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혁명/행성들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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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2장

행성의 겉보기 운동

만약 태양과 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천체였다면, 근대인은 2구체 우주의 근본적인 교리들을 여전히 수용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코페르니쿠스가 죽고서 반세기 이상이나 지난 후의 일인 망원경의 발명이 있기 전까지, 분명 그는 그것들을 수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중요한 천체들, 특히 행성들이 있었고, 이 천체들에 대한 천문학자의 관심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주된 원천이다. 또다시 우리는 해석적 설명을 다루기 전에 관찰을 다룰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해석에 대한 논의는 우리에게 과학적 믿음의 구조에 관한 새롭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공할 것이다.

행성(行星, planet)이란 용어는 ‘떠돌이’라는 의미의 그리스 말에서 유래했으며, 이 용어는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기 이후까지도 별들 사이를 움직이거나 ‘떠도는’ 천체들을 상대위치가 고정된 천체들과 구분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스인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태양은 일곱 행성들 중 하나였다. 그 외에는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있었다. 별들과 이 일곱 행성들은 고대에 천체로 인식된 전부였다. 추가적인 행성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수용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1781년에야 발견되었다. 고대에도 잘 알려져 있었던 혜성은 코페르니쿠스 혁명 이전까지 천체로 간주되지 않았다(6장).

모든 행성은 어느 정도 태양과 비슷하게 행동하지만, 그 운동은 한결같이 더 복잡하다. 모든 행성은 별들과 함께 서쪽 방향의 일주 운동을 하며, 그 모두는 대략 자신의 원래 위치로 돌아올 때까지 별들 사이를 헤치며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한다. 운동하는 내내 행성들은 황도 근처에 머물며, 가끔 그 북쪽이나 남쪽으로 치우치기도 하지만, 황도 양쪽으로 8°의 폭을 가진 하늘의 가상의 띠인 황도대를 벗어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행성들 사이의 닮은 점은 여기서 끝나고, 행성의 불규칙성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달은 태양보다 빠르지만 덜 착실하게 황도를 돈다. 달은 황도대를 따라 한 바퀴를 완주하는 데 평균 27과 3분의 1일이 걸리지만, 실제 그 시간은 평균에서 7시간 정도까지 벗어날 수 있다. 더구나, 달 표면의 모양은 달이 움직임에 따라 현저하게 변화한다. 새 달[또는 삭] 때 그 표면은 완전히 보이지 않거나 매우 흐릿하며, 그다음에 얇고 밝은 초승달 모양이 보이고, 서서히 차올라 새 달로부터 대략 1주일이 지나면 반원 부분이 보인다. 새 달로부터 대략 2주 후에는 완전한 원형의 표면이 보이고, 이후 상의 순환은 거꾸로 진행되어, 달은 서서히 이지러져 앞선 새 달로부터 대략 1달이 지나면 다시 새 달이 된다. 상의 순환은 황도십이궁을 따라 도는 달의 여정처럼 되풀이되지만, 이러한 달의 두 가지 순환 주기는 상당히 어긋나 있다. 새 달은 평균 29.5일 간격으로 돌아오며(개별 주기는 평균에서 0.5일만큼 벗어날 수 있다), 이는 황도대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보다 이틀 길기 때문에, 잇따른 새 달의 위치는 별자리들 사이로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만약 어느 달에 새 달이 춘분점에서 나타난다면, 27과 3분의 1일 후 춘분점에 돌아올 때 그 달은 여전히 이지러지고 있을 것이다. 새 달은 대략 이틀이 더 지날 때까지 다시 나타나지 않으며, 그동안 그 달은 춘분점에서 30° 정도 동쪽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것들은 쉽게 보이며 간편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달의 상은 모든 달력 단위 중에서 가장 오래된 단위를 제공했다. 주와 달 모두의 원시적인 형태는 기원전 2천 년대부터 바빌로니아의 달력에 나타나는데, 이 달력에서 매 달은 초승달이 처음 보일 때 시작했으며, 달 순환 주기의 되풀이되는 ‘사분기들’에 따라 7일, 14일, 21일로 다시 나누어져 있었다. 초기 문명의 사람들은 시간 간격을 측정하기 위해 새 달들과 그 사분기들을 세야 했으며,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그들은 이 근본적인 단위들을 정합적인 장기 달력으로 체계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달력 덕분에 역사적 기록을 모아 편찬하고 특정한 미래의 날짜에 이행될 계약을 준비하는 것이 가능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단순하고 명백해 보이는 달의 단위는 아주 다루기 힘들다는 것이 밝혀졌다. 잇따른 새 달들은 29일 아니면 30일의 간격으로 나누어질 수 있고, 특정한 미래의 달의 길이는 수 세대에 걸친 체계적인 관찰과 연구를 필요로 하는 복잡한 수학적 이론을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었다. 다른 어려움들은 평균 달 주기와 태양 주기의 길이가 공약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그들의 달력을 태양이 관장하는 연간 기후 변화에 맞추어야 했으며,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12개의 음력 달(354일)로 이루어진 한 해에 가끔 13번째 달을 삽입하는 몇 가지 체계적인 방법을 고안해야 했다. 이는 고대의 천문학이 처음으로 봉착했던 까다로운 기술적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정량적인 행성 관측과 이론의 탄생은 다른 무엇보다 이 문제에 기인한다. 기원전 8세기와 3세기 사이−이 시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그리스 과학은 여전히 유아기에 있었다−에 이 난관을 최종적으로 해결했던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들은 장차 2구체 우주의 발달된 구조에 결합될 다량의 근본적인 자료를 축적했다.

달과 태양과 달리, 나머지 다섯 행성은 하늘에서 빛의 점으로만 보인다. 훈련받지 않은 맨눈의 관찰자는 황도를 도는 점진적인 운동을 보여 주는 여러 차례에 걸친 관찰의 도움을 통해서만 그 행성들을 별들과 구분할 수 있다. 보통 행성들은 별자리들 사이에서 동쪽으로 운동한다. 이것이 소위 ‘정상 운동’이다. 평균적으로 수성과 금성은 황도대를 한 바퀴 완주하는 데 둘 다 1년이 걸리며, 화성의 순환 주기의 길이는 평균 687일이고, 목성의 평균 주기는 12년이고, 토성의 주기는 29년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실제로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주기와 매우 다를 수 있다. 별들 사이로 동쪽으로 움직일 때조차, 행성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림 15. 양자리와 황소자리에서 역행 중인 화성. 이 구역의 하늘은 그림 9에서 보이는 구역과 그림 8의 별자리 지도상에서 박스로 표시된 구역과 같다. 점선은 황도, 실선은 이 행성의 경로다. 화성이 황도 선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전반적으로는 별들 사이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지만 서쪽으로 움직이는 기간, 예를 들면 6월 중순부터 8월 초까지의 기간도 있다는 점에 주의하라. 화성의 역행은 항상 대략 이러한 형태로 비슷한 소요 시간이 걸리지만, 항상 같은 날짜나 하늘의 같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행성은 항상 동쪽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태양과 달을 제외한 모든 행성의 정상 운동은 잠시 동안 나타나는 서쪽 방향의 혹은 ‘역행’ 운동에 의해 가끔씩 방해받는다. 황소자리에서 역행 중인 화성(그림 15)을 황소자리를 관통 중인 태양의 정상 운동(그림 9)과 비교해 보라. 화성은 (동쪽 방향의) 정상 운동으로 다이어그램에 진입하지만, 운동이 계속됨에 따라 점점 느려져 결국 방향을 돌려 서쪽으로, 즉 역행 운동을 시작한다. 다른 행성들도 거의 마찬가지로 움직이는데, 각 행성은 일정한 시간마다 역행 운동의 간주를 반복한다. 수성은 116일마다 한 번씩 별들 사이로 다니는 자신의 운동을 잠깐 되돌리고, 금성은 584일마다 역행한다. 화성, 목성, 토성은 각각 780일, 399일, 378일마다 역행 운동을 보여 준다.

주기적인 서향 역행에 의해 방해받는 점진적인 동향 운동을 한다는 점에서, 다섯 떠돌이별은 매우 비슷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그들의 운동이 가진 또 다른 특징을 보면 그들은 두 그룹으로 구분될 수 있다. 이는 그들의 위치와 태양의 위치 사이의 연관성이다. 수성과 금성, 즉 두 개의 소위 내행성[1]은 태양에서 아주 멀리 떨어지는 법이 없다. 수성은 언제나 움직이는 태양으로부터 28° 이내에서 발견되고, 금성의 최대 ‘이각’[2]은 45°다. 두 행성은 모두 움직이는 태양을 가로질러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느린 셔틀처럼 움직인다. 한동안 이 행성들은 태양과 함께 동쪽으로 움직인 다음, 태양을 가로질러 되돌아오고, 결국엔 다시 한 번 방향을 바꿔 태양을 따라잡는다. 태양의 동쪽에 있을 때 이 내행성들은 ‘저녁별’처럼 보이며, 일몰 직후에 보이기 시작해 태양을 좇아 금방 지평선 아래로 내려간다. 태양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역행한 후 이 행성은 ‘새벽별’이 되어, 새벽 직전에 떠서 동틀 녘의 눈부신 햇빛에 사라진다. 그러나 그사이에 태양에 가까이 있을 때에는, 수성도 금성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운동이 천구에 비추어 분석되기 전까지, 두 내행성 중 어느 것도 새벽별로 보일 때와 저녁별로 보일 때 같은 천체로 인식되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금성은 동트기 직전에 동쪽에서 뜰 때 하나의 이름을, 몇 주 후 일몰 직후 서쪽 지평선 바로 위에서 다시 보이게 되었을 때 또 다른 이름을 가졌다.

