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혁명/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2구체 우주

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3장.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

천문학의 개념과 천문학 외부의 개념이 하나의 정합적인 개념 체계로 엮여 있는 고대의 세계관을 살펴보려면, 우리는 연대기적인 순서를 거슬러 잠시 기원전 4세기 중반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에는 행성들의 문제에 대한 기술적으로 발전된 해법이 거의 시도되지 않았지만, 행성 천문학자들의 수학적 연구에 길잡이가 되어 주던 바로 그 2구체 우주론에는 이미 핵심적인 비천문학적 기능들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위대한 그리스의 철학자 겸 과학자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의 방대한 저작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의 견해들은 후에 중세 대부분과 르네상스 상당수의 우주론적 사고에 출발점을 제공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은 불완전한 동시에 고도로 편집된 형태로만 우리에게 전달되었는데, 그 글들은 논리학, 형이상학, 정치학, 수사학, 문예 비평과 같은 비과학 분야뿐 아니라 오늘날 물리학, 화학, 천문학, 생물학, 의학으로 부를 만한 과학적 주제들도 다루고 있다. 그 각각에, 특히 생물학, 논리학, 형이상학에,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새 아이디어들을 내놓는 기여를 했지만, 산재해 있는 그의 많은 내용적인 기여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지식을 체계적이고 정합적인 전체로 정리한 일이다. 그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 속에서 비일관성이나 간혹 있는 모순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인간과 우주에 대한 그의 관점에는 근본적인 통일성이 있으며, 그 후로 그에 필적하는 범위와 독창성을 갖춘 통일성은 달성된 적이 없다. 그 점은 그의 글들이 그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던 한 가지 이유다. 다른 이유들은 이 장의 끝에서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선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 그 자체에 대한 간략한 구조적 스케치가 필요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 지구와 천구에 부여된 복합적인 기능에 대한 더 상세한 논의는 그다음에 이루어질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전체 우주는 항성 천구 안쪽에, 더욱 정확하게는 항성 천구의 바깥 표면 안쪽에 담겨 있다. 그 천구 안쪽 구석구석에는 어떤 종류의 물질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에는 어떠한 구멍이나 진공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 천구 바깥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질도, 공간도, 아무것도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서 물질과 공간은 함께 따라다닌다. 그들은 같은 현상의 두 측면으로, 진공이란 관념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의 유한한 크기와 유일성을 가까스로 설명했던 방법이다. 물질과 공간은 함께 끝나야 한다. 우리는 우주의 경계를 짓기 위해 벽을 세울 필요가 없으며, 그러면 무엇이 그 벽을 둘러싸고 있는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책 『하늘에 관하여(On the Heavens)』에 적은 것처럼,

그러면 … 하늘 너머에는 어떠한 물체도 있지 않으며,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세계 전체는 이용 가능한 물질의 총합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 우리는 복수의 세계가 현재 존재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없었고, 있을 수도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세계는 단 하나의 고립된 완전한 세계다. 추가적으로 하늘 너머에는 장소도 진공도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모든 장소에는 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며, 진공은 정의상 현재 물체를 담고 있지 않지만 그것을 담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

1장에서 일부를 짧게 묘사한 플라톤의 우주와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는 자급자족적이며 그 바깥에는 아무것도 남겨 두지 않는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내부를 플라톤보다 훨씬 더 세분화했다. 그 내부의 가장 큰 부분은 단일한 원소 에테르(aether)로 채워져 있는데, 에테르는 속이 빈 거대한 천구를 형성하는 겹겹의 동심 껍질 세트를 구성하고 있다. 여기서 이 거대한 천구의 바깥쪽 표면은 항성 천구의 바깥 면을 이루고, 안쪽 표면은 가장 아래쪽 행성인 달을 운반하는 동심 천구의 안쪽 면이 된다. 에테르는 천상계의 원소로, (그 고체성은 그 후계자들에 의해 자주 의문시되긴 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에서는 수정 같은 고체였다. 지구상에서 알려진 물질들과 달리, 그것은 순수하고 변치 않으며, 투명하고 무게가 없다. 그것으로 행성들과 별들이 만들어지고, 뿐만 아니라 그 회전을 통해 천체 운동을 설명해 주는 겹겹의 동심 구형 껍질들도 만들어진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와 코페르니쿠스의 시대 사이에는, 하늘을 움직이는 이 천구들의 형태와 물리적 실재성에 대한 수많은 다양한 관점들이 퍼져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은 그중에서 가장 상세하고 분명했다. 그는 에테르로 만들어진 딱 55개의 진짜 수정체 껍질이 있으며 이 껍질들은 모종의 물리적 기계장치, 즉 에우독소스와 그 후계자 칼리포스가 개발한 수학적 동심 천구 체계를 구현하고 있다고 믿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의 수학자들이 사용한 천구의 수를 거의 두 배로 늘렸지만, 그가 추가한 천구들은 수학적으로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들의 기능은 전체 동심 껍질 세트를 계속 돌리는 데 필요한 기계적인 연결 부위를 제공하는 것으로, 그들은 항성 천구에 의한 동력을 가지고 전체 천구 세트를 거대한 천상의 시계장치로 바꾸어 놓았다. 우주는 꽉 차 있기 때문에, 모든 천구는 맞닿아 있으며, 천구와 천구의 마찰은 전체 체계에 대한 동력을 제공했다. 항성 천구는 그와 가장 가까운 안쪽 이웃인, 일곱 동심 껍질 중 가장 바깥의 토성 운반용 껍질을 밀어 주었다. 그 껍질은 토성 세트의 안쪽 이웃을 밀어 주었고, 또 그다음, 그다음을 밀어 주어 결국 그 운동은 최종적으로 달 운반용 세트의 가장 안쪽 껍질까지 전달되었다. 이것은 에테르 껍질들 중 가장 안쪽의 것으로, 천상계 또는 달 위 세계의 아래쪽 경계였다.

