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2/1970/1996/2012). 번역본 : 토머스 쿤 지음, 김명자,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구조』 제4판 (까치, 2013).
구조를 쓰기까지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의 저자 서문에는 이 책이 “15년 전에 착상했던 프로젝트에 대한 최초의 완간된 보고서”(51쪽, 문헌 정보 없이 쪽수만 적은 것은 『구조』 번역본 2013년 판의 쪽수)라고 얘기하고 있다. 1962년으로부터 15년 전은 바로 1947년이었다. 1947년이면, 그는 아직 물리학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쿤은 학부생을 위해 개설된 과학사 교양 수업의 조교로 있던 시기였다. 17세기 역학을 가르치고 있었던 쿤은 뉴턴 역학과의 비교를 위해, 운동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원전을 공부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접한 과거의 과학(?) 텍스트를 읽고서 쿤은 당혹감에 빠졌는데, 왜냐하면 뉴턴의 역학으로 교체되기 전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양의 과학을 지배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너무나 엉터리로 보였기 때문이다. 쿤은 그런 엉터리 같은 내용이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는 엉터리일 리가 없었다. 쿤은 엉터리처럼 보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를 말이 되는 글로 이해하기 위해 씨름했고, “어느 기록적인 (매우 뜨거웠던) 여름 어느 날, 그러한 당황스러움은 한꺼번에 사라졌다”(Kuhn 1977, xi). 그날 그에게는 모종의 “개념적 재조정”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그는 텍스트 전체를 합리적으로 만들어 주는 이해 방식을 발견했다. 더 중요하게, 과거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그러한 개념적 재조정이 개인적으로 필수적이라면, 그러한 개념적 재조정은 역사적으로도 일어났어야 했다. 이는 쿤이 과학도로서 습득했던 과학 지식의 발전 방식―축적에 의한 발전―과 충돌했다.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음으로써 들춰낸 것은 인류가 자연을 보거나 그에 언어를 적용하는 데 있어 이루어진 전체적인 종류의 변화로서, 이는 지식의 추가나 단지 단편적인 오류의 수정으로는 적절히 묘사될 수 없는 것이다”(Kuhn 1977, xiii). 만약 이러한 종류의 개념적 전환이 과학의 특징이라면, 과학 지식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 그림을 추구하는 최선의 방법은 “과학사가가 과거를 되찾는 데—또는 반대로 과거에서 현재로 발전하는 데―필요한 근본적인 개념적 재조정”(Kuhn 1977, xiv)을 조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연구 프로젝트에 의해 쿤은 “물리학으로부터 과학사로, 그 다음에는 점차로 비교적 직설적인 과학사의 문제들로부터 애초에 나[쿤]를 역사로 끌어갔던 보다 철학적인 관심사로 되돌아가게 되었다.”(51쪽) 다시 말해 쿤은 철학을 위해 역사로 전향한 물리학도로 볼 수 있다.
쿤은 1949년에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박사 학위를 받기 직전인 1948년부터 1951년까지 쿤은 하버드 대학 펠로우회(Society of Fellows of Harvard University)의 주니어 펠로우(Junior Fellow)로 자유로운 연구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이 시기 쿤은 정통 과학사학자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한편 과학사 외에도 게슈탈트 심리학이나 철학적, 사회학적 아이디어들을 다방면으로 수집했다(52-53쪽).
주니어 펠로우를 마치고, 쿤은 1956년까지는 General Education and History of Science의 조교수로 계속 하버드에 재직했고, 1956년에는 UC 버클리에 조교수로 임용되어, 1961년에 과학사 교수가 되었다. 『구조』 서문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쿤은 자신이 체계적으로 배운 적도 없는 분야인 과학사 강의를 하게 됨으로써, 당초 그를 그리로 몰고 간 개념들을 명료화시킬 만한 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54쪽). 다만 그런 개념들은 강의의 방향과 문제 설정의 원천이 되었으며, 당시 발표했던 여러 과학사 논문들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꾸준히 담고 있었다.
『구조』의 마지막 퍼즐 조각은 스탠포드 대학 행동과학 고등연구소(Center for Advanced Studies in the Behavioral Sciences)의 초청으로 1958-1959년을 보낸 시기에 끼워졌다. 그곳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했는데, 하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곳에서 자연과학자와 사회과학자 사이의 차이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특히 쿤은 “정당한 과학적 문제와 방법의 본질에 대해서 사회과학자들 사이의 공공연한 의견 대립이 대단한 것에 충격을 받았다.”(55쪽) 그리고 이 차이의 근원을 찾아내려는 시도 속에서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는데, 쿤은 패러다임을 “어느 일정한 시기에 전문가 집단에게 모범이 되는 문제와 풀이를 제공하는, 보편적으로 인식된 과학적 성취”(55쪽)로 정의했다. 퍼즐 조각이 완성되자, 『구조』의 줄거리도 대번에 뚜렷해졌다.
『구조』의 구성
1962년에 출판된 『과학혁명의 구조』는 서문을 제외하고 총 13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판부터는 “Postscript―1969”가 추가되었다. 1장 도입에서 소개하고 있듯이, 3장부터 5장까지는 정상과학을 다루고 있고, 6장부터 8장까지는 위기와 같은 비상적인(extraordinary) 탐구 기간을 다루고 있으며, 9장과 10장은 과학혁명을 다루고 있다. 결론에 해당하는 11, 12, 13장은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하는 부분으로, 11장은 교과서의 전통을 논함으로써 과학혁명이 이전에는 왜 그렇게 보기가 어려웠는가를 다루고, 12장은 과학혁명기 패러다임간의 경쟁에 대해 다루며, 13장은 혁명적인 변화가 진보와 어떻게 양립될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한다.
목차
- 서론 : 역사의 역할
- 정상과학에 이르는 길 (2-5장 발췌)
- 정상과학의 성격
-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 패러다임의 우선성
-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 위기에 대한 반응
-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 혁명의 비가시성
- 혁명의 완결 (발췌)
- 혁명을 통한 진보
참고문헌
- 쿤, 토머스 S. [김명자, 홍성욱 옮김], (2013) 『과학혁명의 구조』 제4판, 까치.
- Buchwald, Jed Z. and George E. Smith (1997), “Thomas S. Kuhn, 1922-1996”, Philosophy of Science 64: 361-376.
- Kuhn, Thomas S. (1970),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itio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Kuhn, Thomas S. (1977), The Essential Tension: Selected Studies in Scientific Tradition and Change.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Swerdlow, N. M. (2004), “An Essay on Thomas Kuhn's First Scientific Revolution, “The Copernican Revolution””,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48, 64-120.
관련 항목
- 토머스 쿤, 『코페르니쿠스 혁명』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 토머스 쿤, 발견의 논리인가, 탐구의 심리학인가
- 박은진, 쿤 『과학혁명의 구조』.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4.
- 정동욱, 위기 없는 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