수성과 금성과 달리 외행성, 즉 화성, 목성, 토성은 태양과 같은 부분의 하늘에 제한되어 있지 않는다. 그들은 태양과 ‘함께’, 즉 태양과 매우 가까이 있을 때도 있고, 태양 ‘반대쪽’, 즉 태양의 180° 하늘 맞은편에 있을 때도 있다. 이러한 두 시기 사이에 그들은 그사이의 모든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그들의 위치에는 제한이 없더라도, 그들의 운행은 분명 태양과의 관계에 의존한다. 외행성들은 오직 [태양] 반대쪽에 있을 때에만 역행을 한다. 또한, 태양과 하늘 맞은편에서 역행 운동 중일 때, 외행성들은 다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인다. 이러한 밝아진 광도는 (적어도 기원전 4세기 이후) 보통 지구와 그 행성 사이의 거리 감소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는데, 이 현상은 화성의 경우에 특히 두드러진다. 평소에는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행성인 화성은 [태양] 반대쪽에 있을 때는 달과 금성을 제외한 밤하늘의 모든 천체를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다섯 개의 떠돌이별에 대한 관심은 결코 태양과 달에 대한 관심만큼 아주 오래되진 않았는데, 이는 아마도 그 떠돌이별들이 고대인들의 삶에 뚜렷한 실질적인 관련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금성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현상에 대한 관찰은 이미 기원전 1900년 메소포타미아에서 기록되었는데, 이는 아마도 제물로 바쳐진 양의 내장에서 읽는 점처럼 징조, 즉 미래의 징후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산발적인 관찰들은 훨씬 나중에 체계적인 점성술이 발전하는 전조가 되었다. 예측의 수단인 점성술과 행성 천문학의 발전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이와 같은 징조에 대한 관심은 기원전 8세기 중반 이후 바빌로니아의 관찰자들이 식, 역행 운동 및 다른 두드러진 행성 현상들에 대해 더 체계적이고 완전한 기록을 편찬하는 데 분명 동기를 제공했을 것이다. 고대 천문학자들의 최고봉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는 후에 이러한 기록들조차도 단편적이라고 불평했지만, 단편적이든 아니든 그것들은 행성들에 관한 온전한 규모의 문제−이 문제는 기원전 4세기 이후 그리스에서 발전한다−를 명세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를 제공했다.

행성들의 문제는 앞에서 스케치한 행성 운동들에 대한 묘사에 의해 부분적으로 명세된다.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행성 운동은 어떻게 단순하고 반복적인 질서로 환원될 수 있을까? 왜 행성들은 역행하며, 정상 운동에서조차 불규칙한 속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은 플라톤의 시대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시대에 이르는 2천 년 동안 대부분의 천문학 연구의 방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행성들에 관한 앞의 묘사는 거의 전적으로 정성적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온전하게 보여 주지 못한다. 그것은 단순화된 문제를 진술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금방 보겠지만, 정성적으로 적합한 행성 이론은 쉽게 만들어진다. 위의 묘사를 질서 잡힌 체계로 환원할 수 있는 방식은 몇 가지가 있다. 반면 천문학자의 문제는 절대로 단순하지 않다. 그는 별들 사이를 통과하는 전반적인 동향 운동에 덧붙여진 간헐적인 서향 운동의 존재뿐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각 행성이 다른 연월일마다 별들 사이에서 차지하고 있는 정확한 위치까지 설명해야 한다. 행성들의 진짜 문제, 특히 종국에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끈 문제는 모든 행성의 변화하는 위치를 도[°]과 분[′]의 각도로 기재하는 긴 표 속에서 정의되는 정량적인 문제다.

행성들의 위치

앞 장에서 전개한 방식의 2구체 우주는 일곱 행성의 위치나 운동에 대한 명시적인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태양의 위치도 다루지 않았다. 춘분점(또는 항성 천구상의 어떤 점)에 보이기 위해 태양은 단지 관찰자의 눈에서 별들의 배경상의 적절한 점까지 이은 직선 혹은 그 점을 관통하는 직선상의 어딘가에 있기만 하면 된다.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태양은 항성 천구 안쪽에 있을 수도, 그 위에 있을 수도, 심지어는 그 바깥에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2구체 우주가 행성 궤도의 모양이나 위치를 지정해 주진 못하더라도, 다른 선택지보다 그럴듯한 위치와 궤도를 선택해 주는 것은 분명하며, 따라서 2구체 우주는 행성들의 문제에 대한 천문학자의 접근을 안내하는 동시에 제한해 준다. 그 문제는 관찰 결과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 해결 노력은 기원전 4세기부터 2구체 우주론의 개념적 풍토 내에서 이루어졌다. 관찰과 이론 모두는 그 문제에 근본적인 기여를 했다. 예를 들어 2구체 우주론 내에서, 행성 궤도는 가능하면 처음의 두 구체[지구와 항성 천구]에 구현된 근본적인 대칭성을 보존하고 확장해야 했다. 따라서 이상적으로 궤도는 지구 중심의 원들이어야 했으며, 행성들은 항성 천구의 회전으로 예시된 것과 똑같은 규칙성을 가지고 이 원들을 돌아야 했다. 그 이상은 관찰과 썩 잘 맞지 않는다. 곧 보겠지만, 황도면에 위치한 지구 중심의 원 궤도는 태양의 연주 운동에 대한 좋은 설명을 제공하며, 그와 비슷한 원은 달의 다소 덜 규칙적인 운동에 대해 근사적인 설명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원 궤도는 다른 다섯 떠돌이‘별들’의 운동에서 관찰되는 역행과 같은 커다란 불규칙성을 설명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힌트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2구체 우주를 믿는 천문학자들은 지구 중심의 원들이 행성들의 자연스러운 궤도라고 생각할 수 있었고, 실제로 수 세기 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한 궤도는 적어도 전반적인 평균 동향 운동을 설명해 주었다. 평균 운동으로부터 관찰된 편차−행성 운동의 속도나 방향의 변화−는 행성 자체가 자신의 자연스런 원 궤도로부터 벗어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암시했다. 이러한 분석에서 행성들의 문제는 간단히 별들 사이를 통과하는 평균 운동으로부터 관찰된 편차를 각 행성의 단일한 원 궤도로부터의 해당 편차로 설명하는 문제가 된다.

우리는 다음 세 절에서 이러한 편차에 대한 고대의 설명 몇 가지를 검토할 것이지만, 고대인들이 했던 것처럼, 우선 행성의 불규칙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모든 궤도가 적어도 근사적으로는 원형이라 가정하고서 얼마나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알아보자. 거의 확실하게, 2구체 우주에서 행성들은 지구와 별 사이의 영역에서 움직인다. 항성 천구 자체는 흔히 우주의 바깥 경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행성들은 그 바깥에 있을 수 없었다. 행성의 운동과 별의 운동의 차이가 암시하는 바에 따르면, 행성들은 아마도 항성 천구상에 위치해 있지는 않지만, 항성 천구에는 효력이 없는 어떤 영향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어떤 중간 영역에 있을 것 같았다. 온전한 논증은 달 표면에서 볼 수 있는 세부적인 모습으로부터 힘을 얻었는데, 이는 적어도 하나의 행성이 별들보다 가까이 있음이 틀림없다는 추정의 증거가 되었다. 따라서 고대 천문학자들은 행성 궤도들을 지구와 항성 천구 사이의 광대한 빈 공간에 배치했다. 기원전 4세기 말 무렵, 2구체 우주는 속이 채워지고 있었다. 나중에 이는 꽉 차게 된다.

일단 행성 궤도에 대한 일반적인 위치와 모양을 알고 나면, 행성들의 배열 순서에 관한 그럴듯하고 만족스러운 추측이 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토성과 목성 같은 행성은 동향 운동이 느리고 그래서 전체 운동이 별들과 거의 보조를 맞추며 움직이는데, 이 행성들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항성 천구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되었다. 반면 별들과의 경주에서 매일 12° 넘게 뒤처지는 달은 정지해 있는 지구 표면에 가까이 있어야 했다. 일부 고대 철학자들은 행성들이 거대한 에테르 소용돌이 속에서 떠다니는 것을 상상함으로써 이 가설적인 배치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한 것 같은데, 이 상상 속 소용돌이의 바깥 면은 항성 천구와 함께 빨리 움직이는 반면 안쪽은 지구 표면에 닿아 정지해 있었다. 이러한 소용돌이에 휩쓸린 어떤 행성이라도 지구에 더 가까이 있다면 항성 천구에 비해 더 많이 뒤처질 것이다. 다른 철학자들은 다른 종류의 논증을 통해 같은 결론에 도달했는데, 이 논증은 적어도 그 요점이 나중에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 기원전 1세기)에 의해 기록되었다. 서로 다른 행성들이 황도를 한 바퀴 도는 데 필요한 시간 차이를 분석하면서, 비트루비우스는 명쾌한 유비를 제안했다.

