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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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4장

정상과학과 새로움

앞에서 소개한 정상과학의 문제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도 그들 연구가 개념적이든, 현상적이든, 중요한 새로움을 얻어내는 것을 거의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65쪽) 연구 결과는 어느 정도 알려진 것이고, 가능한 결과가 여럿 있더라도 예상되는 결과는 고작해야 몇 가지 중 하나이다. 만약 “그 결과가 그런 좁은 범위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프로젝트는 대개 연구의 실패가 되는데, 그런 실패에 대한 책임은 자연이 아니라 그 과학자가 지게 된다.”(65쪽)

쿨롱이 자신이 설계한 장치를 통해 전기력에 대한 역제곱 법칙을 발견했을 때, 그는 어떻게 그런 장치를 고안할 수 있었으며, 어째서 그 결과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는가? 또 쿨롱을 비롯한 동시대의 몇몇 사람들은 어떻게 그 법칙을 미리 예측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동일한 패러다임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즉 패러다임 하에서의 연구는 “예기치 못한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다.”(66쪽)

이렇듯 정상과학의 목표가 실질적인 혁신이 아니라면, 그러한 문제가 다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답은 그 결과가 패러다임의 적용 범위와 정확성은 개선한다는 점에서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요성’만으로는 과학자들이 보다 더 정확한 측정을 위해 몇 년에 걸쳐 분광기를 개량하는 과학자의 헌신과 노력을 설명하지 못한다. 천체력 계산이나 기존의 기기를 이용한 여러 측정도 그만큼 중요하지만, 그러한 결과물은 과학자들에게 퇴짜를 맞기 일쑤이다.[1]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바로 후자의 문제들은 과거의 단순한 반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도전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즉 과학자들의 정규적 연구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그 결과가 상당부분 예측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결과를 성취하는 방법은 의문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정규의 연구 문제를 결론으로 몰고 가는 것은 새로운 방법으로 예측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며, 그것은 갖가지 복합적인, 기기적, 개념적, 수학적 퍼즐 풀이를 요구한다. 이것을 해내는 사람은 퍼즐 풀이 선수로 밝혀지며, 퍼즐의 도전은 과학자로 하여금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하게 하는 무엇인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67쪽) 그렇다면 퍼즐이란 무엇인가?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여기서 퍼즐이란 “풀이에서의 탁월성이나 풀이 기술을 시험하는 구실을 할 수 있는 문제들의 특이한 범주를 말한다.”(67쪽) 쉽게 생각해서, 직소 퍼즐이나 가로세로 퍼즐 등을 비유적으로 생각하면 좋다. 이런 퍼즐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우선 퍼즐의 특징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다. 일단 퍼즐의 결과는 퍼즐과 상관이 없다. 퍼즐의 결과가 흥미로운 것인지, 또는 중요한 것인지는 좋은 퍼즐의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참으로 중요한 문제들, 예컨대 암 치료라든가, 평화를 영속시키는 방법 같은 것은 전혀 퍼즐이 아닐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문제들은 어떤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쿤이 의도한 퍼즐의 첫 번째 특징이 나온다.

첫째, 퍼즐에는 해답이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존재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은 성공적인 문제 풀이를 제공함으로써, 확실히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패러다임은 구성원들에게 그러한 문제만을 풀도록 권장한다. 풀기 어려운 문제들은 탁상공론이라거나 우리 영역 외의 문제라거나 너무 복잡하다는 이유로 거부된다. “정상과학이 이렇게 급속도로 진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문가들이 그들 자신의 재능 부족만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그런 문제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68쪽) 앞의 질문을 다시 해보자. 과학자들은 왜 정상과학의 문제들에 헌신하는가? 그것은 “그가 만일 충분히 재능이 있다면 이전에 아무도 풀지 못했거나 제대로 잘 풀지 못했던 퍼즐을 푸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어떤 동기로 과학에 발을 들어섰든, 일단 과학에 몸담게 되면 그들은 퍼즐에 도전하는 전문 퍼즐 해결사가 된다.

둘째, 퍼즐은 게임의 규칙이 존재한다. 즉 “수용가능한 해답의 성격과 그 해답을 얻게 되는 단계들을 한정짓는 규칙들이 존재한다.”(69쪽) 직소 퍼즐을 푸는 사람이 퍼즐 조각을 아무렇게나 배열해놓는다면, 그 결과가 아무리 독창적이고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퍼즐의 해답이 될 수 없다. 직소 퍼즐의 해답이 되려면 어떤 조건을 만족해야 하는가? 우선 모든 조각을 다 써야 하며, 그림 없는 쪽은 모두 바닥을 향해 있어야 하고, 모두 꼭 맞게 끼워 빈 구멍이 하나도 없어야 할 것이다. 과학의 풀이 역시도 이와 비슷한 규칙을 만족해야 하며, 이러한 규칙은 사실적 문제이든 이론적 문제이든, 문제의 용납가능한 풀이를 한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빛의 파장을 측정하는 기계를 제작한 사람이 과학자라면, 그는 특정한 스펙트럼 선의 위치마다 특정한 값을 매겨주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 장치가 제시한 숫자들이 이론에서의 파장과 같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과학자들은 그의 장치가 빛의 파장을 측정하는 장치라는 것을 믿지 못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종류의 제한은 이론적 문제에 대해[서도] 용납가능한 풀이를 한정한다.”(70쪽) 예를 들어, 18세기 내내 학자들은 뉴턴의 법칙으로부터 달의 관측된 궤도를 유도해내기 위해 온갖 애를 썼다. 어떤 학자는 뉴턴의 역제곱 법칙이 아닌 다른 법칙을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 되고, 즉 그는 다른 퍼즐을 푼 것이 되어 버린다. 다른 과학자들은 1750년에 누군가 그것들이 성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 전까지 기존 규칙을 고수했다. 게임의 규칙 중 단 하나의 변화를 통해 대안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규칙의 유형들