수리 천문학의 목적을 위해 동심 천구를 대체한 주전원ᐨ주원 세트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안한 것과 같은 수정 천구에 그리 잘 들어맞지 않았다. 그 결과 주전원의 운동에 대한 기계적인 설명을 찾기 위한 노력은 기원전 4세기 이후로 보통 등한시되었으며, 수정 천구의 실재성은 가끔 의문시되었다. 예를 들어, 프톨레마이오스가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믿었는지는 ≪알마게스트≫에 분명히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 사이의 기간 동안, 천문학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교양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식 천구의 한 변종 버전은 믿은 것 같다. 그들은 별들에 대해 하나의 구형 껍질과 각 행성들마다 하나의 껍질을 인정했으며, 그들은 각각의 행성 껍질이 딱 적당하게 두꺼워서 그 행성이 중심의 지구에 가장 가까워질 때에는 껍질의 안쪽 표면에 닿고 지구에서 가장 멀어질 때에는 껍질의 바깥쪽 표면에 닿는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여덟 개의 천구는 하나 안쪽에 다른 하나가 겹겹이 끼워져 전체 천상계를 채웠다. 항성 천구의 운동은 별들의 일주 운동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제공했다. 일곱 행성 천구의 끊임없는 회전은 행성들의 평균 운동을, 단지 평균 운동만을 설명했다. 행성 운동의 불규칙성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두꺼운 천구들을 완전히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각 행성은 자신의 천구에 박혀 있었고, 그 천구에 의해 운반됐다. 행성 천문학자들은 주전원, 주원, 대심, 이심원을 사용해 각 행성이 자신의 두꺼운 구형 껍질 내에서 움직이는 것을 설명했다. 그들에게 그 껍질들은 보통 적어도 은유적인 실재성을 가졌지만, 그들은 행성이 자신의 천구 내에서 운동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설명하는 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고서 5세기 이상 지난 뒤에, 이 두꺼운 겹겹의 구형 껍질 관념은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시대의 천문학에 하나의 중요한 기술적인 구성 요소를 더해 주었다. 그것은 천문학자들에게 각 행성 천구들의 실제 크기를, 그리고 결국에는 우주 전체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별들 사이를 다니는 행성 운동에 대한 관찰을 통해 천문학자는 그 주전원과 주원의 상대 크기 또는 그 이심의 상대적인 정도만을 알아낼 수 있다. 주전원, 주원, 이심의 상대적인 크기가 일정하게 유지될 경우, 합성된 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행성 체계를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것은 행성이 황도상에서 보이는 위치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각 구형 껍질마다 자신의 행성이 지구에 가장 가까워질 때와 가장 멀어질 때 그 행성을 포함할 정도로만 두껍다면, 주전원, 주원 등의 상대적인 크기에 대한 지식은 각 천구의 안쪽 직경과 바깥쪽 직경의 비율을 구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만약 천구들이 전체 천상계를 채울 수 있도록 겹겹이 있어야 한다면, 한 천구의 바깥쪽 직경은 그다음 천구의 안쪽 직경과 같아야 하고, 모든 껍질 간 경계에 대해 그 거리들의 비율이 계산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상대 크기들은 상세 부록 4절에서 다룬 방법을 통해 기원전 2세기에 알아낸 달 천구까지의 거리를 이용해서 절대 거리들로 변환될 수 있다.

공간을 채운 천구들이 각 행성의 주전원들과 다른 원들을 담을 만큼만 크다는 관념에 기초한 크기 추정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죽기 전까지 천문학 문헌에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아마도 최초의 행성 천문학자들이 그러한 천구들의 실재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기원후 5세기 이후에, 이러한 종류의 추정은 상당히 일반적인 것이 되었고, 이는 다시 한 번 그 전체 우주론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데 기여했다. 널리 알려진 우주 크기 세트의 하나는 기원후 9세기에 살았던 아랍 천문학자 알파르가니(Al Fargani)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달 천구의 바깥쪽 표면은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64⅙지구반지름 거리에 있었고, 수성 천구의 바깥쪽 표면은 중심으로부터 167지구반지름 거리에 있었으며, 금성 천구는 1,120, 태양 천구는 1,220, 화성 천구는 8,867, 목성 천구는 14,405, 토성 천구는 20,110지구반지름 거리에 있었다. 알파르가니는 지구반지름을 3,250로마마일[2]로 대입했기 때문에, 그는 항성 천구를 지구에서 7천5백만 마일보다 멀리 떨어진 곳에 두었다. 이는 엄청난 거리지만, 현대 이론에 따르면 그 거리는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보다 거의 백만 배나 작다.

알파르가니의 측정을 보면, 지상계, 즉 달 천구 바닥면 아래의 공간은 우주에서 극히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간은 하늘이고, 대부분의 물질은 수정 천구를 이루는 에테르다. 그러나 달 아래 세계의 크기가 작다고 해서 그곳이 덜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버전에서도,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의 중세 기독교식 개정판에서는 훨씬 더 대단한 정도로, 우주의 그 작은 중핵은 진정한 알짜배기로 간주되며, 그 나머지는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곳은 인간의 거주지로, 그 성격은 그 위에 있는 천상계의 성격과 매우 다르다.

달 아래 세계는 하나의 원소가 아닌 네 개의(또는 후대 논자의 경우에는 또 다른 적은 수의) 원소로 채워져 있으며, 이 네 개의 지상계 원소의 분포는 이론상으로는 간단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앞으로 살펴볼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법칙에 따르면, 그 원소들은 외부에서 밀거나 당기지 않을 경우 그들을 둘러싼 다섯 번째 원소의 에테르 천구들처럼 일련의 네 개의 동심 껍질로 정착한다. 흙(earth)[3]은 무거운 원소로서, 자연히 우주의 기하학적 중심으로 이동해 구체를 형성할 것이다. 물은 역시 무겁지만 흙만큼 무겁지는 않은 원소로서, 흙으로 이루어진 중심 영역 주위의 구형 껍질에 놓일 것이다. 불은 가장 가벼운 원소로서, 스스로 올라가 달 천구 바로 아래에 자신의 껍질을 형성할 것이다. 공기는 역시 가벼운 원소로서, 물과 불 사이에 남아 있는 껍질을 채움으로써 그 구조를 완성할 것이다. 이러한 자리들에 도달해 있다면, 그 원소들은 자신의 완전한 원소적 순수성을 간직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외부의 힘에 간섭받지 않은 채 그대로 둘 경우, 달 아래 세계는 천구들의 구조와 흡사한 정적인 세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상계는 절대로 평온할 수 없다. 지상계는 움직이는 달 천구로 둘러싸여 있으며, 이 경계선상의 운동은 그 아래에 있는 불의 층을 끊임없이 밀어 주면서, 달 아래 세계 전역에 걸쳐 원소들을 밀치고 섞는 흐름을 만든다. 따라서 원소들은 절대로 순수한 형태로 관찰될 수 없다. 직접적으로는 달 천구로부터, 궁극적으로는 항성 천구로부터 유래한 끊임없는 밀침의 연쇄는 그 원소들이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비율로 섞여 있도록 해 준다. 그래도 껍질들의 구조는 대체로 유지되어, 해당 원소는 해당 영역에서 주를 이룬다. 그러나 각 원소는 다른 원소들을 적어도 극소량 포함하며, 이는 그 원소의 특성을 변화시켜, 그 혼합 비율에 따라 지구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물질들을 만든다. 따라서 하늘의 운동은 달 아래 세계에서 관찰되는 모든 변화와 거의 모든 다양성에 책임이 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문학 전통이 가진 위력에 대한 우리의 탐색은 바로 이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앞의 스케치에서는 그것의 범위와 적합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부딪힌 실제적인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천문학자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계속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자 적어도 평균적인 행성 궤도들의 안정적인 중심이어야 한다고 가정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익숙한 대답은 이미 분명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즉 고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겸 과학자가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선언했으며, 그의 말은 그 후계자들에게 엄청나게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 대다수에게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그 철학자’[4]로서, 과학과 우주론의 모든 질문에 대한 최고의 권위가 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는 중요하긴 하지만 해답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그는 후대의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거부하는 데 하나도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것도 매우 많이 말했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고와 우주론적 사고에서, 고대 세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분명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은 다른 학파들도 있었다. 그가 과학적 문제들에 대해 정말로 지배적인 권위를 행사했던 중세 후기의 몇 세기 동안에도, 학자들은 그의 교의 중 많은 고립된 부분들에서 과감한 변화를 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 가르침에 도입한 변경 목록은 거의 끝이 없으며, 이러한 변경사항들 중 일부는 전혀 사소하지 않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를 향한 그 후계자들의 비판들 중 몇몇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직접적인 인과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후대의 어떠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도 지구가 행성이라거나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고는 제안하지 않았다. 그러한 혁신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가 상상하거나 수용하기 아주 어려운 것이었음이 드러났는데, 왜냐하면 유일한 중심의 지구라는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식 사고 체계 내에서 너무나 많은 다른 중요한 개념들과 서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는 네 개가 아닌 세 개나 다섯 개의 지상계 원소로도 그만큼 잘 만들어질 수 있었으며, 동심 천구들이 아닌 주전원들로도 그만큼 잘 만들어질 수 있었지만, 지구를 행성으로 만드는 변화는 이겨 낼 수 없었으며 이겨 내지 못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움직이는 지구에 맞춰 본질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우주를 설계하고자 했지만, 그는 실패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의 혁신에 따른 모든 귀결들을 알게 되었고, 아리스토텔레스적 구조 전체는 허물어졌다. 중심의 안정된 지구라는 개념은 긴밀하게 짜인 정합적 세계관의 몇 안 되는 주요 구성 개념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법칙들

