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정상과학 (발췌)
토머스 쿤 지음, 김명자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글방, 1999), 2-5장에서 발췌 및 오역 수정. 원문 :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3nd edition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6), ch. 2-5.
2장. 정상과학에 이르는 길
이 글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거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 ─ 어떤 한 과학자 공동체가 일정 기간 자신의 이후 활동에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인정한 과학적 성취 ─ 에 단단하게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한다. [오늘날 그러한 성취는 대부분 교과서 형태로 학습되지만, 이러한 교과서가 널리 퍼지기 전에는 과학 분야의 유명한 고전들이 교과서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이러한] 저작들은 일정 기간 한 연구 분야의 적법한 문제와 방법을 다음 세대 학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정의해주는 역할을 했다. 이들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두 가지 본질적인 특징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취는 경쟁적인 과학 활동 방식으로부터 그룹을 떼어내 영속적인 옹호자 그룹으로 끌어당길 정도로 전례없는 것이었다. 동시에 그 성취는 재정의된 연구자 그룹이 풀어야 할 온갖 문제들을 남겨둘 만큼 개방적이었다.
이 두 가지 특징을 지닌 성취를 이제부터 ‘패러다임(paradigm)’이라 부를텐데, 이 용어는 ‘정상과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용어를 선택함으로써 나는 실제 과학 활동의 몇몇 인정된 사례들 ─ 법칙, 이론, 응용, 기기법 등을 모두 포함하는 사례들 ─ 이 그로부터 과학 연구의 특정한 정합성의 전통이 나타나는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을 시사하고자 한다. ... 패러다임의 공부는 과학도가 훗날 과학 활동을 수행할 특정한 과학자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거기에서 과학도는 동일한 구체적인 모형으로부터 자기 분야의 기초를 익힌 사람들과 합류하게 되므로, 그의 향후 활동에서 근본적인 사항에 대한 노골적인 의견 충돌이 빚어지는 일은 드물 것이다. 공유된 패러다임에 기반해 연구하는 사람들은 과학 활동에 대한 동일한 규칙과 표준을 따르게 된다. 이러한 구속(commitment)과 그것이 조성하는 분명한 의견 일치는 정상과학, 즉 특정한 연구 전통의 출현과 지속에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
3장. 정상과학의 성격
그렇다면 한 그룹이 단일한 패러다임을 수용함에 따라 나타나는 보다 전문적이고 내밀한(esoteric, [옮긴이 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전수되고 그들만이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연구의 성격이란 무엇인가? 만일 그 패러다임이 일단 완결적으로 수행된 연구를 말한다면, 그것이 그 통일된 그룹에게 해결하도록 남긴 후속 문제들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 [패러다임]의 확립된 용례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은 수용된 모형 또는 유형을 뜻하며, 이러한 뜻 덕분에, 딱히 더 좋은 용어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여기서 ‘패러다임’이라는 말을 빌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뜻은 ‘패러다임’의 또 다른 뜻과 동일하지 않다.] 문법에서는, 예컨대 ‘amo, amas, amat’는 하나의 패러다임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숱한 라틴어 동사의 변형에서, 이를테면 ‘laudo, laudas, laudat’를 얻는 데 쓰이는 패턴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준 적용에서 패러다임은 예제의 모방을 가능케 해줌으로써 작동하는데, 그 모방품 중 어느 하나도 원리적으로는 그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다. 반면, 과학에서는 패러다임이 모방의 대상인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것은 관습법의 판례처럼 새로운 또는 보다 엄격한 조건 아래서 더욱 명료화되고 구체화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 패러다임은 전문가 집단이 시급하다고 느끼게 된 몇 가지 문제를 푸는 데 그 경쟁 상대들보다 훨씬 성공적이라는 이유로 그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나 보다 성공적이라는 말은 단일한 문제에 대해서 완벽하게 성공적이라거나 많은 문제에 대해서 상당히 성공적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패러다임의 성공 ─ 운동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 행성의 위치에 대한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산, 라부아지에의 천평 이용, 또는 전자기장에 대한 맥스웰의 수학화 ─ 은 당초에는 주로 아직 불완전한 예제들에서나 발견될 수 있는 성공의 약속일 따름이다. 정상과학은 그런 약속의 현실화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이 특히 시사적인 것으로 제시한 그런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킴으로써, 또 그런 사실들과 패러다임의 예측 사이의 일치 정도를 증진시킴으로써, 그리고 패러다임 자체를 더욱 명료화시킴으로써 달성된다.
