은 그 개념 체계의 일부 핵심 요소들이 참이 아니라면 모든 물리적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평평한 원판이든 구형이든, 별들은 정말로 일주권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이러한 겉보기 운동을 묘사하는 기법들은 그것이 어떤 개념적 토대에 기초해 있든 유용하다. 그러나 아래의 방식으로 지구가 하늘에 대한 관측으로부터 결정될 수 있는 길이의 둘레를 가진다는 것은 오직 지구가 정말 구형일 때만 말이 된다.

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 만약 지표면 위에서 S가 A의 정남쪽에 있다면, 거리 AS가 지구 둘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각 𝑎가 360° 내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똑같아야 한다.
지구의 둘레 측정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에 등장하기 때문에, 그러한 측정은 아마도 기원전 4세기 중엽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최초의 측정 결과만 알 뿐, 사용된 방법은 알지 못한다. 우리가 간접적으로라도 비교적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최초의 측정은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거대한 서고의 사서였던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의 측정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정남쪽으로 5000스타드 거리에 위치한 이집트 제2의 도시 시에네(S)의 정오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있던 날, 에라토스테네스는 정오 태양의 광선과 알렉산드리아(A)에 수직으로 설치한 그노몬 사이의 각 𝑎를 측정했다(그림 56). 그는 이 각이 완전한 원의 [math]1 \over 50[/math](또는 [math]7 {1 \over 5}[/math]°)라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먼 태양으로부터 지표면에 부딪히는 모든 광선은 평행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의 천정과 태양이 이루는 각 𝑎는 지구의 중심 O에서 S와 A가 이루는 각 AOS와 같다. 게다가, 이 각은 원의 딱 [math]1 \over 50[/math]이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에네에 이르는 거리는 지구 둘레의 [math]1 \over 50[/math]일 것이며, 총 둘레는 [math]50×[/math](알렉산드리아에서 시에네까지 거리)[math]=50×5000=250,000[/math]스타드일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에라토스테네스의 수치가 현대의 측정 결과(24,000마일)보다 대략 5퍼센트 작다고 믿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는 확신할 수 없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사용한 단위 ‘스타드’의 길이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알렉산드리아와 시에네의 알려진 위치도 그 단위를 정의하는 데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계산에 사용된 ‘[math]5000[/math]’과 ‘[math]1 \over 50[/math]’은 모두 읽기 쉬운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다듬어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림 57. 지구에서 달과 태양까지의 상대 거리에 대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측정. 달이 정확히 반달일 때, 각 EMS는 정확히 90°여야 한다. 따라서 각 MES에 대한 측정은 ES 대 EM의 비율, 즉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 대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의 비율을 결정해 줄 것이다.
두 번째 종류의 측정은 기원전 2세기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오늘날 그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예견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달이 정확히 반달일 때 지구에서 태양의 중심과 달의 중심이 이루는 각 MES를 이용해 태양과 달의 길이와 크기를 추정했다(그림 57). 달은 달에서 지구가 태양이 이루는 각 EMS가 직각일 때만 반달일 수 있기 때문에, MES의 크기는 달과 지구와 태양을 꼭짓점으로 가지는 직각삼각형의 모양을 완전하게 결정해 줄 것이다. 아리스타르코스의 측정에 따르면 MES=87°였고, 이는 ES:EM=19:1인 삼각형과 대응된다. 이에 따라 그는 지구에서 태양까지 거리가 달까지 거리의 19배라고 보고했으며, 또 달과 태양의 원반이 지구에서 똑같은 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그림 58), 그 크기도 19배라고 보고했다.
그림 58. 크지만 멀리 있는 태양과 그보다 작지만 가까이 있는 달은 지표면에서 동일한 각을 차지하고 있다.