천문학적 사고와 비천문학적 사고의 통합을 보여 주는 첫째 사례는 지상계의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 나온다. 이미 언급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믿음에 따르면, 궁극적으로는 하늘에서 유래된 외부의 밀침이 없다면 각각의 지상계 원소들은 지상계에서 저마다의 자연스러운 구역에 머물러 있다. 흙은 자연스럽게 중심에 머무르고, 불은 변방에 머무르고, 등등. 사실, 원소들과 그것들로 구성된 물체들은 그들의 자연스런 위치에서 끊임없이 밀려난다. 그러나 그것은 힘의 작용을 필요로 하고, 원소는 이동에 저항하며, 일단 쫓겨나면 가능한 한 짧은 경로로 자연스런 위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돌이나 다른 어떤 흙성 물질을 들어올려 보라. 그러면 그것이 우주의 기하학적 중심에 있는 자신의 자연스런 위치로 가려고 빠져나가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또는 맑은 날 밤에 불의 불꽃들이 위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라. 그 불꽃들은 지상계의 변방에 있는 자신들의 자연스런 자리를 향해 매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중에 우리는 지상계 운동에 대한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식 설명의 심리적 원천과 위력을 검토할 것이다. 그러나 지상계 물리학에서 끌어온 이 교의들이 천문학자의 지구 중심 우주를 위해 제공하는 보호막을 우선 짚고 넘어가자. 『하늘에 관하여』의 중요한 구절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교의들로부터 땅의 구형성, 안정성, 위치적 중심성을 도출했다. 우리는 앞서 그것들이 천문학적 논증들에 의해 유도된 것을 보았지만, 천문학적 고려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지에 주목하라.

흙 전체의 자연스러운 운동은 그 부분의 운동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중심을 향한다. 이는 땅이 현재 중심에 놓여 있는 이유다. 둘 모두의 중심이 같은 점에 있기 때문에, 무슨 연유로 무거운 물체들 혹은 땅의 부분들의 자연스러운 운동이 그곳을 향하는 것인지 질문할 수 있다. 그곳이 우주의 중심이라서? 아니면 땅의 중심이라서? 그러나 그들이 향하는 곳이 우주의 중심임에는 틀림이 없다. … 땅과 우주는 같은 중심을 가지게 되었다. 즉 분명 무거운 물체들은 땅의 중심을 향해서도 움직이지만, 이는 우연히도 땅이 우주의 중심에 자신의 중심을 가지면서 벌어진 일일 뿐이다. …

이러한 고려로부터, 땅은 움직이지 않으며 중심을 빼고는 다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게다가 그 부동성의 이유는 우리의 논의로부터 명백해진다. 만약 (관찰이 보여 주는 것처럼) 사방에서 중심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흙의 본성에 내재한 것이고, 중심으로부터 사방으로 움직이는 것이 불의 본성에 내재한 것이라면, 강제로 이끌지 않는 한 흙의 어떤 부분도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그리고 만약 어떠한 특정 부분도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땅 전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전체는 부분의 자연스러운 운동이 향하는 장소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

땅은 반드시 구형일 수밖에 없다. … 그것이 뜻하는 바를 깨닫기 위해서는 지구의 형성 과정을 상상해 보아야 한다. … 일단, 입자들이 사방에서 똑같이 하나의 점, 중심을 향해 움직인다면,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덩어리는 모든 면에서 비슷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사방에서 골고루 똑같은 양이 쌓인다면, 그 덩어리의 표면은 중심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양은 구다. 그러나 이 논증은 땅의 조각들이 사방에서 중심을 향해 균일하게 날아오지 않았더라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두 물체가 중심에 최대한 가까이 가는 성향을 가졌을 경우, 더 큰 물체는 항상 그 앞에 있는 더 작은 물체를 죽 밀어 줄 것이고, 이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

추가적인 증거는 감각에 의한 증거에서 나온다. (i) 만약 땅이 둥글지 않았다면, 월식은 지금과 같은 모양대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ii) 별에 대한 관찰은 땅이 구형이라는 점뿐 아니라 그 구가 별로 크지 않다는 것까지 보여 준다. 왜냐하면 우리가 남쪽 또는 북쪽으로 조금만 자리를 옮겨도 지평선이 그리는 원이 변화해서 우리 머리 꼭대기에 있던 별들의 위치가 상당히 달라지고, 북쪽이나 남쪽으로 움직임에 따라 똑같은 별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집트와 키프로스 근방에서 보이는 어떤 별들은 더 북쪽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고, 북쪽 지역의 나라에서 항상 보이는 별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지는 것이 관찰된다. 이는 지구가 구형이라는 점과 그 구의 직경이 크지 않다는 점을 함께 증명해 준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정도의 작은 위치 변화는 그렇게 즉각적인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헤라클레스의 기둥[5] 부근의 지역이 인도 지역과 연결되어 있고 이런 방식으로 바다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전혀 터무니없는 것 같지는 않다.[6]