... [이런 유형의] 마무리 작업은 대부분의 과학자가 자신의 생애 내내 종사하게 되는 일이다. 그런 것들이 바로 여기서 내가 정상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한다. 역사적으로든 또는 현대의 연구 실험실에서든 간에, 자세히 잘 검토해보면 이런 활동은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미리 짜여지고 상당히 고정된 상자 속으로 자연을 밀어넣는 시도처럼 보인다. 새로운 종류의 현상을 끄집어내는 것은 정상과학의 목적에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 상자에 들어맞지 않는 현상들은 전혀 보이지 않곤 한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의 창안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으며, 그들은 보통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창안된 이론에 너그럽지 못하다. 오히려 정상과학적 연구는 패러다임이 이미 제공한 그러한 현상과 이론의 명료화를 지향한다.
어쩌면 이는 결함일 수 있다. 정상과학에 의해 탐구되는 영역들은 당연히 매우 좁다. [정상과학적] 논의 아래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지극히 제한된 시야를 가진다. 그러나 패러다임에 몸담음으로써 파생되는 이러한 제한들은 과학의 발전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상당히 내밀한 문제의 작은 영역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패러다임은 과학자들로 하여금 자연의 어느 부분을,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상조차 못했을 정도로 상세하고 깊이 있게 탐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정상과학은 패러다임의 효과적인 작동이 멈출 때마다 연구의 제약 조건을 완화시키는 자체 메커니즘을 지니고 있다. 이 시점에 이르면, 과학자들은 저마다 다르게 행동하기 시작하며 그들 연구 문제의 성격도 바뀌게 된다. 그러나 패러다임이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동안, 그 전문 분야는 그 구성원들이 패러다임에 몸담지 않고서는 상상도 못했거나 [상상했더라도] 풀 엄두도 내지 못했을 문제들을 잘 풀어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성취의 일부는 언제나 영속성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 ...
4장.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우리가 방금 살펴본 정규적인 연구 문제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도 그 문제들이 (개념적이든 현상적이든) 근본적인 혁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때로, 파장 측정의 경우에서처럼, 그 결과의 가장 내밀한 세부 사항을 빼면 모든 것이 미리 알려져 있으며, 대체로 그 [세부 사항의] 예상 범위는 조금더 넓을 뿐이다. 쿨롱의 측정은 어쩌면 역제곱 법칙에 들어맞지 않았더라도 무방했으며, 압축에 의한 가열을 연구했던 사람은 보통 몇 가지 결과 중 어느 한 결과가 나오든 그에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우에서조차도, 예상되는 (따라서 이해할 수 있는) 결과의 범위는 언제나 상상력이 허용하는 범위에 비해 좁다. 그리고 그 결과가 그 좁은 범위에 맞아떨어지지 않는 프로젝트는 대개 연구의 실패로만 간주되는데, 그 실패는 자연이 아니라 그 과학자를 비난할 뿐이다. ...
그러나 만일 정상과학의 목표가 근본적인 혁신이 아니라면 — 예측된 결과 가까이에 이르지 못한 것이 일반적으로 과학자로서의 실패라고 한다면 — 도대체 왜 이런 문제들에 손을 대는 것일까? ... 과학자에게는 적어도 정규적인 연구에서 얻어진 결과는 의미 있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 패러다임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와 정확성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대답은 과학자들이 정규적인 연구 문제들에 대해 드러내는 열정과 헌신을 설명하지 못한다. ... 그 결과가 예측될 수 있기에 — 그것도 흔히 아주 상세히 예측되기에 — 남아있는 미지의 내용이 그 자체로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 결과를 획득하는 방법은 훨씬 불확실하기 마련이다. 정규적인 연구 문제로부터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려면 새로운 방법으로 그 예측 결과를 얻어내야 하며, 그것은 온갖 복잡한 기기적, 개념적, 수학적 퍼즐 풀이를 요구한다. 