상당히 다른 기법을 가지고 망원경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 현대의 측정은 아리스타르코스의 상대 비율이 20배나 넘게 작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ES:EM의 비율은 19:1이 아니라 거의 400:1에 달한다. 이러한 불일치는 87°가 아니라 89° 51'이어야 했던 각 MES의 측정에 기인한다. 실제로 그 측정은 매우 어려우며, 아리스타르코스가 이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기구로는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태양과 달의 정확한 중심 역시 결정하기 매우 어려우며, 게다가 달이 정확히 반달일 때를 확신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들에 비추어 볼 때, 아리스타르코스는 아마도 결과적인 비율을 믿을 만한 값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의 불확실한 관찰에 부합하는 각 중 가장 작은 각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고려들은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상당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태양과 달의 상대 거리 추정은 고대와 중세 내내 너무 작은 값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앞선 측정들로는 천문학적 거리의 비율만 나왔지만, 엄청나게 기발한 논증을 통해 아리스타르코스는 그것들을 절대 크기로 변환할 수 있었다. 즉, 그는 태양과 달의 지름과 그들까지의 거리를 스타드 단위로 계산할 수 있었다. 그의 결과는 최대로 지속되는 월식−달이 정확히 황도상에 놓여 있는 동안에 나타나는 월식으로 달이 지구 그림자의 정확한 중심을 통과하는 월식−에 대한 관찰로부터 도출되었다. 우선 그는 달의 모서리가 처음 그림자에 들어서는 순간과 달이 처음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사이에 지속된 시간을 측정했다. 이 수치를 그는 달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동안의 시간과 비교했고, 이로써 그는 완전히 보이지 않는 기간이 달이 지구의 그림자로 들어가는 데 걸리는 기간과 대략 똑같은 길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달이 지구를 가로지르는 지역에서 지구 그림자의 너비가 달 자체의 지름의 거의 2배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림 59. 월식 동안 이루어진 관찰을 통해 달과 태양까지의 절대 거리를 계산하기 위한 아리스타르코스의 작도.
그림 59는 아리스타르코스가 분석한 천문학적 배치를 보여 준다. 다이어그램에서 달은 지구의 그림자에 이제 막 완전히 들어선 것으로 그려져 있다. 달의 지름은 [math]d[/math](미지수)이므로 지구 그림자의 지름은 [math]2d[/math]가 되고, 지구의 지름은 [math]D[/math](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을 통해 스타드 단위로 알고 있음)이며,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math]R[/math](이 역시 알아내야 할 미지수)이다. 마지막으로, 태양의 지름과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달의 정확히 [math]19[/math]배이기 때문에, 태양 표면의 지름은 정확히 19d이고 지구에서부터의 거리는 정확히 [math]19R[/math]이 된다. 따라서 아리스타르코스와 우리의 문제는 미지의 거리인 [math]d[/math][math]R[/math]을 이미 스타드 단위로 그 값이 결정되어 있는 양인 지구의 지름 [math]D[/math]로 구하는 것이다.

다이어그램은 바로 밑변의 길이가 각각 [math]2d[/math], [math]D[/math], [math]19d[/math]이고 그 높이가 각각 [math]x[/math](미지수), [math]x+R[/math], [math]x+20R[/math]인 세 닮은 삼각형을 보여 준다. (실제로 세 삼각형의 밑변은 위에서 등치시킨 지름보다 아주 살짝 작지만, 삼각형이 위와 같이 극단적인 예각삼각형일 경우, 이 차이는 너무 작아서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가장 작은 삼각형의 높이 대 밑변의 비율은 가장 큰 삼각형의 높이 대 밑변의 비율과 같다. 즉,

[math]{x \over 2d} = {x+20R \over 19d}.[/math]

등식의 양변을 [math]38d[/math]로 곱하면 [math]19x=2x+40R[/math]이라는 새 방정식이 나오고, 결국 [math]x= {40R \over 17}[/math]이 된다. 다시 말해, 지구 그림자는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의 대략 [math]2 {1 \over 3}[/math]배만큼 달 너머로 더 뻗어 있다.

가장 작은 삼각형을 중간 크기의 삼각형과 견주면 또 다른 방정식이 나오며, 이로부터 [math]d[/math]가 결정될 수 있다. 이는 다음의 방정식을 낳는다.