이와 같은 구절들은 천문학과 지상계 물리학이 독립적인 과학이 아니란 것을 암시한다. 하나를 위해 개발된 관찰과 이론들은 다른 하나에서 나온 것들과 밀접하게 엮이게 된다. 따라서 행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이 천문학자에게 움직이는 지구 관념을 가지고 천문학 내에서 실험해 보는 동기를 제공했을 수는 있지만, 그는 그 과정에서 지상계 물리학의 수용된 토대를 뒤집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움직이는 지구라는 그 관념은 그에게 떠오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왜냐하면 그의 천문학 외부의 지식에서 연유한 이유들 때문에 그 관념은 너무나 이상해 보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프톨레마이오스와 그 후계자들이 후에 아리스타르코스와 헤라클레이데스와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천문학적 가설을 두고 천문학적으로는 만족스럽지만 ‘터무니없다’고 묘사했을 때 실제로 의도했던 의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알마게스트』에 나온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이 구절에서 프톨레마이오스는 항성 천구가 정지해 있고 그 겉보기 서향 일주 운동이 실제로는 중심 지구의 동향 일주 회전 때문에 일어난다는 헤라클레이데스의 이론을 거부하고 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위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했던 것과 매우 비슷하게 땅의 구형성과 중심 위치에 대한 논증에서 시작한다. 그의 논의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일부 사상가들은 위의 논증에 대한 어떠한 반론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생각하는 체계가 더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하며, 편의상 하늘이 움직이지 않지만 땅이 동일한 축을 중심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대략 매일 한 바퀴씩 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의 견해에 반하는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

그러나 천상계의 현상들에 관해서는 어쩌면 이 이론의 난점이 하나도 없다 하더라도, … 우리와 우리 주변 공기 중에 있는 것들을 움직이는 [지상의] 조건들을 가지고 판단하자면 그러한 가설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 사람들은 잊고 있다. … [만약 땅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렇게 거대한 원을 돌아 같은 자리에 돌아온다고 한다면, … 땅 위에 실제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 모든 것들은 항상 땅과 반대 방향으로 동일한 운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며, 구름을 비롯해 날거나 던져질 수 있는 모든 것은 동쪽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절대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땅은 항상 그들 모두보다 빨리 돌아 동쪽으로 움직이는 그들의 운동을 앞지름으로써, 다른 모든 것은 서쪽으로, 즉 땅이 뒤에 남겨 둔 부분으로 뒤처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7]

프톨레마이오스의 논증의 요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과 같으며,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했던 다른 많은 논증들도 동일한 원리에서 유래했다. 밀쳐지지 않는 한, 물체는 자신의 자연스런 위치를 향해 곧게 이동한 다음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이 자연스러운 위치들과 물체가 그곳으로 움직이는 선들은 절대 공간의 내재적 기하학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며, 이 공간에서 각 위치와 방향에는 그 위치의 점유 여부와 상관없이 영구적인 이름이 붙는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늘에 관하여≫의 다른 곳에서 말했듯이, “만약 현재 달이 있는 곳으로 땅이 옮겨진다면, 땅의 각 부분은 전체를 향해 움직이지 않고 원래 그 전체가 있던 곳[중심]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8] 돌의 자연스러운 운동은 공간에 의해서만 좌우될 뿐, 그 돌과 다른 물체들 사이의 관계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위로 수직으로 던져진 돌은 공간에서 완전히 고정된 직선을 따라 올라갔다 돌아오며, 만약 돌이 공기 중에 있는 동안 땅이 움직인다면, 그 돌이 땅에 복귀하는 지점은 출발했던 지점과 다를 것이다. 같은 이유로, 이미 자신의 자연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구름은 땅이 도는 동안 뒤처지게 될 것이다. 움직이는 땅이 공기를 함께 데리고 다닐 경우에만, 구름이나 돌이 땅을 따라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나, 공기의 운동도 돌을 땅의 회전과 보조를 맞춰줄 정도로 세게 밀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에도 어려움이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나중에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그러나 2구체 우주 자체와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운동 이론은 운동의 이해를 향한 아주 멋진 첫걸음으로, 그것은 중심에 정지해 있는 지구를 꼭 필요로 한다. 따라서 행성 지구의 옹호자들에게는 새로운 운동 이론이 필요할 것이며, 그러한 이론이 발명되기 전까지, 즉 중세 시대 동안, 지상계 물리학에 대한 지식은 천문학적 상상을 방해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플레넘

그의 천문학 지식과 비천문학 지식 사이의 정합적인 연관이 천문학자들의 눈가리개 역할을 하게 된 둘째 사례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꽉 찬 우주, 즉 플레넘[9] 관념에서 나온다. 이 사례는 직전의 것보다 전형적인데, 왜냐하면 지식의 다양한 요소들 사이의 매듭이 여기서는 위에서 든 사례보다 수는 많지만 덜 단단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복잡한 패턴은 이제야 등장하기 시작한다.

우주의 충만성이라는 고대의 관념은 흔히 공백 공포(horror vacui), 즉 진공에 대한 자연의 혐오로 얘기된다. 설명적 원리로서 그것은 다음과 같이 다시 표현될 수 있다. 자연은 항상 진공의 형성을 막도록 행동할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형태의 공백 공포를 매우 다양한 자연 현상으로부터 끌어냈고, 또 그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그 원리를 사용했다. 좁은 입구를 가진 열린 병에서는 병에 다른 구멍이 생기지 않는 한 물이 흘러나오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공기가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구멍이 없이는 물이 나오면서 그 뒤에 진공을 남겨 두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이펀, 물시계, 펌프는 똑같은 기초 위에서 경제적으로 설명됐다. 몇몇 고대 사상가들은 공백 공포를 접착력에 대한 설명과 열풍기관이나 증기기관의 설계에 적용했다. 진공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사치는 그리스인들이 알지 못했던 장치 없이는 지구상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16세기 심부 광산의 대규모 개발과 더불어 양수 펌프가 30피트[약 9~10미터] 이상 물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것이 발견되기 전까지 그 원리를 위협하는 공기역학적 현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백 공포를 거부하는 것은 다수의 지상계 현상에 대한 만족스러운 과학적 설명을 통째로 파괴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대부분의 후계자들에게, 공백 공포는 지표면 부근에서 적용될 수 있는 성공적인 실험적 원리를 넘어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계에서 진공이 실제로 없을 뿐 아니라 우주 어디에서나 진공이 원리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진공이라는 바로 그 개념은 그에게 ‘사각 원’ 개념과 같은 용어상의 모순이었다. 누구나 ‘진공’ 튜브를 보고 ‘진공’ 펌프를 듣는 오늘날, 진공의 불가능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증명은 거의 아무에게도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그의 논증에서 오류를 발견하기는 꽤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실험적 반증 사례가 없던 상황에서, 그 논증들은 설득력 있어 보였다. 왜냐하면 그 논증은 물질과 공간의 문제들을 다루는 우리의 말에 내재한 진정한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공간은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크기로만 정의될 수 있다. 물체 없이는 그 공간이 정의될 대상이 아무것도 없다. 즉 공간은 분명 혼자서는 전혀 존재할 수 없다. 물질 없이는 공간도 존재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어려운 말을 옮기자면, “물질적 실체의 크기 외에 독립적인 존재자로서의 크기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10]

