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혁명의 완결+가치

이 항목은 토머스 쿤이 "공약불가능성" 개념을 통해 원래 하고자 했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혁명의 구조 12장과 2판에서 추가된 "추가-1969"를 발췌하여 하나의 문서로 합친 것이다.

12장. 혁명의 완결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제4판 (까치글방, 2013), 262-274쪽.

과학자들은 어떻게 이러한 [패러다임의] 이행을 일으키는 데에 도달하는 것일까? 그 대답의 일부는 이런 경우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그가 죽은 지 거의 한 세기가 지나도록 소수의 전향자밖에 얻지 못했다. 뉴턴의 연구는 『프린키피아』의 출간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특히 대륙에서는 일반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다. 프리스틀리는 산소 이론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고, 켈빈 경 역시 전자기 이론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밖에도 이런 예는 계속된다. 개종의 어려움은 과학자들 자신에 의해서도 자주 지적되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의 마지막 부분에서, 특히 유난히 깊은 통찰력이 드러나는 구절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 책에서 제시된 견해들이 진리임을 확신하지만, ... 오랜 세월 동안 나의 견해와 정반대의 관점에서 보아왔던 다수의 사실들로 머릿속이 꽉 채워진 노련한 자연사학자들이 이것을 믿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 그러나 나는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는데, 편견 없이 이 문제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을 젊은 신진 자연사학자들에게 기대를 건다.” 그리고 플랑크는 그의 『과학적 자서전』에서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서글프게 다음과 같이 술회한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 과거에는 그런 사실들이, 과학자자들이 단지 인간에 불과할 따름인지라 엄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흔히 간주되었다. ... [그러나] 정상과학의 옛 전통을 신봉하는 이들이 일생에 걸쳐서 벌이는 저항은 과학적 기준의 위반이 아니라 과학적 연구의 성격 자체에 대한 지표가 된다. 저항의 근원은 결국 옛 패러다임이 모든 문제를 풀어주리라는 확신, 즉 자연이 패러다임에 의해서 제공되는 틀 속으로 [결국에는] 맞춰진다는 확신에 있다. 필연적으로, 혁명기에는 그런 확신은 고집스럽고 완고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고,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그 확신은 그 이상의 것이다. 그 확신은 바로 정상과학, 즉 퍼즐 풀이의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전문가 공동체는 오직 정상과학을 통해서만 두 가지 일에 성공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옛 패러다임의 잠재적 전망과 정확성을 활용하는 데에 성공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잘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고립시키는 데에 성공을 거두는 일인데, 이런 문제에 대한 탐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출현시킬 수도 있는 성격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이 불가피하고 정당하며, 패러다임의 변화가 증명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논증도 무관하다거나 과학자들이 그들의 마음을 바꾸도록 설득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한 세대가 걸리기도 하지만, 과학자 공동체는 계속해서 새로운 패러다임들로 개종해왔다. 더욱이 이 개종은 과학자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어떤 과학자들, 특히 나이가 많고 보다 노련한 과학자들은 무작정 거부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견해를 움직이는 쪽으로 접근할 수 있다. 개종은 한 번에 몇 명씩 진행될 것인데, 이는 최후의 저항이 사라지고 전문가 사회 전체가 다시금 단일한, 그렇지만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 아래에서 연구를 수행하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개종이 어떻게 유발되며, 어떤 저항을 받는지 물어야 한다.

... [이에 대해] 우리는 대단히 부분적이고 인상적인 성격의 개괄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언급했던 내용은 그 개괄과 결합해서, 증명보다 오히려 설득력에 관해서 물을 때에는 과학적 논증의 성격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단일하고 획일적인 대답이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과학자들은 각각 온갖 종류의 이유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게 되는데, 보통 한 번에 여러 가지 이유가 이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케플러를 코페르니쿠스주의자로 전향시킨 태양 숭배 사상처럼, 이런 이유들 가운데 일부는 전적으로 확실한 과학 영역의 밖에 속하는 것이다. 그 밖의 다른 이유들은 과학자의 생애와 성격의 특성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국적이나, 혁신가와 그 스승들의 기존의 명성이 상당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국 이 질문들을 달리 물을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실제로 이 사람 저 사람을 개종시키는 논거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언제나 단일 그룹으로서 조만간에 재형성될 과학자 공동체의 성격에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마지막 장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패러다임 변화를 둘러싼 싸움에서 특히 효과적이라고 입증된 논증의 몇몇 유형을 살펴보기로 한다.