[math]{x \over 2d} = {x+R \over D}.[/math]

[math]x[/math][math]40R \over 17[/math]로 치환하고 양변을 [math]17 \over R[/math]로 곱하면 다음이 나온다.

[math]{20 \over d} = {40+17 \over D}.[/math]

마지막 방정식으로부터, [math]d={20D \over 57}=0.35D[/math]가 도출된다. 즉, 달의 지름은 지구 지름의 [math]1 \over 3[/math]보다 조금 크며, 태양의 지름은 달의 지름의 정확히 [math]19[/math]배이므로, 태양은 지구 지름의 [math]6 {2 \over 3}[/math]보다 약간 커야 한다.

지구의 지름 [math]D[/math]는 알고 있으므로, 태양과 달의 실제 크기는 위의 계산을 통해 주어진다. 그들의 거리는 약간의 추가적인 계산을 통해 결정될 수 있다. 태양과 달의 원반은 모두 지구에서 [math]0.5°[/math]의 각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각각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완전한([math]360°[/math]) 원의 둘레에 [math]720[/math]개가 놓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원의 둘레가 (이제는 알고 있는) 달 지름의 [math]720[/math]배가 되는 원의 반지름이 되어야 하고, 태양까지의 거리는 정확히 그 [math]19[/math]배가 되어야 한다. 원의 둘레는 그 반지름의 [math]2 \pi[/math]배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math]40[/math]지구지름 남짓이어야 하고 태양까지의 거리는 대략 [math]764[/math]지구지름이어야 한다.

이 계산에서 사용한 방법은 정말 훌륭한 것으로, 그리스 과학자들이 시도한 최고의 노력을 잘 보여 주고 있지만, 그 수치 결과들은 한결같이 부정확했으며, 태양과 반달 사이에 벌어진 각을 구할 때 생긴 처음의 오류 때문에 태양에 관한 값들은 오류가 특히 심했다. 현대의 측정에 따르면, 달의 지름은 [math]1 \over 4[/math]지구지름 남짓이고 달과의 거리는 대략 [math]30[/math]지구지름인데, 둘 다 아리스타르코스가 계산한 값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러나 현재 태양의 지름은 지구 지름의 거의 [math]110[/math]배, 태양까지의 거리는 대략 [math]12,000[/math]지구지름으로 생각되고 있으며, 둘 모두 아리스타르코스가 제안한 값보다 훨씬 크다. 고대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측정에 다양한 보정이 이루어졌고 태양까지의 측정 거리에 중대한 오류의 가능성이 자주 인식되었지만, 이러한 우주의 크기에 대한 고대와 중세의 추정치들은 모두 대단히 작은 값으로 계속 유지되었다.

지구와 달과 태양의 상대 위치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크기와 거리를 구하는 아리스타르코스의 기법들은 프톨레마이오스적 우주에서든 코페르니쿠스적 우주에서든 동일한 정확성(혹은 부정확성)으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천문학적 크기에 대한 고대의 계산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직접적인 역할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몇 가지 간접적인 역할을 분명히 수행했는데, 모두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천문학적 측정을 해낼 수 있다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ᐨ프톨레마이오스 우주의 엄청난 생산성을 보여 주었다. 게다가 측정 결과들은 고대의 우주론이 그 구조의 세부 사항들이 점점 구체화됨으로써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데 일조했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달까지의 거리 측정이 천문학적 척도를 제공했다는 것으로, 중세 시대 동안 이 척도는 전체 우주 크기를 간접적으로 측정하는 데 사용됐다.

3장에서 일찍이 보여 주었듯이, 대개 중세 우주론자들은 각 수정 천구의 껍질이 자기 행성의 주전원을 포함할 수 있을 정도로만 두꺼우며 그 껍질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모든 공간을 채우게 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가설을 사용해 수리 천문학자들은 모든 껍질의 상대 크기와 두께를 계산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면 이 상대 크기들은 달 천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데 아리스타르코스가 썼던 방법을 사용해서 지구 지름이나 스타드 또는 마일로 변환되었다. 이는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과학자들이 탐구하고 이해했던 우주의 세부 사항을 보여 준다.

목차

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원문 :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