도자기공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돌림판 위에 개미 일곱 마리를 놓고, 그 돌림판 위에 중심을 도는 길 일곱 개를 점점 크게 만들어 보자. 그리고 그 개미들이 이 길들을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돌림판은 그 반대로 돈다고 생각해보자. 돌림판이 도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긴 하지만, 개미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를 반드시 완주하게 되며, 중심에 가장 가까운 개미는 일찍 자기 코스를 완주하는 반면, 돌림판의 바깥 가장자리에서 돌고 있는 개미는 다른 개미와 똑같은 속도로 움직이더라도 길의 길이 때문에 훨씬 늦게 자기 코스를 완주하게 된다.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늘의 운행을 거스르고자 계속 애쓰는 이 별들은 각자의 길 위에서 궤도를 돌고 있다. 그러나 하늘의 회전 때문에 그들은 날마다 뒤로 밀리게 된다.[3]

그림 16. 2구체 우주의 대략적인 행성 궤도들. 가장 바깥 원은 항성 천구를 황도면으로 자른 단면이다.

기원전 4세기 말 이전, 위와 같은 논증은 그림 16에 그려진 우주와 비슷한 우주의 그림을 가져왔다. 이와 같은 다이어그램들 또는 이와 동등한 언어적 표현들은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한참이 지난 17세기 초까지 천문학이나 우주론에 관한 기초적인 책들에 계속 등장했다. 지구는 항성 천구의 중심에 있고, 항성 천구는 우주의 경계를 이룬다. 이 바깥 천구 바로 안쪽에는 황도대를 도는 데 가장 오래 걸리는 행성인 토성의 궤도가 있고, 다음에는 목성이, 그다음에는 화성이 있다. 여기까지는 순서가 애매하지 않다. 행성들은 바깥에서부터 궤도 주기가 점점 줄어드는 순서로 배열된다.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달의 궤도가 지구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나머지 세 행성이 문제를 야기한다. 태양, 금성, 수성은 모두 1년이라는 똑같은 평균 시간에 지구를 한 바퀴 돌며, 따라서 그들의 순서는 다른 행성들에 적용한 방법으로 결정할 수 없다. 사실 고대에는 그들의 순서에 대해 상당한 불일치가 있었다. 기원전 2세기 전까지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궤도를 달의 궤도 바로 바깥에 놓고, 금성은 태양 바깥에, 그다음에는 수성을, 또 그다음에는 화성을 놓았다. 그러나 그 후에는 [그림 16의] 다이어그램에 그려진 순서−달, 수성, 금성, 태양, 화성 등−가 점점 일반화되었다. 특히, 이 순서는 프톨레마이오스가 수용했고, 그의 권위로 인해 그의 계승자 대부분이 그 순서를 받아들였다. 따라서 우리는 이 책의 전반부 내내 이 순서를 표준으로 채택할 것이다.

구조적인 다이어그램으로서 그림 16은 여전히 매우 투박하다. 이 그림은 여러 궤도의 상대적인 크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미 있는 힌트도 주지 않으며, 관찰된 행성의 불규칙성을 설명하고자 하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다이어그램에 구현된 우주 관념은 천문학과 우주론의 이후 발전에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째로, 이 다이어그램은 비천문학자들 사이에서 내내 상식이 된 지구 중심의 우주에 대한 대부분의 구조적 정보를 담고 있다. 잠시 후 우리가 살펴볼 고대 천문학의 이후 성취는 너무 수학적이어서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음 두 장에서 더 완전히 보여 주겠지만, 고대와 중세에 발전한 가장 영향력 있는 우주론은 여기서 훨씬 더 멀리 나아간 고대 천문학을 따르지 않았다. 천문학은 이제 난해해졌으며, 이후의 발전은 인간에게 안식을 주지 않는다.

덧붙여, 그림 16의 구조적 다이어그램은 그 투박함에도 불구하고 천문학 연구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도구가 된다. 여러 목적에서, 그것은 경제적인 동시에 생산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기원전 4세기에, 이 다이어그램에 구현된 개념들은 달의 상과 월식 모두에 대한 완전한 질적 설명을 제공했다. [기원전] 4세기와 3세기 동안에는, 이와 동일한 개념들 덕분에 지구 둘레에 대한 상대적으로 정확한 일련의 측정이 이루어졌다. 기원전 2세기에 그 개념들은 태양과 달의 크기와 거리를 추정하는 멋진 착상의 기초를 제공했다. 이러한 설명과 측정들, 특히 마지막 것은, 고대 천문학 전통의 엄청난 재능과 힘을 보여 주는 전형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 동안 일어난 천문학 이론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고 상세 부록(3절4절)으로 넘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혁명과 관련이 있다. 고도로 발전된 2구체 우주의 능력은, 즉 식과 같은 두드러진 천체 현상을 설명하고 궁극적으로는 예측하는 능력뿐 아니라 천상 영역의 몇몇 길이를 명시할 수 있는 능력은, 천문학자와 일반인 모두의 마음에 2구체 개념 체계의 영향력을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들은 행성 운동의 지속적인 불규칙성에 의해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며, 이 문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의한 궁극적인 방향 전환에서 고정축을 제공한다. 고대 천문학의 수많은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그 문제도 기원전 4세기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그 무렵 2구체 우주가 일주 운동을 설명해 준 덕분에, 그리스 천문학자들은 남아 있던 행성의 불규칙성을 처음으로 분리해 낼 수 있었다. 이후 5세기 동안 이 불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해 계속된 시도들은 유례없는 정확성과 힘을 가진 몇 가지 행성 이론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 역시 고대 천문학의 가장 난해하고 수학적인 부분을 구성하며, 따라서 그것들은 보통 이러한 책들에서 생략되곤 한다. 고대 행성 이론의 단순화된 요약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이해하는 데 최소한의 필수 요건처럼 보이지만, 일부 독자는 다음 세 절(특히 그중 첫째 절의 기술적 설명은 특히 압축적이다)을 대충 훑어만 본 후, 이 장을 마무리하는 과학적 믿음에 관한 논의에서 다시 이야기를 따라가도 된다.

동심 천구 이론

그림 17. 동심 천구들. (a) 두 천구 체계에서 바깥 천구는 일주 운동을 만들어 내고, 안쪽 천구는 행성(태양 또는 달)을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서서히 돌려준다. (b) 네 천구 체계에서 행성 P는 종이와 같은 평면 바깥에, 거의 지구 E에서 독자의 눈을 잇는 직선상에 놓여 있다. 그러면 안쪽 천구 두 개는 그림 18에 그려진 루프 운동을 만들고, 바깥 천구 두 개는 일주 운동과 행성의 평균적인 동향 운동을 만든다.

철학자 플라톤의 날카로운 질문들은 이후 그리스 사상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는데, 그는 행성들의 문제도 처음으로 명확하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4세기 초, 플라톤은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어떠한 균일하고 질서 잡힌 운동을 가정해야 하는가?”[4] 이 질문에 대한 첫 답은 한때 그의 학생이었던 에우독소스(Eudoxus, 기원전 408년경∼기원전 355년경)가 제시했다. 에우독소스의 행성 체계에서 각 행성은 서로 연결된 둘 이상의 동심 천구로 이루어진 그룹의 안쪽 천구에 놓여 있었는데, 그 동심 천구들이 동시에 서로 다른 축을 중심으로 돌면 행성의 겉보기 운동이 산출됐다. 그림 17a는 이러한 방식으로 맞물려 돌아가는 두 천구의 단면을 보여 주는데, 두 천구의 공통된 중심은 지구이며, 안쪽 천구의 비스듬한 축 말단은 두 천구의 접점이 되어 고정축(pivot) 역할을 한다. 바깥 천구는 항성 천구이거나 적어도 항성 천구와 똑같은 운동을 한다. 그 축은 천구의 북극과 남극을 관통하고, 천구는 그 축을 중심으로 23시간 56분에 한 번씩 서쪽으로 회전한다. 안쪽 천구의 축은 바깥 천구와 천구의 북극 및 남극으로부터 23.5° 떨어진 두 대척점에서 접촉해 있다. 따라서 안쪽 천구의 적도는 지구에서 볼 때 두 천구의 회전과 상관없이 항상 항성 천구의 황도와 일치한다.

만약 이제 태양이 안쪽 천구의 적도상의 한 점에 놓여 있고, 바깥 천구가 하루에 한 바퀴씩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도는 동안 안쪽 천구가 1년에 한 바퀴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천천히 돈다면, 두 운동의 총합은 태양의 겉보기 운동을 재현해 낼 것이다. 바깥 천구는 태양의 뜨고 지는 관찰된 서향 일주 운동을 만들고, 안쪽 천구는 황도를 따라 도는 태양의 더 느린 동향 연주 운동을 만든다. 이와 비슷하게, 안쪽 천구가 동쪽으로 27과 3분의 1일에 한 바퀴씩 회전하고 달이 이 천구의 적도상에 놓여 있다면, 이 안쪽 천구의 운동은 황도를 따라 도는 달의 평균 운동을 산출하게 된다. 달이 황도에서 남북으로 벗어나는 현상과 달이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불규칙성 중 일부는 훨씬 더 느리게 움직이는 천구를 하나 더 이 체계에 추가함으로써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다. 에우독소스는 태양의 운동을 묘사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 번째 천구를 사용했기 때문에, 달과 태양을 함께 다루기 위해서는 천구 여섯 개가 필요했다.