아마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가장 유력했던 유일한 주장은 그들이 옛 패러다임을 위기로 이끌고 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일 것이다. 그것이 합리화될 수 있는 경우에는, 흔히 이 주장은 있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된다. ... 이런 종류의 주장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경쟁 상대보다 훨씬 더 우월한 양적 정확성을 나타내는 경우에 특히 성공할 확률이 크다. 케플러의 루돌핀 천문도표의 수리적 우월성은 천문학자들을 코페르니쿠스 이론으로 개종시킨 주된 요인이었다. 수리천문학적 관측의 정량적 예측에서 보인 뉴턴의 성공은 그 분야의 보다 합리적인 정성적 경쟁 이론들을 물리치고 그의 이론이 승리를 거두게 된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이유였을 것이다. ...

그러나 위기를 낳은 문제들을 해결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 될 수는 없다. 것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언제나 떳떳하게 주장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에 비해서 더 정확할 것도 없었고, 직접적으로 달력의 개량에 기여하지도 못했다. ... [그러나] 만일 새로운 패러다임이 옛 패러다임이 통용되었던 동안에는 전혀 의문시되지 않았던 현상들의 예측을 허용하는 경우, 특히 설득력이 강한 논증이 전개될 수 있다.

예컨대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행성들이 지구와 유사하고, 금성이 위상을 나타내며, 우주는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광활한 것이 틀림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 결과, 그의 죽음 이후 60년이 지나서 돌연 망원경을 통해서 달의 산과 금성의 위상 현상, 그리고 전에는 예측하지도 못했던 무수한 별들이 나타나자, 그러한 관측 사실들은 특히 비천문학자들 중에서 새 이론으로의 많은 전향자들을 끌어들였다. ... 그리고 문제로서 다루어지는 현상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이 최초로 도입되기 훨씬 이전에 관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설득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은 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수성의 근일점 운동에서의 잘 알려진 변칙현상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리라고 기대했던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그는 대단한 승리감을 만끽했다.

이제까지 논의된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모든 논증들은 경쟁 패러다임과의 상대적인 문제 해결 능력 차이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과학자들에게 그러한 논거들은 일반적으로 가장 의미 있고 설득력 있는 것들이다. 앞의 실례들은 그 강력한 호소력의 원천에 관해서는 아무런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곧 되돌아가 살펴볼 이유들로 인해서, 그것들은 개별적으로 총괄적으로나 강제성을 띠지는 못한다. 다행히도 과학자들로 하여금 옛 패러다임을 버리고 새 것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또다른 종류의 사고 방식이 존재한다. 완전히 명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것은 적절한 혹은 미적인 것에 대한 개인의 감각에 호소하는 논증들이다. 새로운 이론은 옛 이론에 비해서 “보다 간결하고”, “보다 적합하고”, “보다 단순하다”고 이야기된다. 아마도 이런 논거들은 수학에서보다 자연과학에서 덜 효과적일 것이다. 대부분의 새 패러다임의 초기 형태는 미숙하다. 그 미적인 호소력이 완전히 갖추어질 수 있을 때에는, 과학자 공동체의 대다수가 다른 방식을 통해 설득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적 고찰의 중요성이 때때로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수가 있다. 그러한 미적 요소를 통해서 새로운 이론으로 이끌리는 과학자의 수는 소수이기는 하지만, 패러다임의 궁극적 승리는 바로 그 소수에 의존한다. 만일 그들이 후보 패러다임을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채택하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후보 패러다임은 과학자 공동체 전체를 이끌 만큼 충분히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보다 주관적이고 미적인 고찰의 중요성에 대한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사이의 논쟁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후보 패러다임이 최초로 제안될 때, 그것은 당면한 문제들 가운데 소수만을 풀어낼 수 있을 뿐이며, 그런 풀이들의 대부분도 아직은 매우 미흡한 상태이다. 케플러가 출현하기 전까지, 코페르니쿠스 이론은 프톨레마이오스가 작성한 행성 위치에 대한 예측을 거의 개량시키지 못했다. ... 통상적으로 명백히 결정적인 논거들이 전개되는 것은 새 패러다임이 발전되고, 수용되고, 활용되고도 한참 지난 뒤의 일이다. 지구의 자전을 입증하는 푸코 진자나, 빛이 물보다 공기 중에서 더 빠르게 운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피조의 실험이 모두 그러했다. 그것들을 생산하는 일은 정상과학의 일부이며, 그것들의 역할은 패러다임 사이의 논쟁에서가 아니라 혁명 이후의 교과서에서 나타난다.