이에 성공한 사람은 전문 퍼즐 해결사로 밝혀지며, 퍼즐의 도전은 보통 그의 지속적인 연구를 추동하는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퍼즐’과 ‘퍼즐 해결사’라는 용어는 앞의 논의를 통해 점점 뚜렷해진 주제들 중 몇 가지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여기서 사용된 완전히 표준적인 의미로서, 퍼즐이란 풀이의 재능이나 솜씨를 시험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특별한 범주의 문제들을 말한다. 사전적 예로는 ‘직소 퍼즐’과 ‘십자 퍼즐’을 들 수 있는데, 이 퍼즐들은 여기서 우리가 분간해내려고 하는 정상과학의 문제들과 몇 가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그중 한 가지는 방금 언급한 것이다. 퍼즐의 결과가 본질적으로 흥미로운 것이냐 또는 중요한 것이냐는 좋은 퍼즐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다. 오히려 대조적으로 참으로 급박한 문제들, 이를테면 암의 치료법이나 영속적 평화의 설계법 같은 문제들은 전혀 퍼즐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그런 문제들은 그 어떤 해답도 가지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두 개의 퍼즐 상자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조각들을 이용하는 직소 퍼즐을 생각해보자. 그 문제는 아무리 재능있는 사람이라도 풀 수가 없기에, 풀이 솜씨에 대한 시험용으로 사용될 수가 없다. 어떠한 통상적인 의미에서도 그것은 전혀 퍼즐이 아니다. 본질적 가치는 결코 퍼즐에 대한 기준이 되지 못하지만, 해답이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은 그 기준이 된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과학자 공동체가 패러다임과 함께 얻게 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는 패러다임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동안 해답을 가진 것으로 가정될 수 있는 문제들을 선별하는 기준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 문제들은 그 과학자 공동체가 과학적이라고 인정하거나 또는 그 구성원들에게 풀이를 시도해 보라고 권장하게 될 거의 유일한 문제들이 된다. 다른 문제들은 형이상학적이라거나, 다른 분야의 관심사라거나, 때로는 시간을 쏟기에 문제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거부당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이전까지 표준으로 인정받던 다수의 문제들도 포함된다. 이 점 때문에, 패러다임은 퍼즐 형태로 환원될 수 없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패러다임이 제공하는 개념적, 기기적 수단을 통해 진술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공동체로부터 격리시키기도 한다. 그런 문제들은 주의를 분산시킬 것이다. ... 정상과학이 이토록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과학자들이 그들 자신의 재능 부족만이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그런 문제들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상과학의 문제들이 이런 의미에서 퍼즐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과학자들이 정열과 헌신을 가지고 그런 문제들을 공략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어진다. 인간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는 데에는 갖가지의 이유들이 있다. 그 가운데는 유용성의 욕구, 새로운 영역을 탐사하는 경이감, 질서를 찾아내려는 희망, 이미 정립된 지식을 시험하려는 욕구 등이 포함된다. 이를 비롯한 여타의 동기들 또한 그가 다루게 될 특정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러한 동기들이 (때때로 좌절을 주기도 하겠지만) 왜 처음에는 과학자의 관심을 유발하고, 그 다음에는 그의 연구를 지속시키게 되는지에 대한 좋은 이유들도 존재한다. 총합으로서의 과학 활동은 정말로 때때로 그 유용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질서를 보여주고, 오랫동안 받아들여진 믿음을 시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적인 연구 문제 풀이에 가담하는 개인으로서는 이러한 일을 거의 하나도 하지 않는다. 일단 이에 가담하게 되면, 그의 동기는 좀 달라지게 된다. 이제 그를 추동하는 것은, 그에게 충분한 재능이 있다면 이전에 아무도 풀지 못했거나 그리 잘 풀지 못했던 퍼즐을 푸는 데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위대한 과학자들은 대개 이런 종류의 미해결 퍼즐에 자신의 전문성을 모두 쏟아부었다. 거의 대부분의 전문 분야에서는 그밖의 할 일을 아무것도 부과하지 않는데, 이같은 사실은 그들과 같은 적당한 부류의 중독자들에게 과학을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들 것이다.