그림 17a에 그려진 천구들은 지구라는 공통된 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심 천구로 알려져 있다. 둘 또는 셋으로 이루어진 그러한 천구들은 태양과 달의 전체 운동을 근사적으로 재현할 수 있지만, 행성들의 역행 운동은 설명할 수 없으며, 기하학자로서 에우독소스의 엄청난 천재성이 발휘된 것은 나머지 다섯 행동의 겉보기 행동을 다루기 위해 이 체계를 수정한 부분에서였다. 이를 위해 그는 총 네 개의 천구를 사용했는데, 이는 그림 17b의 단면도에 그려져 있다. 두 개의 바깥 천구는 그림 17a의 천구들과 정확히 똑같이 움직인다. 바깥 천구는 항성 천구의 일주 운동을 하고, (바깥부터 세었을 때) 두 번째 천구는 행성이 황도를 따라 한 바퀴를 완주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에 한 바퀴씩 동쪽으로 돈다(예를 들어, 목성의 두 번째 천구는 12년에 한 바퀴를 돈다). 세 번째 천구는 두 번째 천구와 황도상의 두 대척점에서 접촉해 있고, 네 번째, 즉 가장 안쪽 천구의 축은 묘사된 운동의 특징에 의존하는 어떤 각도로 세 번째 천구에 붙어 있다. 행성 자신(위의 예에서는 목성)은 네 번째 천구의 적도상에 위치해 있다.

그림 18. 두 개의 안쪽 동심 천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루프 운동. 완전한 네 천구 체계에서 이 루프 운동은 두 번째 천구의 꾸준한 동향 운동−이 운동만으로는 행성이 황도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이동할 것이다−과 결합된다. 루프 운동이 추가될 경우, 행성의 전체 운동은 속도가 일정하지 않고 더 이상 황도에 묶여 있지 않게 된다. 행성이 루프 위의 1에서 5까지 이동하는 동안, 그 전체 운동은 두 번째 천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평균 동향 운동보다 빠르며, 행성이 루프 위의 5에서 1까지 이동하는 동안, 그 동향 운동은 두 번째 천구에 의해 산출되는 속도보다 느려져, 행성이 3 근처에 도달하면, 실제로 서쪽으로, 즉 역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이제 바깥 천구 두 개는 정지해 있고, 안쪽 천구 두 개는 행성의 역행과 다음 역행 사이의 시간 간격(목성의 경우엔 399일)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를 돈다고 가정하자. 임시로 정지시켜 둔 두 번째 천구를 배경으로 행성의 운동을 바라보고 있는 관찰자는 행성이 천천히 (루프 양쪽 모두 황도에 의해 이등분되는) 8자를 그리며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 운동은 그림 18에 그려져 있다. 행성은 루프를 따라 천천히 1번 위치에서 2번 위치로, 2에서 3으로, 3에서 4로, … 이동하는데, 각 번호가 붙은 점과 다음 점 사이를 통과하는 데는 같은 시간이 걸리고, 역행과 역행 사이의 시간 간격이 지나면 그 시작점으로 돌아온다. 1에서 3을 거쳐 5로 움직이는 동안 행성은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움직인다. 나머지 절반의 시간 동안, 즉 행성이 5에서 7을 거쳐 1로 돌아오는 동안, 행성은 서쪽으로 움직인다.

이제 두 번째 천구를 동쪽으로 회전시키면서, 회전 중인 두 안쪽 천구에도 그 운동을 전달해 보자. 그리고 행성의 전체 운동은 또 임시로 정지시켜 둔 첫 번째 천구상에 있는 별들을 배경으로 관찰된다고 가정하자. 언제나 행성은 두 번째 천구의 운동에 의해 동쪽으로 움직이고, (그림 18에서 행성이 1에서 5까지 이동하는) 그 절반의 시간 동안 안쪽의 두 천구로부터 추가적인 동향 운동을 얻기 때문에 그 알짜 운동의 방향은 동쪽이 되고 그 속도는 두 번째 천구만의 운동 속도보다 빨라지게 된다. 그러나 (그림 18에서 행성이 5에서 1까지 이동하는) 나머지 절반의 시간 동안 두 번째 천구의 동향 운동은 안쪽의 두 천구에 의한 서향 운동에 의해 방해받으며, (그림 18의 7 근처에서) 이 서향 운동이 가장 빠를 때에는, 항성 천구에 대한 행성의 알짜 운동이 실제로 서쪽 방향, 즉 역방향이 될 수 있다. 이는 바로 에우독소스가 그의 모형에서 재현하고자 노력했던 겉보기 행성 운동의 특징이다.

맞물려 돌아가는 네 개의 동심 천구 체계는 목성의 역행 운동을 비슷하게 흉내 내며, 제2의 네 천구 세트는 토성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 나머지 세 행성의 경우엔, (기원전 330년경 에우독소스를 계승한 칼리포스[Callippus]가 제공한 확장에 따르면) 각각 천구 다섯 개가 필요하며, 그에 의해 산출되는 운동을 분석하는 것은 더 복잡해진다. 다행히 우리는 천구들의 이러한 복잡한 조합에 대해 더 이상 뒤쫓을 필요가 없는데, 모든 동심 천구 체계는 한 가지 심각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 체계는 고대에 일찍 폐기되었다. 에우독소스의 이론은 각 행성을 지구와 같은 중심을 가진 천구 위에 두었기 때문에, 행성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변할 수 없다. 그러나 역행 운동을 할 때, 행성들은 더 밝아지며 따라서 지구에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에 동심 천구 체계는 이러한 행성의 밝기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주 비판을 받았으며, 이 체계는 이 현상에 대해 더 적합한 설명이 제안되자 거의 곧바로 대부분의 천문학자들에 의해 버려졌다.

중요한 천문학적 장치로서 짧은 삶을 살긴 했지만, 동심 천구는 천문학적 사고와 우주론적 사고의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역사적 우연으로, 그 모형이 행성 운동에 대한 가장 유력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 세기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생애 대부분을 살았던 시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세계에서 개발된 가장 포괄적이고 상세하며 영향력 있었던 우주론에 그 모형을 포함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수 세기 사이에 행성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주전원(周轉圓, epicycle)과 주원(周圓, deferent)으로 이루어진 수학적 체계는 그만큼 완전한 우주론에 통합된 적이 없었다. 행성들이 지구와 같은 중심으로 도는 구형 껍질에 놓여 있다는 관념은 17세기 초까지 우주론적 사고의 수용된 부분으로 남아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글들도 이러한 관념의 중요한 흔적을 보여 준다.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책의 제목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aelestium/On the Revolutions of the Heavenly Spheres)』에서, 구(orbs/spheres)는 행성 자체가 아니라 행성들과 별들이 놓인 동심의 구형 껍질들을 가리킨다.

주전원과 주원

그림 19. 기본적인 주전원ᐨ주원 체계. 전형적인 주원과 주전원은 (a)에 그려져 있고, 그것이 황도면에서 산출하는 루프형 운동은 (b)에 그려져 있으며, 세 번째 다이어그램 (c)는 (b)의 운동 중 (1-2-3-4) 부분을 중심에 있는 지구상의 관찰자가 볼 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행성 운동의 세부 사항들을 설명하는 데 동심 천구를 대체한 이 장치의 기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특징들은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2세기 말에 걸쳐 연구를 수행했던 두 그리스 천문학자 겸 수학자, 아폴로니오스(Apollonius)와 히파르코스(Hipparchus)에 의해 일찍이 탐구되고 발전되었다. 그 가장 단순한 형태(그림 19a)에서, 이 새로운 행성용 수학적 메커니즘은 회전하고 있는 원인 주원과 그 원주 위에 있는 점을 중심으로 균일하게 회전하는 또 다른 작은 원인 주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성 P는 주전원 위에 있고, 주원의 중심은 지구 중심과 일치한다.

주전원ᐨ주원 체계는 항성 천구에 대해 상대적인 운동만을 설명하도록 의도되어 있다. 그림 19a에서 주전원과 주원은 모두 황도면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항성 천구의 회전은 (중심의 지구는 빼고) 전체 다이어그램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려, 즉 행성의 일주 운동을 만들어 낸다. 만약 그림의 주전원과 주원이 정지해 있고 자기만의 추가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행성은 황도면에 고정되어 있을 것이며 따라서 황도대에 있는 한 별의 운동을, 즉 23시간 56분마다 한 바퀴씩 서쪽 방향으로 도는 원운동을 보여 줄 것이다. 지금부터 주원이나 주전원의 운동을 언급할 때마다, 그것은 황도면에서 이 원들이 수행하는 추가적인 운동을 의미한다. 천구와 황도면의 일주 운동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예를 들어, 주원이 1년에 한 바퀴 동쪽으로 돌고, 주전원을 없앤 채 원래 주전원의 중심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태양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주원의 회전은 황도를 따라 도는 태양의 연주 운동을 만들어 주며, 태양의 운동은 황도면에 있는 하나의 주원의 운동에 의해−적어도 근사적으로−분석된다. 이는 그림 16에서 평균 행성 운동을 설명하는 데 당연시되었던 기법이다.

이제 태양이 제거되고 주전원이 주원의 그 자리에 돌아왔다고 상상해 보자. 만약 주원이 한 번 도는 동안 주전원이 자신의 움직이는 중심 주위로 딱 세 번 회전하고, 또 두 원이 같은 방향으로 돈다면, 항성 천구를 배경으로 주전원과 주원의 결합된 운동에 의해 산출되는 행성의 전체 운동은 그림 19b에 그려진 루프형 곡선과 정확히 같다. 주전원의 회전이 행성을 주원 바깥에서 운반할 때에는, 주전원과 주원의 운동이 모두 결합해 행성을 동쪽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주전원의 운동에 의해 행성이 주원보다 꽤 안쪽에 놓일 경우, 주전원은 주원의 운동과 반대로 행성을 서쪽으로 실어 나른다. 따라서 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질 때에는, 두 운동이 결합해 알짜 서향 운동, 즉 역행 운동을 산출할 수 있다. 그림 19b에서 행성은 각 작은 루프의 안쪽 부분에 올 때마다 역행 운동을 보이고, 그 밖의 다른 곳에서는 정상적으로 동쪽으로, 단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이동한다.