그러한 교과서가 집필되기 이전에 논쟁이 계속되는 동안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보통 새로운 패러다임의 반대자들은 위기에 처한 영역에서조차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그 적수인 전통적 패러다임에 비해서 우월한 점이 거의 없다고 당당히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패러다임은 어떤 문제들을 더 잘 다루기도 하고 몇몇 새로운 법칙들을 밝히기도 한다. 그러나 옛 패러다임도 이전에 다른 도전들에 대응했듯이, 이런 새로운 도전을 맞아서도 명료화될 수 있으리라고 믿어진다. 부분적으로 수정된 티코 브라헤의 지구중심의 천문학 체계와 플로지스톤 이론의 후기 수정안은 둘다 새로운 후보 패러다임에 의해서 부과된 도전에 대한 대응이었으며, 둘 다 상당히 성공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전통적 이론과 과정의 옹호자들은 거의 어김없이 그 새로운 경쟁 패러다임으로는 풀지 못하지만, 그들의 관점으로는 전혀 무리가 없는 문제들을 선정할 수 있다. 물의 조성이 밝혀지기까지, 수소의 연소반응은 플로지스톤 이론에 유리하고 라부아지에의 이론에 위배되는 강력한 논거가 되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둔 뒤에도 산소 이론은 탄소를 이용한 가연성 기체[수소]의 제조를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것은 플로지스톤 학파가 그들의 견해를 강력히 뒷받침하는 것으로 지적했던 현상이었다. 위기에 처한 영역에서조차도, 논증과 반대 논증의 균형은 때로는 참으로 그 우열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영역 밖에서는 흔히 균형은 결정적으로 전통 쪽에 기울곤 한다. 코페르니쿠스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지상계에서의 운동에 대한 전통적인 이론을 대안도 없이 파괴해 버렸으며, 라부아지에는 금속의 공통성에 대해서 같은 결과를 낳았다. 이 밖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다. 요컨대 새로운 후보 패러다임이 처음부터 문제 해결의 상대적인 능력만을 평가했던 완고한 사람들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과학은 극소수의 주요 혁명만을 경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에서 패러다임의 공약불가능성이라고 칭한 것에 의해서 형성된 반대 논증들까지 덧붙인다면, 과학은 혁명이라고는 결코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패러다임 사이의 논쟁이 대체로 문제 풀이 능력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이 논쟁은 사실 상대적인 문제 해결 능력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논의의 핵심은 어떤 경쟁 패러다임도 완전히 풀었다고 주장하지 못하는 다수의 문제들에 대해서 과연 어느 패러다임이 장차 연구의 지침이 될 것인가에 있다. 과학을 수행하는 대안적 방식들 사이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고, 그런 상황에서의 결정은 과거의 업적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흔히 문제 해결에 의해서 제공되는 증거가 없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 그는 옛 패러다임이 소수의 변칙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데에 실패했다는 것만을 아는 상태에서, 새 패러다임은 당면한 다수의 주요 문제들을 푸는 데에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종류의 결정은 신념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선행되는 위기가 왜 그토록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위기를 경험한 적이 없는 과학자들은, 곧 허상이라고 밝혀지고 또 그렇게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을 따르기 위해서 문제 해결의 확고한 증거를 부인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기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선택된 특정 후보 패러다임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 어떤 근거가 아울러 존재해야 한다. 비록 그 근거가 합리적이거나 궁극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무엇인가가 적어도 몇 명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제안이 올바른 궤도에 올라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적인 고찰뿐일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은 때로는 대부분의 명확한 전문적인 논증이 반대 성향을 가리키고 있을 때에도 그런 미적 고찰들에 의해서 믿음을 바꾸어왔다.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이론이나 드브로이의 물질 이론도 처음 제안되었을 때에는 의미 있는 설득력의 근거를 갖추지 못했다. 오늘날까지도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은 주로 미적 근거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이런 호소력은 수학 분야의 이방인들로서는 느끼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궁극적으로 어떤 신비적인 심미주의를 통해서 성공을 거둔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이유만으로 하나의 과학 전통을 폐기하는 과학자는 매우 드물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으로 판명되는 일이 잦다. 그러나 하나의 패러다임이 승리를 거두려면 초기에 우선 몇몇 지지자들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들은 확고한 논증이 이루어지고 증식될 수 있을 정도까지 그 패러다임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러한 각각의 논증도 그것들이 나타날 때에는 결정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이성적인 사람들인 까닭에, 이런저런 논증들은 결국 많은 과학자들을 설득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를 설득할 수 있거나 설득시킬 수밖에 없는 단일한 논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단일 그룹의 개종이라기보다는 전문 분야의 신념의 분포에서 점차로 전이가 증대되는 것이다.

