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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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7장

6장에서는, 새로움을 추구하지 않는 정상과학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현상이 어떻게 발견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새로운 종류의 현상의 발견은 패러다임의 저항을 뚫고 패러다임 변화를 동반하는 과정이며, 그 발견 과정은 변칙에 대한 감지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7장에서는 새로운 이론을 추구하지 않는 정상과학으로부터 어떻게 새로운 이론이 탄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변칙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출발점이었다면,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기 전에도 변칙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심오한 어떤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늘의 답변의 출발점이다. 변칙 이상의 어떤 인식은 바로 ‘위기감’을 말한다.

새로운 이론 출현의 선행조건으로서의 위기

새로운 이론이 출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패러다임 파괴와 정상과학의 문제 및 해법에 대한 중요한 변화가 필요하다. 따라서, 새로운 이론의 출현은 대체로 그 전문 분야의 불안정함이 현저해지는 선행 시기를 거치게 된다. 그러한 불안정함은 정상과학의 수수께끼들이 좀처럼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데서 발생한다. 그리고 기존 규칙의 실패는 새로운 규칙에 대한 탐사의 전조가 된다.

천문학 혁명 직전의 상황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 매우 성공적. 프톨레마이오스의 시도는 많은 경우 매우 정확했지만, 행성의 위치와 세차 운동 두 가지는 부정확.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들은 그 사소한 불일치를 개선하는 일종의 정상과학 수행. 이 또한 매우 성공적.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천문학자의 일부는 천문학의 복잡성이 그 정확성보다 훨씬 빠르게 증대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곳에서 이루어진 보정이 다른 곳에서 모순을 일으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음(예 : 알폰소 10세, 도메니코 다 노바라, 코페르니쿠스의 언급). 이러한 위기 인식이 새로운 패러다임 탐색의 선행 조건이었음.[1]

쿤은 달력 개혁에 대한 사회적 압력, 르네상스 시기의 신플라톤주의의 융성 등의 사회적 요소도 위기에 일조했다고 지적하지만, 여전히 ‘전문적인 실패(technical breakdown)’가 위기의 핵심이었다고 주장.

화학 혁명 직전의 상황

1770년대 여러 요인이 복합되어 위기 발생. 그 중 두 가지 요소는 분명.

첫째, 기체화학의 발전에 따른 플로지스톤 이론의 점증하는 모호성과 감소되는 효용성 : 공기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과 계속된 다양한 기체 시료의 포집 활동과 다양한 성질의 발견. “어느 누구도 플로지스톤 이론이 대치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화학자들은 그 이론을 일관성 있게 적용시킬 수가 없었다. 1770년대 초 라부아지에 공기에 대한 실험을 시작할 무렵에는, 기체 화학자들의 수만큼이나 플로지스톤 이론의 수정안도 많았다고 할 정도였다”(112쪽). [위기의 한 가지 징표 : 수많은 수정 버전의 이론 출현]

둘째, 연소시 무게 증가 문제 : 많은 경우 연소 시 무게 감소. 그러나 어떤 금속은 연소시 무게 증가. 이는 예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 약간의 설명 시도(연소 후 대기로부터 어떤 성분 흡수?)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화학자들은 그러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왜? 화학반응에서 수많은 성질이 변하는데 무게가 변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

18세기를 거치면서 연소시 무게 증가의 문제는 점차 중대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천평이 표준적인 화학 기구로 수용되고, 기체 화학의 발달로 기체 생성물을 보관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연소에 따른 무게 증가 현상을 더 많이 관찰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뉴턴의 패러다임에 화학자들이 동화됨에 따라 무게 증가를 쉽게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즉 무게변화는 물질의 (양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가 플로지스톤 이론의 포기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 여러 해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음의 무게를 가진 플로지스톤?, 연소시 새로운 물질의 흡수?). 그럼에도 이 문제는 화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되었고, 그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는 연구의 수가 증가했는데, 그 중 하나가 플로지스톤과 무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라부아지에의 1772년 논문이다. 즉 수은재 가열 실험 전부터 플로지스톤은 무게 문제와 관련하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 라부아지에는 그러한 위기감을 인식한 사람 중 하나였다.

라부아지에가 이 문제를 건드린 무렵, 플로지스톤 이론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수정 변형되었다. 수많은 버전의 플로지스톤 이론이 만들어졌고, 화학의 패러다임은 점차 그 독보적 지위를 점진적으로 상실해가고 있었다. 점차 이 분야는 패러다임 이전의 여러 학파들이 경쟁하던 시절의 연구와 흡사해졌다. [위기의 두 번째 징표 : 패러다임 이전의 연구 양상과 유사]

상대성 혁명 직전의 상황

에테르 검출 노력 실패. 에테르 끌림을 가정한 여러 버전의 설명 등장. 아직까지는 심각한 모순 인식되지 않았음. 19세기 말 수용되기 시작한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은 뉴턴의 역학과 잘 들어맞지 않음. 물론 둘을 조화시킬 수 있는 명료화를 발전시키는 작업은 계승자들에게 남겨짐. 그러나 그 작업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밝혀졌고, 이는 패러다임의 위기를 조성했고, 그 초점은 에테르 문제에 집약되었다. 이들의 연구는 각각 부분적으로만 성공적이었고, 서로 경쟁하는 이론들의 난립을 낳게 되었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출현하던 시점의 배경이었음.

요약 및 고찰

  • 첫째, 새로운 이론은 정상적 문제 풀이 활동에서의 현저한 실패를 본 후에야 비로소 출현했다.
  • 둘째, 붕괴가 일어났던 문제들은 모두 오랜 세월에 걸쳐 인식되어 왔던 문제였다. 즉 위기로 이끈 문제는 애초에는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나중에야 심각한 실패로 인식되었다.
  • 셋째, 위기의 해법으로 등장하게 될 아이디어의 일부는 이미 존재했었다. 다만 위기를 느끼지 못했던 상황에서 무시되었을 뿐이다(e.g., 공간에 대한 상대적 개념, 지구의 회전 아이디어).

대안을 처음 고안하는 일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음. 그러나 대안의 창안은 과학자들이 거의 수행하지 않는 작업으로, 매우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도구들이 패러다임이 정의하는 문제들을 풀 수 있다고 증명되는 한, 과학은 최고의 속도로 활동하며 그들 도구들을 확신있게 적용시키는 것을 통해서 가장 심도 있게 침투한다. 도구를 바꾸는 것은 사치이다. 위기는 도구를 바꾸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지표이다.

주석

  1. 천문학 혁명 직전에 이러한 위기가 있었다는 쿤의 분석은 쿤의 『코페르니쿠스 혁명』, 2장 마지막 절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1400~1500년대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에 정말로 위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비판이 존재한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옮긴이의 글과 N. M. Swerdlow, "An Essay on Thomas Kuhn’s First Scientific Revolution, The Copernican Revolution",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Vol. 148, No. 1 (2004), 64-120을 참고하라.

책의 목차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에 이르는 길 (2-5장 발췌)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이상 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발췌)
  13. 혁명을 통한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