그림 19c는 루프 하나를 통과하고 있는 행성의 운동을 지구상의 관찰자가 항성 천구를 배경으로 볼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관찰자와 루프 모두 같은 평면, 즉 황도면에 있기 때문에, 관찰자는 개방된 루프 자체를 볼 수 없다.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단지 황도를 배경으로 한 행성의 위치뿐이다. 즉 행성이 그림 19b와 19c의 1번 위치에서 2번 위치로 움직이는 동안, 관찰자는 행성이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행성이 2에 접근하는 동안 태양은 점점 더 느리게 움직여서, 2에서 순간적으로 멈췄다가, 2에서 3으로 여행하면서는 황도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에는 황도 위에서 행성의 서향 운동이 중단되고, 행성은 다시 동쪽으로 움직이는데, 이때 행성은 루프 위의 3번 위치를 출발해 4번 위치로 움직인다.

따라서 하나의 주전원과 하나의 주원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행성을 황도를 따라 운반해 주며, 그 주기는 평균적으로 주원의 1회전에 필요한 시간과 정확히 똑같다. 그러나 그 동향 운동은 가끔씩 중단되어 행성은 정기적으로 잠깐씩 서쪽으로 움직이며, 그 주기는 주전원의 1회전에 필요한 시간과 똑같다. 주전원과 주원의 회전 속도는 임의의 행성에 대한 관찰에 맞게 조정될 수 있고, 이는 별들 사이에서 쉬엄쉬엄 동쪽으로 이동하는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을 정확히 산출해 낼 수 있다. 게다가 주전원ᐨ주원 체계는 또 다른 중요한 정성적인 특징을 재현한다. 그것은 행성이 자신의 운동에 의해 지구에 가장 가까이 왔을 때에만, 즉 행성이 가장 밝게 보이는 위치에서만 역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엄청난 단순성과 더불어 행성의 변화하는 밝기에 대한 이 새로운 설명은 이 새로운 체계가 낡은 동심 천구 체계를 이길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이다.

그림 19에서 묘사한 주전원ᐨ주원 체계는 어떠한 행성의 운동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한 가지 특별한 단순화를 담고 있다. 그 주전원은 주원의 매 회전마다 정확히 세 번 돌게끔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주원이 한 바퀴 완주할 때마다, 주전원은 처음에 행성이 있었던 똑같은 위치로 행성을 도로 데려다주며, 역행 루프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나타나고, 행성이 황도를 따라 한 바퀴를 완주하는 데에는 항상 똑같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실제 행성 관찰에 맞게 설계할 경우, 주전원ᐨ주원 체계는 절대로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수성은 황도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데 평균 1년이 걸리는 것으로 관찰되며, 116일마다 한 번씩 역행한다. 따라서 수성의 주전원은 주원이 한 번 도는 동안 세 번보다 살짝 더 돌아야 한다. 주전원이 3회전을 하는 데 걸리는 348일은 주원의 1회전에 걸리는 1년보다 짧다.

그림 20. 주원이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주전원이 세 번보다 살짝 더 돌 때, 주전원과 주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운동. 별들을 한 바퀴 완주하는 동안의 행성의 경로는 (a)에 그려져 있다. 이 여정은 주원의 1회전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b)에서 보이는 것처럼, 주원이 첫 바퀴를 완주하는 동안 행성의 위치는 (P)에서 시작해서 (P')에서 마무리된다. 다이어그램 (c)는 주원이 다음의 어떤 바퀴를 도는 동안 행성의 시작점과 끝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엔 행성이 황도를 따라 한 바퀴 넘게 돈다.

그림 20a는 주원이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세 바퀴를 살짝 더 도는 주전원에 의해 황도를 한 바퀴 도는 행성의 경로를 보여 준다. 역행 루프의 중간 지점에서 출발한 행성은 주원이 그 첫 바퀴를 완주하기 전에 세 번째 루프를 완성한다. 따라서 황도를 한 바퀴 도는 동안 행성은 평균적으로 세 번보다 조금 많은 역행 루프를 돈다. 그림 20a의 운동이 두 번째 바퀴로 이어지면, 새로운 역행 루프는 첫 바퀴 동안 만들어진 루프들보다 살짝 서쪽에서 형성될 것이다. 황도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역행 운동은 황도대의 같은 위치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이는 황도를 따라 도는 행성들의 운동에서 관찰된 특징이다.

그림 20b는 주원이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정수 번 돌지 않는 주전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운동의 두 번째 특징을 보여 준다. 그림에서 P에 있는 행성은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이 위치에서 그림 20a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주원이 한 바퀴 회전한 후, 주전원은 세 번보다 살짝 더 돌게 되며, 행성은 P'의 위치에 도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 행성은 그 시작점보다 서쪽에 보이게 된다. 행성이 황도를 따라 한 바퀴를 완주하려면, 주원은 한 바퀴에서 동쪽으로 더 돌아야 한다. 따라서 별자리들 사이를 도는 그 여정에는 평균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적게 걸린다. 주원이 몇 바퀴 더 돌고 나면, 행성은 그림 20c에서 보이는 새로운 위치 P에서부터 새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주원이 한 바퀴 더 돌면 행성은 P의 동쪽 지점인 P'에 오게 된다. 이러한 주원의 회전은 행성을 황도를 따라 한 바퀴 이상 돌게 하기 때문에, 이번 여정은 특히 빠른 것이 된다. 그림 20b와 20c는 황도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의 거의 최솟값과 최댓값을 나타낸다. 그 사이의 여정들은 그 중간의 시간을 소비한다. 평균적으로, 황도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주원이 한 바퀴를 도는 것과 같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주전원ᐨ주원 체계는 이번 바퀴와 다음 바퀴 사이의 편차를 허용한다. 다시 한 번 이 체계는 행성 운동의 관찰된 불규칙성에 대한 경제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그림 21. (a) 금성에 대한 1주전원 1주원 체계와 (b) 그것이 황도면에서 만들어 내는 운동. (a)에서는 다음의 설계 특징을 주목하라. 주원은 1년에 한 번 회전하기 때문에, 만약 주전원의 중심이 지구 E와 태양의 중심 S와 일직선상에 놓인다면, 그 중심은 영원히 정렬된 채 가만히 있을 것이고, 금성은 절대로 태양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각 SEPʹ와 SEP‴는 태양과 금성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최대 각이고, 이 최대 이각이 45°라는 조건은 주전원과 주원의 상대적인 크기를 완전하게 결정해 준다. 주전원은 584일에 한 바퀴 돌기 때문에, 만약 금성이 태양에 근접한 P에서 출발하면, Pʹ(저녁별로서의 최대 이각 위치)에는 219일(3/8 회전) 뒤에, Pʺ에는 292일(1/2 회전) 뒤에, P‴(새벽별로서의 최대 이각 위치)에는 365일(5/8 회전) 뒤에 도착할 것이다. 두 번째 다이어그램은 (a)에 그려진 원들의 운동에 의해 금성이 움직이는 경로를 보여 준다. 여기서 P는 첫 번째 다이어그램에서의 시작점이고, P′는 금성의 동쪽 최대 이각 위치(219일)이며, Pʺ는 행성의 역행 루프 중간의 위치(292일)이며, P‴는 그 서쪽 최대 이각 위치(365일)다. 황도를 따라 도는 금성의 첫 바퀴는 406일 후 p에서 끝나며(엄청난 길이에 주의할 것) 한 번의 역행과 두 번의 최대 이각을 포함한다. 그다음 바퀴(p에서 pʹ를 거쳐 pʺ까지)는 295일밖에 걸리지 않으며 특징적인 현상을 하나도 포함하지 않는다. pʹ에서 금성은 다시 태양에 가장 근접하는데, 이는 주전원이 한 바퀴를 완주한 후 도착한 위치다. 적어도 정성적으로, 금성은 정말로 이렇게 움직인다!

모든 행성의 운동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각각에 대해 별도의 주전원ᐨ주원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태양과 달의 경우엔 역행 운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운동은 주원 하나만으로도 근사적으로 다룰 수 있다. 태양의 주원은 1년에 한 바퀴 돌고, 달의 주원은 27과 3분의 1일마다 한 바퀴 돈다. 수성에 대한 주전원ᐨ주원 체계는 위에서 다룬 것과 매우 비슷해서, 주원은 1년에 한 바퀴 돌고 주전원은 116일에 한 바퀴 돈다. 이 장 앞부분에서 기록해 놓은 관찰을 활용하면, 우리는 다른 행성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체계를 설계할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그림 20a에 그려진 것과 같은 루프형 행성 경로를 산출할 것이다. 주원에 대한 주전원의 상대 크기가 더 커지면, 루프의 크기가 커지게 된다. 주원의 속도에 대한 주전원의 상대적인 회전 속도가 빨라지면, 황도를 따라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더 많은 루프가 만들어지게 된다. 목성은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대략 11개의 루프가 들어가고, 토성은 매번 대략 28개가 들어간다. 요컨대, 주전원과 주원의 상대 크기와 상대 속도를 적절하게 변화시키면, 이 합성된 원운동의 체계는 엄청나게 다양한 행성 운동에 대략 맞춰지도록 조정될 수 있다. 적절하게 설계한 원들의 조합은 금성과 같은 비전형적인 행성의 운동에서 나타나는 엄청난 불규칙성에 대해서도 좋은 질적 설명을 제공할 것이다(그림 21).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