패러다임의 새로운 후보는 당초에는 지지자도 거의 없고 지지자의 동기도 의심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지자들이 유능한 경우에는 패러다임을 개량하고, 그 가능성을 탐구하고, 그것에 의해서 인도되는 과학자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일이 진행됨에 따라서, 만일 패러다임이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운명이라면, 설득력 있는 논증들의 수효와 강도가 증강될 것이다. 그에 따라서 보다 많은 과학자들이 개종할 것이고, 새 패러다임의 탐사 작업이 계속될 것이다. 점차 새 패러다임에 기초한 실험, 기기, 논문, 서적 등의 수효가 불어날 것이다. 계속해서 새로운 관점이 효과적이라는 점에 설득된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과학을 수행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게 되면서, 결국 소수의 나이 많은 저항자들만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조차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과학사학자는 역사 속에서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틴 비합리적이었던 프리스틀리 같은 사람들을 항상 만날 수 있지만, 어느 정도까지의 저항을 가리켜서 비논리적이라거나 비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기껏해야 과학사학자는 전문 분야가 온통 개종된 이후에도 계속 버티는 사람은 사실상 과학자이기를 거부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후기

토머스 S. 쿤, 『과학혁명의 구조』 제4판 (까치글방, 2013), 후기 

집단 공약의 집합체로서의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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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분야 행렬[패러다임]의 세번째 요소는 내가 여기서 가치들(values)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보통 그것들은 기호적 일반화나 모형보다도 상이한 과학 공동체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자연과학자 전체에 공동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그것들은 항상 작용하고 있지만, 특히 그 중요성이 두드러지는 시기는 특정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위기를 확인하거나, 또는 후에 그들의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양립불가능한 방식들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이다. 아마도 가장 뿌리깊게 수용된 가치는 예측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즉, 예측들은 정확해야 한다. 정량적 예측이 정성적 예측보다 바람직하다. 허용되는 오차의 한계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주어진 분야에서 한결같이 만족되어야 한다. 등등이다. 그러나 전체 이론을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가치들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먼저, 이론은 퍼즐의 정식화와 해결을 가능케 해야 한다. 이론은 가능하면 단순해야하고, 자기 일관적이며, 그럴듯하고, 당대의 다른 이론들과 양립가능해야 한다. (지금 나는 위기의 원천과 이론 선택의 요인을 고려하면서 내적 일관성과 외적 일관성 같은 가치들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점이 초판의 약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외 다른 종류의 가치도 존재하지만, — 이를테면, 과학은 사회적으로 유용해야 한다(또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따위) — 앞의 설명이 내 생각을 나타내준다.

그러나 공유된 가치의 한 가지 측면은 각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전문분야 행렬[패러다임]의 다른 어느 요소보다 더 큰 정도로, 가치들은 패러다임이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될 수 있다. 정확성의 판단은 시대에 따라 특정한 집단의 구성원에 따라 비교적, 물론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안정적이다. 그러나 단순성, 일관성, 그럴듯함 따위의 판단은 흔히 개인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아인슈타인에게는 고전 양자론에서 정상과학의 추구를 불가능하게 만든, 견딜 수 없는 비일관성이 보어와 동료들에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되리라 기대할 수 있었던 난점이었던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가 적용되는 상황에서, 서로 다른 가치들이 홀로 적용되면 흔히 서로 다른 선택을 지시한다는 점이다. 한 이론은 다른 것에 비해 더 정확하지만, 일관성이나 개연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여기서도 고전 양자론이 실례가 된다. 말하자면, 가치들은 과학자들에게 폭넓게 공유되고, 그것들에 대한 공약은 깊고 또 과학을 구성하는 것이지만, 가치들의 적용은 집단 구성원들이 저마다 가진 개인적인 개성과 이력의 특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이 책의 앞부분을 읽은 여러 독자들에게, 공유된 가치가 작동하는 이런 독특한 방식은 내 입장의 주요 취약점으로 보였다. 나는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것[패러다임]이 경쟁 이론 사이의 선택 문제나, 혹은 통상적인 변칙사례와 위기를 야기하는 변칙사례를 구별하는 문제에 관해 어떤 획일적인 동의를 이끌어 내는데 불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주관성과 비합리성까지도 찬양하는 것으로 종종 비난받았다. 그러나 그런 반응은 어느 분야에서건 가치 판단이 보여주는 두 가지 특성을 무시하고 있다. 첫째로,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공유된 가치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공유된 가치는 집단 행동의 중대한 결정 요소일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가치론이나 미학에 관해 어떤 특별한 철학적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재현(representation)이 일차적인 가치였던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비슷하게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가치가 포기되었을 때 조형 예술(plastic arts)의 발달양식은 극적으로 변하였다. 일관성이 더 이상 일차적인 가치가 아니게 된다면, 과학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라. 둘째로, 공유된 가치들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개인간 가변성은 과학에 필수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도 있다. 가치들이 적용되어야 하는 지점들은 또한 예외 없이 위험을 무릅써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변칙사례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고, 새로운 이론에 대한 제안은 대부분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만일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매번 변칙사례를 위기의 원천으로 간주하거나, 또는 어느 동료가 개진한 새로운 이론마다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과학은 중단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느 누구도 변칙사례나 위험부담이 큰 새로운 이론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혁명이란 거의 또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개인의 선택을 좌우하는 공유된 규칙보다는 공유된 가치에 의존하는 편이 공동체가 위험을 분산시키고 연구 활동의 장기적 성공을 보장하는 길이 될 것이다.