이제는 퍼즐과 정상과학의 문제 사이에서 발견되는 좀더 까다로우면서도 의미심장한 또다른 측면의 유사성을 살펴보자. 퍼즐로서 분류되려면, 그 문제는 해답이 있다는 확신 이상의 특성을 지녀야 한다. 거기에는 인정받을 수 있는 해답의 본성과 함께 그 해답을 얻는 단계들을 한정짓는 규칙도 존재해야 한다. 이를테면 직소 퍼즐을 완성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어린이 또는 현대 예술가라면 어떤 우중충한 배경에 골라낸 조각들을 흩어놓음으로써 추상적인 형태의 그림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림은 그 퍼즐의 원래 모습보다 더 근사할 수도 있으며, 분명 더욱 독창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은 해답이 아닐 것이다. 해답을 구하려면 모든 조각을 다 써서 맞춰야 하고, 그림 없는 쪽은 바닥을 향해야 하며, 그리고 모두 꼭 맞게 끼워서 빈틈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이런 것들은 직소 퍼즐의 풀이를 다스리는 규칙들에 포함된다. 십자 퍼즐, 수수께끼, 체스 문제 등의 허용 가능한 해답에도 그와 비슷한 제약 조건들이 쉽사리 발견된다. ...
5장. 패러다임의 우선성
[그러나] ... 패러다임은 규칙들의 개입 없이도 정상과학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제 나는 패러다임이 정말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믿을 만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함으로써, 그것의 분명한 의미와 중요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첫 번째 이유는 ... 특정한 정상과학 전통을 안내했던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이 지극히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난점은 철학자가 모든 게임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할 때 당면하는 어려움과 거의 똑같다. 두 번째 이유는 과학 교육의 성격에 그 뿌리가 있는데, 첫 번째 이유는 사실 이것의 귀결에 해당한다. ... 과학자들은 결코 개념, 법칙, 이론을 추상적으로 그리고 그 자체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들은 처음부터 이러한 지적 장치들을 그 적용과 함께 ... 접하게 된다. 새로운 이론은 언제나 어떤 구체적 자연 현상에 대한 적용과 더불어 발표된다. 그런 적용들이 없었다면 그 이론은 받아들여질 만한 후보로도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수용된 뒤에는 그와 똑같은 적용 사례들과 여타의 적용 사례들은 미래의 과학자들이 자신의 일을 배우게 될 교과서에 이론과 함께 수록된다. 그것들은 단순히 장식으로 교과서에 있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증거 자료로 수록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하나의 이론을 깨우치는 과정은 적용 사례에 대한 공부에 의존하며, 여기에는 연필과 종이 또는 실험실의 기기를 이용한 문제 풀이 연습이 포함된다. 예컨대, 뉴턴 역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힘’, ‘질량’, ‘공간’, ‘시간’과 같은 용어의 의미를 어느 순간 깨우친다면, 그 깨우침은 교과서에 수록된 가끔 도움이 될 뿐 불완전하기만 한 정의들을 통해 얻은 것이라기보다, 이 개념들을 문제 풀이에 적용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스스로 수행해 봄으로써 얻어진 것일 것이다.
기초 연습이나 실습을 통한 학습 과정은 전문성의 전수 과정 내내 지속된다. 학생이 대학 신입생 과정에서부터 박사 과정까지 밟아감에 따라 그에게 주어지는 문제들은 점점 복잡해지며 전례에 의해 포괄되지 않는 부분도 증가한다. 그러나 그 문제들은 항상 이전의 성취들에 가깝게 본떠지며, 독립적인 과학자가 되었을 때 그가 정규적으로 몸담게 될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과정의 어디에선가 그 과학자가 스스로 그 게임의 규칙들을 직관적으로 추상화해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믿을 만한 이유는 거의 없다. 많은 과학자들은 현재의 구체적 연구 주제를 관통하는 특정한 개별 가설들에 대해서는 쉽게 그리고 잘 얘기하지만, 자기 분야의 확립된 기반이나 적법한 문제들과 방법들의 특징을 얘기하는 데 있어서는 일반인에 비해 별로 나을 것이 없다. 과학자들이 그러한 [특징에 대한] 추상화를 습득하게 되었다면, 그들은 주로 성공적인 연구 수행 능력을 통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 능력은 그 게임을 관장하는 가설적인 규칙들에 호소하지 않고도 이해될 수 있다. ...
토론 거리
-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발견을 한다고 주장하며, 노벨상은 가장 혁신적인 발견자에게 매년 수여된다. 이는 과학의 대부분의 기간이 패러다임에 기반한 틀에 박힌 정상과학에 해당한다는 쿤의 주장을 반박하는가?
- 정상과학자들에게 어떤 변칙이든 패러다임에 기초해 풀릴 퍼즐로 간주될 수 있다면, 패러다임은 도대체 어떻게 교체될 수 있겠는가?
- 공유된 패러다임과 공유된 규칙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과학혁명의 구조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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