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점의 세차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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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상세 부록 2절.

그림 54. 분점의 세차 운동. 다이어그램 (a)는 천극이 2만6000년에 한 바퀴씩 도는 천구상의 원을 보여 준다. 원의 중심은 황극이며, 원의 모든 점은 이 중심으로부터 정확히 23.5° 거리에 있다. 다이어그램 (b)는 이슬람 사람들이 아홉 번째 천구의 도움으로 어떻게 세차 운동을 설명했는지를 보여 주는 그림으로, 그림에서 아홉 번째 천구는 가장 바깥 천구다. 이 아홉 번째 천구는 옛 여덟 천구 체계에서 항성 천구가 돌던 대로 23시간 56분마다 한 바퀴씩 돈다. 여덟 번째 천구는 별들이 있는 천구로, 2만6000년에 한 바퀴씩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돌며, 이 때문에 천극의 위치는 별들 사이에서 천천히 변화한다. 여덟 번째 천구 안쪽에는 토성 천구가 있으며, 이는 옛 체계에서처럼 나머지 행성 천구들을 둘러싸고 있다.
이 책의 본문에서 도입된 두 번째 기술적 단순화는 분점의 세차 운동에 대한 무시였다. 이는 1장에서 잠깐 언급한 효과로, 이로 인해 천극은 별들 사이에서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만약 우리가 한 천문학자의 생애 동안 이루어진 맨눈 관찰만 고려한다면, 우리의 단순화는 전적으로 적절했을 것이다. 맨눈 관찰은 그것이 시간적으로 상당히 떨어져 있지 않은 한 그것의 부정확성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두 세기 동안의 관찰을 보면, 별들 자체는 변함없는 상대 위치를 유지하는 반면, 그들이 도는 천극의 위치는 한 세기에 0.5° 남짓한 속도로 별들 사이를 조금씩 옮겨 다닌다. 훨씬 긴 기간에 걸쳐 반복된 관찰은 이 세차 운동의 패턴을 밝혀 주는데, 수 세기가 흐르는 동안 하늘의 극은 별들 사이에서 원을 그리며 조금씩 움직여, 2만6000년마다 한 바퀴를 완성한다. 이 원의 중심은 황극−황도면에 수직인 지름이 천구와 만나는 점−이며, 이 원의 반지름은 정확히 23.5°로, 이는 항성 천구에서 천구의 적도가 황도와 이루는 각도와 똑같다(그림 54a).

세차 운동은 기원전 2세기에 헬레니즘 시대의 천문학자 히파르코스에 의해 처음 알려졌으며, 처음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를 비롯한 이후의 여러 천문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이슬람 계승자들 대부분은 그 효과의 일부 형태를 묘사했으며, 고대의 체계에 아홉 번째 천구를 추가함으로써 그들은 그것을 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가장 인기 있는 설명은 그림 54b에 도식적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 그림은 전체 천구들 중 가장 바깥의 세 천구를 보여 준다. N과 S는 천구의 북극과 남극이고, 바깥쪽의 천구는 옛 체계에서 항성 천구가 돌던 대로 그 극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23시간 56분마다 한 바퀴씩 돈다. 다이어그램에서 가운데 천구인 다음 천구는 별들을 운반하는 항성 천구로, 그 위에 있는 황극과 바깥 천구의 극에서 23.5° 떨어진 두 점을 관통하는 축을 통해 바깥 천구에 연결되어 있다. 이 새로운 항성 천구는 바깥 천구에 의해 매일 한 바퀴를 돈다(이는 별들의 일주권을 설명해 준다). 또한 그 천구는 자기 자신의 느린 운동을 통해 2만6000년마다 한 바퀴를 돌며, 각각의 별들과 천극 사이의 관계를 조금씩 변화시킨다. 셋 중 안쪽의 천구는 토성의 천구로, 토성의 운동에서 주전원의 요소를 위한 공간을 허용하기 위해 두꺼운 껍질로 그려져 있다. 그 자체로 이 두꺼운 천구는 황극을 관통하는 축을 통해 항성 천구와 연결됨으로써 별들 사이를 다니는 토성의 평균적인 원운동을 설명해 준다.