따라서 꽉 찬 우주 이론은 논리와 실험이 결합된 권위를 안고 고대 과학에 들어왔으며, 그 이론은 곧바로 우주론과 천문학 이론의 필수적인 구성 성분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 이론은 항성 천구 안쪽에서 운동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서도 사용된다. 만약 천상계 또는 지상계의 껍질들 중 하나라도 진공으로 교체된다면, 그 껍질 안쪽의 모든 운동은 멈출 것이다. 껍질과 껍질 사이의 마찰은 자연스러운 위치로의 회복을 제외한 모든 운동을 산출하기에, 진공은 밀침의 연쇄를 끊을 것이다. 다시, 이미 지적했던 것처럼, 진공의 불가능성은 우주의 유한성의 토대가 된다. 항성 천구 너머에는 공간도, 물질도, 아무것도 없다. 물질과 공간을 불가분의 관계로 묶어 준 개념 없이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무한성을 인정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물질의 경계는 진공에 의해 정해지고 다시 진공의 경계는 물질에 의해 정해지겠지만, 우주가 완전히 끝나는 종착점, 즉 마지막 경계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무한 우주는 두 가지 이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가 되기 힘들었다. 무한 우주에는 중심이 없다. 모든 점은 그 사방에 있는 모든 점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다. 그리고 만약 중심이 없다면, 무거운 원소인 흙이 모일 수 있는 선호 지점이 없어지고, 자신의 적절한 장소로 돌아가는 원소의 자연스러운 운동을 결정하는 고유한 ‘위’와 ‘아래’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각 장소는 다른 모든 장소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뒤에서 더 완전하게 보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체 운동 이론은 유한하고 꽉 찬 공간의 관념과 불가분하게 묶여 있다. 그 둘은 운명공동체다. 공간의 무한성이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에게 야기하는 어려움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만약 공간이 무한하고 특별한 중심점이 없다면, 우주 안의 흙, 물, 공기, 불이 단일한 지점에 모이는 것은 개연성이 거의 없다. 무한 우주에서는 다른 세계들이 공간 전역에 걸쳐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쩌면 이러한 다른 세계에는 식물, 인간, 동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즉, 지구의 유일성이 사라진다. 모든 것을 움직이는 외각의 힘은 그와 함께 사라진다. 인간과 지구는 우주의 초점에 있기를 멈춘다. 고대에도 중세 시대에도, 원자론자들처럼 우주가 무한하다고 믿었던 철학자들은 대부분 스스로 진공의 실재성뿐 아니라 여러 세계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압력을 느꼈다. 그리고 17세기까지는 이러한 일련의 개념들을 끌어안은 누구도 지상계와 천상계의 일상적인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서 아리스토텔레스에 필적할 만한 우주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오늘날 무한 우주는 상식적인 우주일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상식은 재교육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에서 꽉 찬 우주 관념의 다양한 역할은 우주론 또는 세계관의 정합성을 보여 주는 하나의 잘 갖춰진 사례다. 플레넘은 공기역학, 운동의 지속, 공간의 유한성, 운동 법칙, 지구의 유일성과 결부되어 있다. 그 목록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플레넘이 지구의 유일성이나 중심적 위치나 부동성을 논리적으로 수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것은 중심의 움직이지 않는 유일한 지구가 또 하나의 중요한 가닥으로 엮여 있는 정합적인 패턴에 잘 어울릴 뿐이다. 역으로, 지구의 운동도 진공의 존재나 우주의 무한성을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 견해가 모두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승리 직후에 수용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코페르니쿠스는 둘 다 믿지 않았다. 앞으로 보겠지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의 핵심 특징들 대부분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지구에 자전을 도입함으로써 그는 항성 천구를 움직이지 않게 만들었고, 이는 항성 천구에게서 물리적 기능을 빼앗았다. 그리고 지구에 공전을 도입함으로써 그는 그 천구의 크기를 엄청나게 키울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은 행성 간 물질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그것의 본질적인 기능 대다수를 없애는 동시에 그것이 훨씬 더 많이 있어야 함을 요구했다. 곧이어 그의 후계자들은 이제는 기능이 없어진 천구를 부숴 버렸고, 별들을 공간 전역에 흩뿌렸으며, 그들 사이에 진공 혹은 그와 매우 흡사한 것을 수용했고, 우리의 태양계 너머 광대한 영역에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다른 세계에 대한 꿈을 꾸었다. 공백 공포의 지상계 원리도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새로운 우주의 과학자들은 실제 광부들이 지나치게 긴 양수 펌프 꼭대기에서 지상계의 진공을 한 세기 동안 만들어 왔다는 것을 훨씬 더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곧 기압은 17세기 공기역학 관념에서 진공을 대체했다. 많은 다른 힘들도 공기역학의 변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그 이야기는 복잡하다−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은 그 이야기에서 필수적인 구성 성분이다. 다시 한 번 천문학 이론은 다른 과학 이론들과 밀접하게 얽혀 있음이 드러나며, 그러한 다른 과학들은 천문학적 상상을 좌우한다.

하늘의 위대함

그러나 천문학 이론의 천문학 외적 얽힘은 과학에 한정되지 않는다. 천문 관측의 동기에 대한 앞선 논의에서 계속 암시되었듯이, 고대의 천문학 전통은 부분적으로는 하늘의 힘과 안정성 대 지상계 삶의 무력한 불안정성이란 차이에 대한 광범위한 원시적 직관의 존재 자체에 빚을 지고 있다. 이러한 동일한 직관은 달 위 세계와 달 아래 세계 사이의 절대적 구분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통합되어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도로 논리 정연한 버전에서 그 구분은 지구의 중심적 위치와 별과 행성의 운동 모두를 만들어 내는 천구의 완벽한 대칭성 모두에 명시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달 천구의 바닥면은 우주를 완전히 분리된 두 영역으로, 즉 다른 종류의 물질로 채워져 다른 법칙의 지배를 받는 두 영역으로 나눈다. 인간이 사는 지상계는 다양성과 변화, 탄생과 죽음, 생성과 소멸의 영역이다. 반면 천상계는 영원하며 변화가 없다. 모든 원소들 중에서 에테르만이 순수하고 불멸이다. 오직 서로 연결된 천구들만이 자연스럽게 영원히 원을 따라 움직이며, 절대로 속도가 변화하지 않고, 항상 똑같은 공간을 차지하며, 영원토록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이러한 천구의 물질과 운동은 하늘의 불변성과 위대함에 걸맞은 유일한 것들이며, 지구상의 모든 다양성과 변화를 만들고 지배하는 것은 바로 하늘이다. 우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적 묘사에서 땅을 둘러싼 하늘은 모든 원시 종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상의 삶을 좌우하는 완벽함과 힘의 장소다. ≪하늘에 관하여≫는 그 점을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다.