앞 절의 논의는 행성의 운동을 정리하고 예측하는 방법으로서 주전원ᐨ주원 체계가 가진 힘과 융통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는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이 체계가 행성 운동의 가장 현저한 불규칙성−역행과 황도를 한 바퀴 돌 때마다 걸리는 시간의 불규칙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되자, 고려해야 할 다른 불규칙성들이−훨씬 더 작은 것들이긴 하지만−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2구체 모형이 일주 운동에 대한 정확한 메커니즘을 제공해 행성의 주된 불규칙성에 대한 상세한 연구를 가능케 했던 것처럼, 주전원ᐨ주원 체계 또한 행성의 주된 운동에 대한 설명을 제공함으로써 더 작은 불규칙성들을 관찰에서 분리해 내는 것을 가능케 했다. 이는 개념적 생산성의 첫째 사례다. 1주전원 1주원 체계에 의해 예측된 운동이 각 행성의 관찰된 운동과 비교되면, 행성이 그 모형의 기하학적 구조가 말해 주는 황도상의 바로 그 위치에서 항상 보이는 것은 아니란 것이 드러난다. 정확하게 관찰할 경우, 금성은 태양과 항상 45°의 최대 이각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한 행성의 잇따른 역행 사이의 간격이 항상 정확히 똑같은 것도 아니며, 태양을 빼면 어떤 행성도 운동하는 내내 황도상에 머물러 있지도 않다. 따라서 1주전원 1주원 체계는 행성들의 문제에 대한 최종 답변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우 유망한 출발점에 불과했으며, 이는 즉각적인 발전뿐 아니라 오래 지속된 발전에도 적합했다. 히파르코스와 코페르니쿠스 사이의 17세기 동안, 가장 창의적인 전문 천문학 실행가들 모두는 기본적인 1주전원 1주원 기법을 행성들의 관찰된 운동에 정확하게 들어맞게 해 줄 몇몇 새로운 종류의 미세한 기하학적 수정 방법을 발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림 22. 미세 주전원의 기능들. (a)에서 지구 중심의 단일 주원에 의해 움직이는 태양은 AE에서 VE까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VE에서 AE로] 돌아오는 데 필요한 시간과 같다. (b)에서 주원과 미세 주전원의 결합된 운동은 태양을 점선을 따라 옮겨 주고, 이에 따라 VE에서 AE까지의 길은 돌아오는 길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다이어그램 (c)는 미세 주전원이 (b)를 만드는 데 사용된 속도의 두 배로 돌 때 만들어지는 곡선을 보여 준다.

주전원ᐨ주원 체계의 가장 중요한 적용 대상은 행성들의 복잡한 운동이었지만, 고대와 중세에 이루어진 그 체계의 주요한 수정은 훨씬 더 단순한 태양과 달의 운동에 가끔 적용된 방식에서 가장 간단하게 묘사된다. 예컨대, 태양은 역행하지 않기 때문에, 그 운동은 앞 절에서 묘사한 종류의 기본적인 주전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를 중심으로 균일하게 회전하는 주원 위에 태양을 고정시키면 태양의 운동에 대한 정량적으로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1장에서 열거한 지점과 분점들의 날짜를 다시 조사하면 알 수 있듯이, 태양이 춘분점에서 추분점까지 (황도를 따라 180°)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추분점에서 춘분점으로 (다시 180°)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거의 6일 더 길다. 황도를 도는 태양의 운동은 여름보다 겨울에 살짝 더 빠르며, 그러한 운동은 균일하게 도는 지구 중심의 원 위에 고정된 점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그림 22a를 검토해 보자. 이 그림에서 지구는 균일하게 회전 중인 주원의 중심에 있고, 항성 천구상에서 춘분점과 추분점의 위치는 VE와 AE로 표시되어 있다. 주원의 균일한 회전에 의해 운반되는 태양 S가 VE에서 AE까지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AE에서 VE까지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같으며, 이는 관찰과 근사적으로만 일치한다.

그러나 주원에서 태양이 제거되고, 주원이 동쪽으로 한 바퀴 도는 동안 서쪽으로 한 바퀴 도는 작은 주전원 위에 태양이 놓여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림 22b는 그러한 체계에서 태양이 자리하는 여덟 위치를 보여 준다. 분명한 것은, 주원이 여름철 반 바퀴를 돌 때에는 태양이 VE부터 AE에 이르는 전체 거리를 이동하지 못하고, 겨울철 반 바퀴를 돌 때에는 태양이 AE부터 VE까지의 거리보다 멀리 이동한다. 그래서 주전원의 효과는 태양이 VE와 AE 사이의 180°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늘리고 AE에서 VE 사이의 황도의 다른 절반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있다. 만약 작은 주전원의 반지름이 주원의 반지름의 0.03이라면, 태양이 황도의 겨울철 절반과 여름철 절반을 각각 지나는 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요구된 6일이 될 것이다.

태양의 운동에서 나타나는 미세한 불규칙성을 바로잡는 데 앞의 논의에서 사용된 주전원은 상대적으로 작고, 역행 루프도 만들지 않는다. 따라서 그 기능은 바로 앞의 절에서 다룬 더 큰 주전원의 기능과는 상당히 다르며,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들은 그렇게 구분한 적이 없긴 하지만, 이 두 기능은 구분해 두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이후로 우리는 역행 운동의 정성적인 모습을 산출하는 데 사용되는 큰 주전원을 말할 때에는 ‘기본 주전원(major epicycle)’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이론과 관찰 사이의 작은 정량적 불일치를 없애는 데 사용되는 추가적인 원들을 말할 때에는 ‘미세 주전원(minor epicycle)’이란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모든 버전은 딱 다섯 개의 기본 주전원만을 가지고 있었고, 코페르니쿠스의 개혁이 없앤 것은 바로 이것들이다. 반대로, 작은 정량적 불일치를 설명하는 데 필요했던 미세 주전원 및 그와 비슷한 장치들의 수는 이용 가능한 관측 기법의 정밀성과 체계에서 요청되는 예측의 정확성에만 의존했다. 따라서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다양한 버전에서 사용된 미세 주전원의 수는 버전마다 엄청나게 달랐다. 6개에서 12개의 미세 주전원을 사용하는 체계는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에 흔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미세 주전원의 크기와 속도를 적절하게 선택하면 거의 모든 종류의 작은 불규칙성이 설명되어 제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보겠지만, 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체계가 거의 프톨레마이오스의 것만큼이나 매우 복잡했던 이유다. 코페르니쿠스의 개혁은 기본 주전원을 제거했지만, 그는 그의 선배들만큼 미세 주전원에 의존했다.

한 가지 불규칙성은 그림 22b에 그려진 미세 주전원의 도움으로 처리되었다. 다른 종류의 불규칙성은 그림 22c에 그려져 있다. 거기서 미세 주전원은 주원이 동쪽으로 한 바퀴 도는 동안 서쪽으로 두 바퀴를 돈다. 두 가지 회전이 결합하면 전체 운동은 납작한 원(그림의 점선)을 따라 일어난다. 이 곡선 위에서 움직이는 행성은 두 분점에 비해 하지점과 동지점 부근에서 더 빠르게 이동하며 더 적은 시간을 소비한다. 주원이 한 번 도는 동안 주전원이 두 번보다 살짝 덜 돌았다면, 행성의 겉보기 속도가 최대가 되는 황도상의 위치는 황도를 한 바퀴 돌 때마다 변화했을 것이다. 만약 이번 바퀴에서 행성이 하지 근처에서 가장 빠르게 보였다면, 다음 바퀴에서는 그 최대 속도를 얻기 전에 하지를 통과했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다른 변화들은 자유자재로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림 23. (a) 주원 위의 주전원 위의 주전원과 (b) 이러한 합성된 원들의 체계에 의해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경로. 단순성을 위해 그 경로는 부드럽게 자신의 출발점에 돌아와 만나도록 그려져 있지만, 이러한 상황은 실제 행성의 운동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세 주전원의 사용은 비역행 행성인 태양과 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미세 주전원은 기본 주전원 위에 놓여, 더 정교한 행성 운동을 예측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실제로 행성 운동은 미세 주전원의 주된 천문학적 적용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한 가지 적용 방법인 주원 위의 주전원 위의 주전원은 그림 23a에 그려져 있다. 주원이 한 바퀴 도는 동안 기본 주전원은 동쪽으로 여덟 바퀴 돌고 미세 주전원은 서쪽으로 한 바퀴 돈다면, 그 행성이 그리는 천구상의 경로는 그림 23b에 그려진 것과 같다. 그 행성은 여덟 개의 정상적인 역행 루프를 가지지만, 이 루프들은 추분점부터 춘분점에 이르는 황도의 절반보다 춘분점부터 추분점까지의 절반 구간에 조금 더 밀집되어 있다. 만약 미세 주전원의 회전 속도가 두 배가 된다면, 행성이 그리는 경로는 그림 22c처럼 납작해진다. 이 다이어그램들은 미세 주전원이 만들 수 있는 복잡한 경로들의 시작에 불과하다.

그림 24. (a) 이심, (b) 주원 위의 이심, (c) 이심 위의 이심.