그렇다면 정상과학에서 나타나는 규칙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 쿤에 따르면, “이러한 규칙들은 과학자들이 패러다임으로부터 유도한 공약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71쪽)[2]

첫째는 “과학적 법칙과 과학적 개념 및 이론에 관한 명시적 진술”이다. 이러한 진술들은 (영속적이지는 않았지만) 상당 기간 동안 과학자들의 풀이를 제한했다. 18세기 이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뉴턴의 운동 법칙을 위반하려고 하지 않으며, 19세기 이래 대부분의 화학자들은 질량 보존의 법칙을 위반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여간해서는 에너지-질량 보존 법칙이나 광속 법칙을 위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둘째는 기기사용법에 대한 약속이다. 이를테면, 기기를 다루는 올바른 형태와 인정받은 기기가 적절하게 사용되는 방법에 대한 약속이 있다. 온도계 사용법과 같은 것도 이런 예가 될 것이다. 패러다임마다 독특한 기기사용에 대한 약속이 존재하고, 이를 어기는 것은 저항에 부딪치게 된다.

셋째는 유사-형이상학적 약속이다. 예를 들면, 1630년대 데카르트의 과학 저술이 나온 이후,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주가 미시적인 입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 현상은 모두 입자의 형태, 크기, 운동, 상호작용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런 약속은 궁극적인 법칙과 기본적인 설명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래서 법칙들은 입자의 운동과 상호 작용을 명시해야 하고, 설명은 주어진 자연 현상을 이들 법칙 아래서의 입자의 작용으로 환원시켜야 한다. 이는 또한 풀어야 할 적법한 문제가 무엇인지도 알려주었다. 이를테면, 이러한 패러다임에 동참했던 보일과 같은 화학자는 화학적 변화를 어떻게 입자들의 재배열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 골몰했다. 또한 이는 어떤 방식의 설명이 부적합한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었고, 이에 따라 뉴턴의 원거리력 가정은 이런 규칙을 위반하는 (심지어 신비주의적인 과거로 회귀하는)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넷째는 방법론적 약속이다. 이는 이것 없이는 과학자라고조차 할 수 없는 약속으로, 이를테면, 과학자는 세계의 질서를 밝히는 데 정밀성과 범위를 확장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약 구멍이 발견되면, 실험이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이와 비슷한 규칙들은 많으며, 이들은 모든 시대 모든 과학자들이 지키는 규칙이다.

요약 및 오해의 소지

정상과학을 퍼즐 풀이로 보게 되면 어떤 장점이 있는가? 첫째는 과학자들이 정상과학적 문제에 전념하는 이유를 (사회학적으로/심리학적으로) 설명해준다. 즉 쿤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풀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 그 풀이 방법이 알려져 있지 않은 문제에 (풀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도전하여, 그 풀이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정상과학의 빠른 발전을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해답이 있는 문제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규칙 의존적인 정상과학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이에 따르면, “[약속들의 공고한 네트워크]는 성숙된 경지의 전문 분야 연구자들에게 세계와 그의 과학이 둘 다 과연 무엇인가를 일러주는 규칙을 제공하는 까닭에, 연구자는 이들 규칙과 더불어 기존의 지식이 정의해주는 난해한 문제들에 확신을 가지고 집중할 수가 있다.”(73쪽) 이런 점에서 ‘퍼즐’과 ‘규칙’에 관한 논의는 정상과학의 중요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는 우리에게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 “과학의 전문 분야의 수행자들은 모두 어느 주어진 시대에서 거기에 집착할 수 있는 규칙들을 지닌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규칙들이 그 자체만으로 그 분야 전문가들의 활동에서 공유되는 모든 것을 규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상과학은 고도록 결정적인 성격의 활동이지만, 그러나 전적으로 규칙에 의해서 결정될 필요는 없다. 이것이 바로 이 에세이의 첫머리에서, 공유된 패러다임을 가리켜서 공유된 규칙, 가정, 견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과학 전통이 지닌 일관성의 원천이라고 소개했던 까닭이 된다. 나는 규칙은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되지만 그러나 패러다임은 규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조차도 연구의 지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한다.”(74쪽)

주석

  1. 실제로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널에 논문이 채택되기 위해서, 그 논문은 무언가 기존의 연구와 다른 새로운 것을 담고 있어야 한다. 아마도 쿤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 논문은 그 저널의 다른 논문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서는 안 된다. 저널에 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 그 논문은 그 학계의 표준적인 기준을 만족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논문은 이해하지 못할 논문으로 거부될 것이다.
  2. 쿤 본인도 가끔 헷갈리게 서술하기도 하지만, 패러다임과 패러다임으로부터 파생된 규칙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이 부분에서 쿤은 규칙과 패러다임을 나름 구분짓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책의 목차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에 이르는 길 (2-5장 발췌)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발췌)
  13. 혁명을 통한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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