지금까지 얘기된 것으로부터, … 만물 중 가장 으뜸이 되는 물체[즉, 천체]는 영원하며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지만, 나이를 먹지 않고, 변하지도 않고, 감정도 없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또한 내 생각에 이 논증은 경험을 뒷받침해 주는 동시에 경험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은 신 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두는 이방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신을 최고의 자리에 배정하는데, 이는 분명 신의 존재를 믿는 그 많은 사람들이 불멸의 존재는 불멸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들 생각에, 다른 방식은 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만약 신성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면−이는 참이지만−, 으뜸 물체에 대해 우리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은 옳은 것이 된다. 또한 그것의 참은 감각에 의한 증거에 의해서도 확실히 보장되며, 그것을 통해 최소한 인간의 신앙에 대한 승인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대대로 전해 내려온 기록에 따르면 우리는 가장 바깥 하늘 전체에서도, 그것의 어떤 부분에서도 아무런 변화의 흔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제1의 물체의 이름은 고대인들로부터 현재까지 전해 온 것 같다. … 즉 그 으뜸 물체가 흙, 불, 공기, 물과 무언가 다르다고 믿은 그들은 가장 높은 영역에 에테르라는 이름을 주었는데, 그 이름은 그것이 ‘영원히’ 그리고 ‘항상 움직인다’는 사실로부터 선택된 것이다.[11]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천상계의 위대함과 신성함이란 관념에 더 이상의 것을 추가하지 않았다. 하늘의 물질과 운동은 둘 다 완벽하며, 모든 지상계의 변화는 지구를 대칭적으로 둘러싼 천구들의 균일한 운동으로 개시된 밀침의 연쇄에 의해 야기되고 지배된다. 이미 지구의 유일한 중심 위치에 대한 중요한 과학 외적 논증은 분명하며,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수 세기 동안 이 논증은 완벽한 하늘의 관념을 정교화하고 서로 독립적으로 발생한 두 가지 중요한 믿음 체계를 그것과 통합함으로써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발전 중 하나인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과 기독교 신학의 세부적인 통합 과정은 다음 장의 그 적절한 연대기적 시점까지 미루어 두어야 한다. 그것이 낳은 우주는 그 구조적 세부 사항 각각이 물리적 의미뿐 아니라 종교적 의미까지 담게 되었다. 즉 지옥은 기하학적 중심에 있었고, 신의 옥좌는 항성 천구 너머에 있었으며, 각 행성 천구와 주전원은 천사들이 돌려 주었다. 그러나 천상의 위대함이란 개념의 또 다른 중요한 적용 결과인 점성학은 기독교ᐨ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보다 오래되었으며, 천문학 실행가들에게 훨씬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들을 직업적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에, 아마도 점성술은 천문학자들을 지구의 유일성이란 관념에 묶어 둔 가장 중요한 힘이었을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점성술적 믿음의 주된 원천들과 그것들이 하늘의 힘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관념과 맺는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그 거리와 불변성 때문에 하늘은 인간사에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는 신의 그럴듯한 자리가 된다. 천상의 규칙성 파괴−특히 혜성과 식−는 옛날부터 평범하지 않은 행운이나 재앙의 조짐으로 간주되었다. 게다가, 적어도 몇몇 지상계 사건에 대해서는 천상의 지배를 뒷받침하는 좋은 관찰 증거가 있다. 태양이 게자리에 있을 때는 뜨겁고, 염소자리에 있을 때는 춥다. 조수의 높이 변화는 달의 위상 변화를 따른다. 지구 전역에서 여성의 월경 주기는 음력 달의 길이와 일치하는 간격으로 반복된다.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자신의 물리적·지적 도구를 훨씬 넘어섰던 시대에, 천상의 힘에 대한 이러한 명백한 증거는 다른 천상의 떠돌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확장되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천체가 지상의 변화를 산출할 수 있는 물리적 메커니즘−마찰에 의한 구동−이 제공된 이후로는, 하늘의 미래 배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지면 인간이 인간과 국가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그럴듯한 토대가 생겼다.

기원전 2세기 이전까지의 고대 기록에서는, 별과 행성의 관찰된 혹은 계산된 위치로부터 지상의 세부적인 일들을 예측하려는 완전히 발달된 시도의 징후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시작은 늦었지만, 그 후로 점성술은 1800년 동안 천문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들은 함께 단일한 직업적 활동을 구성했다. 별로부터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점성술은 사법 점성술(judicial astrology)로 불렸고, 별들의 현재와 과거로부터 그 미래를 예측하는 천문학은 자연 점성술(natural astrology)로 불렸으며, 한 방면에서 명성을 얻은 사람은 보통 다른 방면에서도 유명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는 가장 발전된 형태의 고대 천문학을 보여 주었지만, 그는 사법 점성술에 대한 고대의 고전적 저술인 ≪테트라비블로스(Tetrabiblos)≫로도 똑같이 유명했다. 르네상스 후기에 코페르니쿠스 체계를 현대적인 형태와 매우 비슷한 체계로 바꾼 브라헤와 케플러 같은 유럽 천문학자들은 재정적·지적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최고의 별점을 본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뒷부분이 다루고 있는 대부분의 시기 동안, 점성술은 유럽 최고의 교육을 받은 가장 교양 있는 사람들의 생각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중세 초기 그것은 교회에 의해 부분적으로 금지되었는데, 인간이 기독교적 선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교회의 교리는 점성술의 엄격한 결정론과 양립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탄생 전후 5세기 동안, 그리고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기 동안 점성술은 왕과 백성의 안내자였으며, 이 시기가 지구 중심의 천문학이 가장 빠르게 발전한 바로 그 시기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고대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행성 천문학자들이 개발한 정교한 행성 위치 표들과 복잡한 계산 기법들은 점성술적 예측의 주요 전제 조건이었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후까지도, 천문학 연구의 이 주요한 산물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다른 쓰임새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점성술은 행성들의 문제를 갖고 씨름하는 주된 동기를 제공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점성술은 천문학적 상상의 특히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점성술과 그 아래에 놓인 천상의 힘 관념은 만약 지구가 행성이라면 그 그럴듯함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행성 지구는 토성이 지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토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고, 같은 논증은 다른 행성들에도 적용되며, 지상계ᐨ천상계의 이분법은 무너진다. 만약 지구가 천체라면, 그것은 하늘의 불변성을 공유해야 하고, 역으로 하늘은 지구의 변화 가능성에 동참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은 점성술의 지배가 바로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최초 수용 시기 동안에야 느슨해진 것은 우연일 수 없다. 또한 하늘로부터 특별한 힘을 빼앗아버린 이론의 저자인 코페르니쿠스가 르네상스 천문학자들 중에서 별점을 보지 않은 소수 집단에 속해 있었다는 점도 중대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따라서 점성술과 하늘의 위대함은 지구의 안정성과 유일성에 의한 간접적 귀결들의 또 다른 사례를 제공하며, 그러한 귀결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예시되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에서 중심의 고정된 지구가 수행한 여러 기능에 대한 이러한 확장된 논의로도 그것은 결코 망라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혁명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귀결들이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착수된 혁신을 단지 지구와 태양의 자리바꿈으로 묘사하는 것은 인간 사상의 발전에서 나타난 엄청난 일을 하찮은 일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 코페르니쿠스의 제안이 천문학 외적인 귀결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토록 오래 지연되지도 그토록 완강한 저항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발 물러서 바라본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관은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천문학 전통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천이자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는 지금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의 글들, 특히 물리학과 우주론을 다루는 글들을 읽으려면 정말 정신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에 실패하면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이 고대와 중세 시대를 버틴 것에 대한 다소 억지스럽고 왜곡된 설명을 얻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것보다 빨리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터무니없는 교리를 중세 학자들이 계속 수용할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자기 눈의 권위보다 기록된 말, 가급적이면 고대의 권위를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이러한 널리 퍼진 해석에 따르면, 근대 과학은 갈릴레오가 책을 덮고 실험을 함으로써 피사의 사탑 꼭대기에서 떨어뜨린 서로 다른 무게의 두 물체가 동시에 땅에 떨어지는 것을 관찰했을 때 시작됐다. 오늘날 모든 학생은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가 함께 떨어진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학생들은 틀렸으며 이 이야기도 틀렸다. 일상적인 세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았듯이,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정말 빨리 떨어진다. 그것은 원초적인 인식이다. 갈릴레오의 법칙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칙보다 과학에 더 유용한 이유는 그것이 경험을 더 완벽하게 표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감각에 의해 밝혀진 피상적인 규칙성 너머로 운동의 더 본질적인, 그러나 숨겨진, 측면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관찰을 통해 갈릴레오의 법칙을 검증하려면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며, 맨 지각으로는 그것을 산출하지도, 입증하지도 못할 것이다. 갈릴레오 자신이 그 법칙을 얻은 것은 다음 장에서 볼 것들과 비슷한 논리적 논증의 연쇄를 통해서였지, 관찰, 적어도 새로운 관찰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아마도 그는 피사의 탑에서 실험을 수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비판가들 중 한 명이 수행했으며, 그 결과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지했다. 무거운 물체는 정말로 땅에 먼저 떨어졌다.