미세 주전원은 1주전원 1주원 체계와 관찰된 행성 운동 사이의 미세한 불일치를 바로잡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도 아니다. 그림 22b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원이 동쪽으로 한 바퀴 도는 동안 서쪽으로 한 바퀴 도는 미세 주전원에 의해 만들어지는 효과는 그 중심이 지구의 중심에서 벗어난 단일 주원에 의해서도 똑같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러한 편향된 원은 고대 천문학자들에게 이심원(eccentric)으로 알려진 것으로, 그림 24a에 그려져 있다. 만약 지구 E와 이심원의 중심 O 사이의 거리가 이심원 반지름의 대략 0.03이라면, 이 편향된 원은 태양이 춘분점과 추분점 사이를 지나는 데 6일 더 걸리는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 EO에 다른 값이 대입되면, 하나 이상의 주전원과 함께 사용되었을 때, 행성의 다른 미세한 불규칙성들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심원의 중심을 작은 주원 위에 놓거나(그림 24b), 더 작은 다른 이심원 위에 놓는 방법(그림 24c)을 통해 추가적인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러한 두 방법은 각각 주원 위의 미세 주전원과 이심원 위의 미세 주전원과 기하학적으로 완전히 동등하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으며, 대부분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자들은 미세 주전원에 비해 이러한 중심의 작은 원들을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모든 경우에 하나 이상의 주전원이 더해질 수 있으며, 이러한 원들 중 어떤 혹은 모든 원은 행성들의 황도 남북 편차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평면으로 기울어 있을 수 있다.

그림 25. 대심. 태양 S는 지구 중심의 원 위에서 움직이지만, 그 운동 속도는 각 가 시간에 따라 균일하게 변한다는 조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다.

또 다른 장치인 대심(equant)은 주전원 이론과 정확한 관측 결과 사이의 조화를 돕기 위해 고대에 개발되었다. 이 장치는 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의 미적 반감(5장)이 그로 하여금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거부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계산 방법을 탐색하도록 추동한 한 가지 근본적인 동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옛 선배들이 사용한 것들과 같은 주전원과 이심원을 사용했지만 대심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는 자신의 체계에서 대심이 사라진 것이 최대 장점 중 하나이며 그것의 참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사례로, 그림 25는 앞서 논의했던 태양 운동의 불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해 설계된 대심의 한 형태를 보여 준다. 태양의 주원의 중심은 전처럼 지구의 중심 E와 일치하지만, 이제 주원의 회전 속도는 그 기하학적 중심 E가 아닌−이 경우 하지점 쪽으로 편향되어 있는−대심 A를 기준으로 균일해야 한다. 즉, 대심 A에서 태양과 하지점이 이루는 각 a는 일정한 속도로 변해야 한다. 만약 그 각이 어느 한 달에 30°만큼 증가한다면, 그 각은 같은 길이의 달마다 30°씩 증가해야 한다. 그림에서 태양은 춘분점 VE에 그려져 있다. 추분점 AE에 도착하기 위해 태양이 반원을 돌 때에는 각 a가 180°보다 많이 변할 것이며, AE에서 VE로 돌아오기 위해 다음 반원을 돌 때에는 a가 180°보다 적게 변할 것이다. a가 180°씩 증가하는 데에는 동일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태양이 VE에서 AE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AE에서 VE까지 돌아오는 길에 걸리는 시간보다 길어야 한다. 따라서 중심점 E에서 볼 때, 태양은 불규칙한 속도로, 즉 동지점 근처에서 가장 빠르고 하지점 근처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대심을 정의하는 특징이다. 주원이나 다른 어떤 행성용 원의 회전 속도는 그 자신의 기하학적 중심이 아니라 그 중심에서 벗어나 있는 대심을 기준으로 균일해야 한다. 그 주원의 기하학적 중심에서 관찰할 때, 행성은 불규칙한 속도로 움직이거나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 비틀거림 때문에, 코페르니쿠스는 대심이 천문학에 적용되기에 적절한 장치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가 보기에 회전의 명백한 불규칙성은 주전원, 주원, 이심으로 이루어진 체계를 그렇게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어 주었던 균일한 원형 대칭성을 위반하는 것이었다. 대심은 보통 이심원에 적용되었고, 때로는 비슷한 장치들도 그만큼 주전원을 비틀거리게 만들었기 때문에, 코페르니쿠스가 어떻게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의 이러한 측면을 두고 괴물 같다고 보게 되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앞의 페이지들에서 그려진 수학적 장치들 모두가 한꺼번에 개발되거나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개발된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3세기의 아폴로니오스는 기본 주전원(그림 19a)과 움직이는 중심을 가진 이심원(그림 24b) 둘 다 알고 있었다. 다음 세기에 히파르코스는 천문학 무기고에 이심원에 관한 더욱 일반적인 이론과 미세 주전원을 추가해 주었다. 게다가 그는 이 장치들을 결합해 태양과 달의 운동에서 나타나는 불규칙성에 대해 정량적으로 적합한 최초의 설명을 제시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대심을 추가했고, 그의 시대와 코페르니쿠스의 시대 사이 13세기 동안, 행성의 또 다른 불규칙성들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엔 이슬람교도 천문학자들이, 그다음엔 유럽의 천문학자들이 여전히 원을 이용한 다른 조합들을 시도했다. 그중엔 주전원 위의 주전원(그림 23a)과 이심원 위의 이심원(그림 24c)도 있었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의 기여는 엄청난 것이었고, 행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 전체 기법은 딱 알맞게도 그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태양과 달의 운동뿐 아니라 일곱 개의 모든 행성의 겉보기 운동에서 나타나는 관찰된 정량적인 규칙성과 불규칙성을 설명하기 위해 특정한 집합의 합성된 원들을 한데 모은 것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알마게스트(Almagest)』는 고대 천문학의 위대한 성취를 완벽하게 보여 주는 책으로, 모든 천체 운동에 대한 완전하고, 상세하고, 정량적인 설명을 제공한 최초의 체계적인 수학적 논문이었다. 그 결과는 아주 훌륭했고 그 방법은 아주 강력했기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 사후에 행성들의 문제는 새로운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행성 이론의 정확성 또는 단순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승자들은 주전원에 주전원을 더하고 이심원에 이심원을 더하며, 근본적인 프톨레마이오스 기법의 엄청난 다양성 모두를 샅샅이 파헤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 기법의 근본적인 수정을 거의 혹은 전혀 추구하지 않았다. 행성들의 문제는 단순히 설계의 문제가 되었으며, 그 문제는 기본적으로 기존 요소들의 재배치를 통해 공략되었다. 주원, 이심원, 대심, 주전원의 어떤 특정한 조합이 행성의 운동을 가장 단순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히파르코스, 프톨레마이오스와 그들의 계승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제안한 각각의 정량적인 해법들을 더 이상 뒤쫓을 수 없다. 완전한 정량적 체계들은 수학적으로 너무 복잡하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대부분은 정량적인 수학적 표, 다이어그램, 수식, 증명들과 기다란 설명용 계산들과 수치화된 관찰 목록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로 하여금 행성들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찾아 나서게 만든 문제들과 그가 자신의 새로운 체계로부터 얻을 수 있다고 스스로 주장한 장점들은 모두 정량적 이론의 이 난해한 몸통 속에 들어 있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작업이 결국 2구체 우주를 무너뜨리긴 했지만 그는 그것을 공격하지 않았으며, 주전원과 이심원도 그의 계승자들에 의해 버려지긴 했지만 그는 주전원과 이심원의 사용을 포기하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가 정말로 공격한 것과 천문학의 혁명에 시동을 건 것은 분명히 프톨레마이오스와 그 계승자들의 복잡한 수학적 체계에 포함된 대심과 같이 사소해 보이는 수학적 세부 사항들이었다. 코페르니쿠스와 고대의 천문학자들 사이의 첫 전투는 이 절에서 그려진 것과 같은 기술적 세부 사항들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과학적 믿음의 구조

그 기법의 섬세함, 유연성, 복잡성, 위력 면에서, 앞의 두 절에서 그려진 주전원-주원 기법은 과학의 역사에서 꽤 최근까지도 그에 필적하는 상대를 찾을 수 없다. 그것이 가장 발전된 형태를 갖추었을 당시 그 합성된 원들의 체계는 경이로운 성취였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작동하지 않았다. 아폴로니오스의 초창기 관념은 행성의 주된 불규칙성들−역행 운동, 밝기 변화, 황도를 한 바퀴 돌 때마다 걸리는 시간의 변화−을 해결했고, 그 해결은 매우 간단하게 단숨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몇몇 남아 있는 이차적 불규칙성을 드러내 주었다. 이중 일부는 히파르코스가 개발한 합성된 원들의 더 정교한 체계로 설명됨으로써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이론은 관찰 결과와 잘 맞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한 주원, 이심원, 주전원, 대심의 복잡한 조합조차도 이론과 관찰을 정확하게 조화시키지 못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자신의 체계는 그 체계 중 가장 복잡한 버전도, 최후의 버전도 아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많은 계승자들−처음에는 이슬람에 있었고 나중엔 중세 유럽에 있었던−은 그가 남겨 둔 곳에서 문제를 착수했고 그가 해 보지 않았던 해법을 헛되이 추구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여전히 같은 문제를 붙잡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자신이 『알마게스트』에서 구현했던 것 말고도 수많은 버전의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행성의 위치를 예측하는 데 상당한 정확성을 달성했다. 그러나 그 정확성은 예외 없이 복잡성−새로운 미세 주전원이나 그와 동등한 장치의 추가−을 대가로 내주고서 얻은 것이었고, 증가한 복잡성은 행성 운동에 대한 최종 결과가 아닌 고작 더 나은 근사치를 제공했을 뿐이었다. 이 체계의 어떤 버전도 정밀해진 후속 관찰에 의한 시험을 제대로 견뎌 낸 적이 없었고, 이러한 실패는, 더 투박한 버전의 2구체 우주를 그토록 신빙성 있어 보이게 해 주었던 개념적 경제성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과 결합해, 종국에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혁명은 엄청나게 오랜 시간 후에나 찾아올 것이었다. 아폴로니오스와 히파르코스 시대부터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날 때까지 거의 1800년 동안, 지구 중심 우주 속의 합성된 원형 궤도들이라는 관념은 행성들의 문제에 대한 모든 전문적인 해결 시도에서 나타났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시도 전까지 그러한 시도는 엄청나게 많았다. 그것의 작지만 알려져 있던 부정확성과 (1장에서 묘사한 앞선 2구체 우주와 달리) 눈에 띄게 줄어든 경제성에도 불구하고, 발전된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는 엄청나게 긴 수명을 누렸으며, 이 굉장하지만 분명히 불완전한 체계의 장수는 밀접하게 관련된 한 쌍의 퍼즐을 제기한다. 어떻게 2구체 우주와 그와 결합한 주전원ᐨ주원 행성 이론은 천문학자들의 상상에 그렇게 깊이 뿌리를 내렸는가? 그리고 일단 뿌리를 박고 났을 때, 전통적인 문제에 대한 이 전통적인 접근법의 심리적 애착은 어떻게 느슨해지게 되었는가? 혹은 똑같은 질문을 더 직접적으로 묻는다면,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왜 그렇게 지연되었는가? 그리고 도대체 그것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가?