고대와 중세의 천문학적 사고의 맥락에서 이러한 아홉 번째 천구를 이용한 세차 운동 설명은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러워 보인다. 사실, 이것은 지축이 2만6000년에 걸쳐 황극을 중심으로 반지름 23.5°의 원에 있는 모든 점을 차례로 향하는 점진적인 원뿔 운동을 한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설명에 비해 비교적 나은 편이다. 뉴턴이 세차 운동을 달의 중력이 지구의 볼록한 적도를 잡아당김으로써 일어나는 물리적 귀결로 설명하기 전까지,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자와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 모두는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불필요한 별도의 운동을 필요로 했다.[1] 따라서 세차 운동은 지구 중심의 우주에서 태양 중심의 우주로의 전환과 논리적으로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세차를 설명하는 문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것은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괴물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 일조했다. 세차에 대한 관찰 귀결들은 관찰이 몇 세기에 걸쳐 연장되더라도 매우 작으며, 따라서 자료상의 작은 오차는 전체 현상을 묘사하는 데 엄청난 변화를 낳는다. 히파르코스와 프톨레마이오스 모두는 세차 운동을 그림 54에 나타난 것과 질적으로 동일한 방식으로 묘사했지만, 그들의 많은 동시대인들은 그 효과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완전히 다르게 묘사했다.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는 세차 운동에 대한 수많은 다양한 묘사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것의 속도에 대해서는 합의된 의견이 없었다. 실제로 많은 천문학자들은 그 속도가 달라진다고 믿었다. 게다가 세차 운동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바뀐다고 믿은 중요한 학파도 있었는데, 이 효과는 트레피데이션(trepidation)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천문학자들이 이 현상의 진정한 단순성을 다시 인식할 수 있으려면 브라헤의 관찰이 필요했다. 코페르니쿠스는 그 상황을 조금도 개선해 주지 않았다. 그는 세차 운동 속도의 점진적인 변화와 그 밖의 실재하지 않는 효과들을 설명하기 위해 별도의 원들을 추가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세차 운동에 대한 고대와 중세의 천문학자들의 설명을 개선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것을 무척 개선하고 싶어 했으며 그러한 관심은 천문학의 개혁에 중요한 추동력을 제공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당시에, 세차 운동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실용 천문학의 가장 긴급한 문제였던 율리우스 달력의 개혁을 위한 주요한 전제조건이었다.

달력의 설계에 영향을 주는 세차 운동의 효과를 살펴보기 위해, 그림 54로 다시 돌아가 보자. 다이어그램이 보여 주듯이, 항성 천구에서 황도의 위치는 영원히 확정되어 있다. 천극의 위치 변화는 황도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이는 천구의 적도의 위치와 함께 황도와 천구의 적도가 만나는 분점의 위치를 변화시킨다. 세차 주기인 2만6000년 동안, 춘분점과 추분점은 황도를 따라 한 세기에 1.5° 정도로 느리게 움직인다. 따라서 태양이 황도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길이(소위 항성년)는 태양이 황도를 따라 춘분점에서 춘분점으로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태양년)과 정확히 똑같지 않다. 전자보다 20분 이상 짧은 후자는 측정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고정된 별이 아닌 상상의 움직이는 점을 기준으로 한 태양의 운동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양년은 계절년으로, 정확한 장기 달력을 설계하기에 앞서 정확하게 측정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태양년이다. 따라서 달력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 그는 세차 운동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곧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들이 엄청난 불일치를 보여 주었던 천문학의 한 측면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되었다. “수학자들은… 1년(계절년)의 일정한 길이를 설명하지도 관측하지도 못합니다”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언급 이면에 있는 것은 바로 세차 운동의 문제이며, 이 언급은 혁신의 동기를 설명하는 그의 목록 맨 앞에 자리하고 있다.

  1. 코페르니쿠스는 세차 운동을 설명하는 데 별도의 운동을 필요로 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다른 이유에서 이미 그러한 운동 하나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축이 1년 내내 처음과 평행하게 유지되도록 원뿔형 연주 운동을 사용했으며, 따라서 그는 이 원뿔형 운동에 1년보다 아주 약간 짧은 주기를 부여함으로써 세차 운동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후계자들은 단일한 궤도 운동이 지축을 영원히 일직선으로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천극의 위치 변화를 설명하는 데 2만6000년의 주기를 가진 추가적인 원뿔형 운동을 정말로 필요로 했다.

목차

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원문 :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