갈릴레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논박했다는 대중적인 이야기는 거의 신화이며, 이는 역사적 관점의 부재에 기인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개념들 중 대다수가 어린 시절 우리에게 고통스럽게 주입되었다는 것을 잊고 싶어 한다. 우리 역시 그 개념들을 우리 자신의 맨 지각을 통해 얻어진 자연스럽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산물로 쉽게 취급하면서, 우리 자신의 개념과 다른 개념들은 무지나 어리석음에 기인하여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으로 지속된 오류로 묵살해 버린다. 우리의 교육은 우리와 과거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특히 그것은 우리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 사이를 가로막아, 아리스토텔레스가 후대에 미친 엄청난 영향력의 본성과 근원을 자주 오해하게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들이 가진 권위의 일부는 그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들이 지닌 탁월함에 기인하고, 일부는 그 엄청난 범위와 논리적 정합성에 기인하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상적이다. 그러나 내가 믿기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누린 권위의 일차적인 근원은 그의 사고가 가진 제3의 측면에 있으며, 현대적인 머리로는 이를 다시 움켜잡기가 더욱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거기에 논리적·언어적 근거를 제공하기 전부터 수 세기 동안 존재해 왔던 우주에 대한 많은 자연스러운 직관들을 추상적이면서 일관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많은 경우 이것들은 17세기부터 초등 과학 교육에 의해 점차 서구 성인의 머릿속에서 추방된 바로 그 직관들이다. 오늘날 가장 세련된 성인들이 가진 자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별로 중요한 닮은 점을 보이지 않지만, 아이들이나 원시 부족의 구성원들, 많은 비서구 사람들의 견해는 그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가끔 그 닮은 점들은 발견하기 어려울 때도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적인 어휘나 그의 정교한 논리적 방법에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적 변증법의 요소들이며 원시인들과 아이들에게는 그것들의 초보적인 부분만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제 생각들은 그가 그것들을 표현하고 기록하는 방법과 대조적으로 우주에 대한 보다 오래된 보다 기초적인 직관들의 중요한 유산들을 정말로 보여 주고 있다. 이 유산들에 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 의미를 놓칠 수도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적 교리의 중요한 부분들이 가진 힘을 분명히 놓치게 될 것이다.

원시적 유산들의 본성과 그것들이 아리스토텔레스적 변증법의 영향으로 변화한 방식은 공간과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서 분명하게 예시되어 있다. 원시 사회와 아이들의 세계관은 물활론적인 경향이 있다. 즉, 아이들과 많은 원시인들은 유기물과 무기물,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우리처럼 엄격하고 재빠르게 구분하지 않는다. 유기물의 영역은 개념적 우선권을 가지고 있으며, 구름, 불, 돌의 행동은 인간과 (아마도) 동물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내적 욕구와 바람을 통해 설명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에게 풍선이 왜 올라가느냐고 물으면, 넷 중 하나는 “풍선이 멀리 날아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여섯 살의 다른 아이는 풍선이 올라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풍선은 공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당신이 풍선을 놓으면 하늘로 올라간다.” 상자는 왜 땅으로 떨어지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다섯 살 한스는 “그것이 거기에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왜? “[그것에게는 거기에 있는 것이]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12] 원시인들도 비슷한 설명을 자주 한다. 물론 그 설명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신화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는 이미 태양의 운동을 하늘을 가로질러 항해하는 신의 운동으로 보는 이집트인의 설명을 검토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는 종종 적어도 은유적으로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아리스토텔레스의 글에는 1장에서 인용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의 구절을 생각나게 하는 구절들이 있다), 그의 돌은 살아 있지 않다. 그러나 우주의 중심에 있는 자신의 자연스러운 자리를 성취하기 위해 손을 떠나는 돌에 대한 그의 직관은, 공기를 좋아하는 풍선이나 거기에 있는 것이 좋기 때문에 땅으로 떨어지는 상자에 대한 어린아이의 직관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다. 어휘는 달라졌으며, 그 개념들은 성인의 논리로 처리되고 있으며, 물활론은 변형되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적 교리가 가진 호소력의 대부분은 그 교리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직관의 자연스러움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을 떠받치고 있는 심리적 토대는 물활론만이 아니다. 더 미묘하고 내 생각에 더 중요한 요소는 공간에 대한 원시적 직관의 아리스토텔레스적 변형에서 유래한다. 선사 문명과 원시 부족의 구성원들에게 공간은 우리 모두가 (보통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자란 뉴턴 공간과 매우 달라 보인다. 뉴턴 공간에서 물체는 공간 속에 위치해야 하며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여야 하지만, 공간의 특정한 부분과 운동의 특정한 방향은 물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공간은 모든 물체에게 무기력한 기저다. 각 위치와 각 방향은 다른 어디와도 같다. 현대 용어에서, 공간은 균일하고 등방성을 가진다. 즉 공간에는 ‘위’도 ‘아래’도 없으며, ‘동쪽’도 ‘서쪽’도 없다.