범례, 공약불가능성, 그리고 혁명

...

한 이론이 다른 것보다 우월하다는 것은 그 논쟁에서 증명될 수 없다. 그 대신 나는 각 분파가 설득을 통해서 다른 편을 전향시키도록 애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직 철학자들만이 내 주장들 중 이 부분의 취지를 심각하게 잘못 해석했다. 상당히 많은 철학자들은 내가 다음과 같이 믿고 있다고 보았다. 즉 공약불가능한 이론들의 옹호자들은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전혀 할 수가 없고, 그 결과 이론 선택을 둘러싼 논쟁에서 의지할 만한 어떤 좋은 합리적 이유도 없으며, 그 대신 이론 선택은 궁극적으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유들에 의해서 이루어짐에 틀림없고, 실제로 이루어진 결정은 어떤 신비한 직관과 같은 것의 결과라는 것이다. 책의 이런 왜곡된 해석을 낳은 문장들 때문에 나는 비합리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먼저, 증명에 대해서 내가 언급한 것을 살펴보자. 내가 주장해온 요점은 간단하며, 과학철학에서 오랫동안 친숙했던 것이다. 이론 선택을 둘러싼 논쟁은 논리적이거나 수학적인 증명과 완전히 닮은 방식으로 묘사될 수 없다. 증명에서는 추론의 전제들과 규칙들이 처음부터 명기된다. 만일 결론에 대해서 불일치가 발생하면 뒤이은 논쟁의 당사자들은 각 단계들을 하나씩 되짚어가면서 각 단계를 사전의 규정과 대조하여 확인한다. 그런 과정의 종국에는 그중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고, 이미 받아들인 규칙을 위배했음을 시인해야 한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면, 그는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상대방의 증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대신, 만약 양쪽이 규정된 규칙들의 의미나 적용에 관해서 의견을 달리 하고 있음을 깨닫고서 이전의 [규칙에 대한] 합의가 증명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지 못함을 알게 되면, 그 논쟁은 불가피하게 과학혁명 동안 벌어지는 논쟁의 형태로 지속된다. 그런 논쟁은 전제에 관한 것이며, 그것은 증명의 가능성을 향한 전초전으로서 설득에 의지하게 된다.

비교적 친숙한 이 주장에 관한 그 어떤 것도 설득을 위한 좋은 이유들이 없다거나 그런 이유들이 집단에 대해서 궁극적으로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그러한 선택의 이유가 과학철학자들이 통상 열거해온 목록과 다르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그 목록은 정확성, 단순성, 다산성 등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주장이 시사하는 바는 그런 이유들이 가치로서 작용하며, 그래서 그 가치들을 존중하는 데 동의하는 사람들도,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그것을 달리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이론들의 상대적인 다산성에 관해서 의견을 달리한다면, 혹은 그것에는 일치하지만 이론을 선택하는 데에서 다산성과 (예컨대) 적용 범위의 상대적 중요성에 관해 의견이 다르다면, 어느 쪽도 잘못했다고 할 수가 없다. 어느 한쪽이 비과학적인 것도 아니다. 이론 선택을 위한 중립적인 알고리듬—즉 적절히 적용된다면 집단에 속한 각 개인을 동일한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체계적인 의사결정 절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효과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개별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전문가 공동체이다. 왜 과학이 지금과 같이 발전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각 개인이 특정한 선택을 하게 된 세세한 이력과 개성을 (물론 이 주제는 엄청나게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낱낱이 풀어헤칠 필요는 없다. 대신, 일련의 공유된 가치들이 전문가 공동체가 공유하는 특정한 경험들과 상호작용하여 어떻게 그 집단의 구성원 대부분이 결국에는 한 벌의 논증들을 다른 것들보다 더 결정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지를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책의 목차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에 이르는 길 (2-5장 발췌)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발췌)
  13. 혁명을 통한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