이들은 특정한 종류의 관념들의 역사에 관한 질문들이며, 역사적인 측면에서 그 질문들은 아래에서 꽤 길게 다룰 것이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 보면 그 질문들은 개념 체계의 본성과 구조를 비롯해 하나의 개념 체계가 다른 개념 체계를 교체하는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그 질문들에 접근하기 위해 일단 1장의 끝에서 두 번째 절에서 소개했던 추상적인 논리적 범주와 심리적 범주를 잠시 다시 살펴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개념 체계의 기능들을 검토했다. 우리는 이제 초창기의 2구체 우주처럼 순조롭게 기능하는 체계가 어떻게 교체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우선 현상의 논리부터 살펴보자.

논리적으로 임의의 기존 관찰 목록에 질서를 가져다줄 수 있는 대안적인 개념 체계는 언제나 많이 있지만, 이 대안들은 그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현상에 관해서는 다른 예측을 한다. 별과 태양에 대한 맨눈 관찰에 대해서는 코페르니쿠스 체계나 뉴턴 체계의 설명이 2구체 개념 체계의 설명과 적합성 면에서 차이가 없을 것이다. 헤라클레이데스의 체계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코페르니쿠스의 뒤를 이은 티코 브라헤가 개발한 체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이론적으로는 그 밖에도 무한한 수의 대안들이 있다. 이 대안들은 이미 만들어진 관찰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그 대안들이 모든 가능한 관찰에 대해서 똑같은 설명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 체계는 별들의 겉보기 연간 운동[연주 시차]을 예측하고, 훨씬 더 큰 지름의 항성 천구를 필요로 하고, (코페르니쿠스 자신의 해법은 아니지만) 행성들의 문제에 대한 다른 종류의 해법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2구체 우주와 다르다. 과학자가 자신의 체계를 미지의 대상에 대한 생산적인 탐구를 위한 가이드로서 신뢰하기 전에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은 이와 같은 (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차이점들 때문이다. 상상컨대 다양한 대안들 중 오직 하나만 실재를 표상할 수 있으며,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과학자는 자신이 그 하나 또는 그것의 입수 가능한 근사치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선택했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과학자는 이렇게 하나의 특정한 대안을 신봉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즉 그는 실수를 했을 수 있다. 그의 이론과 양립 불가능한 단 하나의 관찰은 그가 줄곧 잘못된 이론을 사용해 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면 그의 개념 체계는 버려지고 교체되어야 한다.

이는 과학 혁명의 개략적인 논리적 구조다. 경제적이고, 생산적이고, 우주론적으로 만족스럽다는 이유로 신봉되었던 개념 체계는 종국에 관찰과 양립 불가능한 결과를 낳는다. 그러면 믿음은 굴복해야 하고 새로운 이론이 채택되어야 한다. 이후 그 과정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는 유용한 밑그림인데, 왜냐하면 이론과 관찰의 양립 불가능성은 과학에서 나타나는 모든 혁명의 궁극적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혁명의 과정은 그 논리적 밑그림이 제시한 것처럼 단순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그럴 수도 없었다. 이미 보기 시작했듯이, 관찰은 개념 체계와 완전히 양립 불가능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코페르니쿠스에게 행성들의 행동은 2구체 우주와 양립 불가능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원을 추가하고 있는 그의 선배들이 단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를 관찰과 억지로 일치시키기 위해 때우고 늘이고 있을 뿐이라고 느꼈으며, 그러한 땜질과 왜곡이 필요하다는 바로 그 점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정확히 똑같은 종류의 기구와 관찰을 사용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선배들은 똑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평가했다. 코페르니쿠스에게는 왜곡과 땜질이었던 것이 그들에게는 적응과 확장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는데, 이는 지구와 별들에 맞게 처음 설계된 2구체 우주에 태양의 운동을 통합하기 위해 필요했던 예전의 과정과 거의 마찬가지로 보였다. 코페르니쿠스의 선배들은 그 체계가 결국에는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요컨대, 개념 체계가 관찰과 화해할 수 없는 충돌을 겪고 있는 것 같을 때 과학자들이 그 개념 체계를 정말로 버린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논리적 양립 불가능성에 대한 강조는 중대한 문제를 감춘다. 일시적인 불일치로 보이는 것을 피할 수 없는 충돌로 변화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한 세대에서는 섬세하고, 유연하고, 복잡한 것으로 감탄하며 얘기되던 개념 체계가 어떻게 이후 세대에게는 단지 불분명하고, 모호하고, 번거로운 것이 될 수 있는가? 과학자들은 왜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이론을 고수하며, 그들은 왜 그동안 고수해 왔던 이론을 포기하는가? 이들은 과학적 믿음의 구조와 관련된 문제들이다. 그것들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진정한 무대를 마련하는 부분인 다음 두 장의 일차적인 관심사다.

그러나 우리의 당면한 문제는 고대의 천문학 연구 전통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방식을 분석하는 일이다. 이 전통은 어떻게 천문학적 상상을 안내하고, 연구에 이용 가능한 관념을 제한하고, 특정한 종류의 혁신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고 수용하기 어렵게 만든 일련의 정신적 틀을 제공할 수 있었을까? 적어도 함축적으로는, 우리는 이미 이 문제의 순전히 천문학적인 측면을 다루었다. 2구체 우주와 그에 결합한 주전원ᐨ주원 기법은 둘 다 처음에는 매우 경제적이고 생산적이었다. 그들이 거둔 최초의 성공은 그 접근의 근본적인 건전성을 보증하는 것 같았다. 관찰과 일치하는 수학적 예측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분명 미세한 수정만이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러한 종류의 확신은 깨지기 어려우며, 특히 그것이 한 세대 전체의 천문학자들의 실천 양식 속에 포함되어 그 후계자들에게 강의와 글을 통해 전달되고 나면 더 어려워진다. 이는 과학적 관념의 영역에서 나타난 밴드왜건 효과[5]다.

그러나 밴드왜건 효과는 천문학 전통의 위력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아니며, 그 설명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천문학적 문제에서 완전히 떠날 것이다. 2구체 우주는 천문학 내부의 문제들만큼이나 외부의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구하는 데에도 생산적인 가이드를 제공했다. 기원전 4세기 말 무렵, 그것은 행성들의 문제뿐 아니라 낙엽이 떨어지고 화살이 날아가는 것과 같은 지상의 문제와 인간과 신의 관계와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도 적용되었다. 만약 2구체 우주, 그리고 특히 중심의 고정된 지구 관념이 모든 천문학 연구의 의심할 수 없는 시작점 같았다면, 이는 기본적으로 그 천문학자가 물리학과 종교도 함께 뒤집지 않고서는 더 이상 2구체 우주를 뒤집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근본적인 천문학적 개념들은 훨씬 더 커다란 사고 체계의 구성 요소가 되었고, 그 사고 체계의 비천문학적 요소들은 천문학자들의 상상을 구속하는 데 천문학적 요소들만큼 중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이야기는 단순히 천문학자들과 하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참고문헌 및 역자주

  1. (옮긴이 주) 내행성(inferior planets)과 외행성(superior planets)의 구분은 프톨레마이오스가 태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관측되는 수성과 금성을 그렇지 않은 화성, 목성, 토성에 비해 열등한(inferior) 행성으로 구분한 것에서 유래하였으나, 태양중심설이 수용된 이후에는 지구 안쪽과 바깥쪽의 행성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재정의되었다.
  2. (옮긴이 주) 행성의 이각(離角, elongation)이란 지구상에서 보았을 때 태양과 행성이 이루는 각도를 말한다.
  3. Vitruvius, The Ten Books on Architecture, trans. M. H. Morgan(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6), pp. 261∼262.
  4. Sir Thomas L. Heath, Arstarchus of Samos (Oxford: Clarendon Press, 1913), p. 140.
  5. (옮긴이 주)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란 행렬의 선두에 선 악대차(band-wagon)가 연주를 하며 지나가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무작정 뒤따르면서 군중들이 불어나는 현상을 비유한 용어로, ‘편승 효과’라고도 한다.

목차

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원문 :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