반대로 원시 사회의 공간은 대개 방 안의 공간이나 집 안의 공간이나 공동체 안의 공간처럼 생활공간에 더 가깝다. 그 공간에는 ‘위’와 ‘아래’가 있으며, ‘동쪽’과 ‘서쪽’(혹은 ‘앞쪽’과 ‘뒤쪽’−많은 원시 사회에서 방향을 나타내는 말들은 몸의 부위를 뜻하는 말들에서 유래하며 이 부분들의 고유한 차이점을 반영하고 있다)이 있다. 각 자리는 어떤 물체를 ‘위한’ 자리이거나 어떤 특징적인 활동이 일어나는 ‘곳의’ 자리다. 각 지역과 공간의 방향은 다른 어디와도 특징적으로 다르며, 그 차이들은 각 지역에 있는 물체의 행동을 부분적으로 결정한다. 보통 원시인의 공간은 일상적인 삶의 능동적이며 역동적인 공간으로, 각 지역은 각각의 특징을 가진다.

이집트 우주론은 하나의 사례를 제공했다. 주극성의 지역은 영원한 삶의 지역, 즉 절대로 죽지 않는 이들의 지역이 되었다. 공간에 대한 이와 비슷한 직관은 점성술적 사고에 한 가지 중요한 근원을 제공한다. 행성들의 본성과 힘은 그것의 공간상 위치에 의존한다. 한 오래된 바빌로니아 문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별 마르둑(Marduk)[행성 목성]이 떠오를 때[즉, 동쪽 지평선 위에 낮게 있을 때], 그것은 네보(Nebo)[신 머큐리(Mercury)]가 된다. 그것이 떠오른 지 … [숫자가 생략됨] 두 시간이 되면, 그것은 마르둑[신 주피터(Jupiter)]이 된다. 그것이 하늘 정중앙에 서 있을 때, 그것은 니비루(Nibiru)[최고의 전능한 신]가 된다. 각 행성은 그 최고점에서 이 최고신이 된다.”[13]

아리스토텔레스적 공간 관념에 내재한 원시적 유산들은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물리학(Physics)≫에 실려 있는 운동에 대한 다음 논의를 살펴보자.

기본적인 자연의 물체들−즉 불, 흙 등−의 전형적인 운동은 장소가 무언가일 뿐 아니라 그것이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방해를 받지 않는 한, 각각은 자신의 장소로 옮겨져, 어떤 것은 위로, 어떤 것은 아래로 옮겨진다. … ‘위’는 아무 방향이 아니라, 불과 가벼운 것이 옮겨져 오는 곳이다. 이와 비슷하게, ‘아래’ 역시 아무 방향이 아니라, 무게가 있는 것과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 옮겨져 오는 곳이다. 이는 이 장소들이 상대적인 위치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구별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14]

이 구절은 운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식 설명에 깔려 있는 공간 관념의 거의 완벽한 요약이다. 즉, “장소가 … 어떤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장소들이 상대적인 위치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서로 구별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장소들은 물체의 운동에서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의 장소들이다. 공간 그 자체가 불과 돌을 변방과 중심에 있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보금자리로 옮기는 추동력을 제공한다. 우리에게 이는 낯선 관념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후손으로, 그 혁명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공간 관념을 폐기하고 교체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개념은 아주 이상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단지 우연이겠지만,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 포함된 공간 개념들은 중요한 측면에서 뉴턴의 개념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에 더 가깝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우주는 뉴턴의 우주와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처럼 유한할지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고대에 만들어진 유일한 세계관도 아니었고, 지지자를 얻은 유일한 세계관도 아니었다. 그러나 고대의 경쟁 세계관들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은 세계에 대한 많은 원시적 관념들에 훨씬 더 가까웠으며, 그것은 맨 감각 지각에 의한 증거와 더 밀접하게 맞아떨어졌다. 이 점은 그것이 특히 중세 후기에 그렇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또 다른 이유다. 그것이 가진 호소력의 적어도 일부를 분리함으로써,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우주론이 고대 천문학 전통에 더해 준 힘을 더 잘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코페르니쿠스로 가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그 전통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각주

  1. Aristotle, On the Heavens, trans. W. K. C. Guthrie, The Loeb Classical Library(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39), p. 91(279a6∼17).
  2. (옮긴이 주 ) 1로마마일은 약 1.48km에 해당한다.
  3. (옮긴이 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 체계에서 ‘earth’는 인간이 거주하는 거대한 땅덩어리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동시에 그 땅덩어리를 구성하는 부분 또는 원소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이 번역본에서 전자는 ‘지구’ 또는 ‘땅’으로, 후자는 ‘흙’ 또는 ‘땅’으로 번역했다. 번역어 ‘지구’에는 둥글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반면, ‘earth’ 자체에는 그러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4. (옮긴이 주) 중세의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그를 ‘The Philosopher’로 불렀다.
  5. (옮긴이 주) 지브롤터 해협 양안의 두 곶.
  6. Ibid., pp. 243∼253(196b8∼298a13). (옮긴이 주) 이 부분을 비롯해 ≪하늘에 관하여≫의 인용문들을 번역할 때에는 웹상에 공개되어 있는 다음의 영문 번역본도 함께 참고했다. Aristotle, On the Heavens, trans. J. L. Stocks(The University of Adelide, last updated on 23 Mar 2013) http://ebooks.adelaide.edu.au/a/aristotle/heavens/book2.html
  7. Sir Thomas L. Heath, Greek Astronomy, Library of Greek Thought(London: Dent, 1932), pp. 147∼148.
  8. Aristotle, On the Heavens, p. 345(310b2∼5).
  9. (옮긴이 주) 플레넘(plenum)이란 “물질로 빈틈없이 가득 찬 공간”이란 뜻을 가진 고대의 개념이다.
  10. Aristotle, Physics, trans. P. H. Wickstead and F. M. Cornford, the Loeb Classical Library(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9), I, 331(213a31∼34).
  11. Aristotle, On the Heavens, pp. 23∼25 (270b1∼24).
  12. Jean Piaget, The Child's Conception of Physical Causality, trans. Marjorie Babain(London: Kegan Paul, Trench, Trubner, 1930), pp. 110∼111.
  13. Heinz Werner, Comparative Psychology of Mental Development, rev. ed.(Chicago: Follett, 1948), pp. 171∼172.
  14. Aristotle, Physica, trans. R. P. Hardis and R. K. Gaye, in The Works of Aristotle, II (Oxford: Clarendon Press, 1930), 208b8∼22.

목차

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원문 :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