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주의 대 포섭주의
예측주의(predictivism)는 예측의 성공이 사후 포섭(accommodation)보다 더 나은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직관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다양한 논변이 제안되어 왔다. 그러나 예측의 성공과 사후 포섭이 제공하는 증거적 뒷받침이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직관 역시 만만치 않다. 19세기 철학자 중에서 휴얼(William Whewell)은 예측주의를 옹호한 반면, 밀(John Stewart Mill)은 그에 반대했다(#Achinstein 2004, 127-250쪽).[1] 20세기에 예측주의의 직관을 되살린 인물은 포퍼(#포퍼 2001, 75-86쪽)인데, 그는 “입증은 위험한 예측들의 결과일 때에만 가치가 있다. ⋯ 이론에 대한 참된 시험의 결과가 아니라면, 입증의 증거는 가치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직관을 발전시킨 #라카토슈 2002의 과학적 연구 프로그램 방법론은 연구 프로그램의 경쟁에서 예측의 성공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변했다. 한편 #헴펠 2010, 4장은 입증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예측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지만, 본격적인 논변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이 주제의 초심자들에게 #Lipton 2005)과 #정동욱 2017이 좋은 출발점을 제공할 것이다.
사용-참신성 예측주의
로널드 기어리(#Ronald N. Giere 1983; #기어리, 비클, 몰딘 2008)와 존 워럴(#Worrall 1989)이 제안하는 절대적 예측주의는 가설 구성에 사용되지 않은(사용-참신한, use-novel) 현상의 예측만이 가설에 대한 진정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기어리는 ‘적절한 시험’ 개념을 이용하여 ‘사용-참신성 예측주의’를 다음과 같이 옹호한다. 과학자가 어떤 자료를 설명하기 위해 가설을 만들었다면(선택했다면), 그렇게 만들어진(혹은 선택된) 가설이 그 자료를 설명하지 못할 가능성은 없다. 즉 그 가설이 참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그 가설은 무조건 그 자료를 설명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따라서 가설을 선택하는 데 사용된 자료와의 일치 여부를 통한 시험은 “거짓인 가설을 거짓으로 거부할” 확률이 0이므로 적절한 시험이 될 수 없다(#Giere 1983, 278쪽). 다른 방식으로 말하자면, 그 자료는 가설이 참이 아니더라도 가설의 예측과 일치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그 자료는 좋은 증거로 간주될 수 없다. 이를 위해 가설의 시험에 사용되는 가설의 경험적 귀결은 자료와의 일치 여부가 사전에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어야 하며,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예측이거나 적어도 가설을 선택하는 데 사용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 워럴(#Worrall 1989, 148-149쪽)은 기어리와 비슷한 논지의 ‘잠재적 반증자’ 논변을 제시했다.
워럴(#Worrall 1989, 155쪽)을 비롯한 많은 예측주의자들은 여기에 ‘기적 금지 논변’을 덧붙인다. 이론의 예측이 성공했을 때, 이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이론의 참 또는 우연의 일치뿐이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로 예측이 성공할 가능성은 기적과 같은 아주 작은 가능성일 것이다. 따라서 예측의 성공에 대한 최선의 설명은 그 이론이 세계의 참된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예측의 성공은 이론이 참이라는 증거를 제공한다. 반면 이론이 이미 알고 있었던 자료를 설명하는 데 성공한 것, 즉 이론에 의한 사후 포섭의 성공은 그 이론이 그 자료를 함축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으로부터 설명되며, 그것은 이론가의 재능에 대해 말해줄 뿐, 이론의 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사후 포섭의 성공은 이론이 참이라는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워럴은 이러한 논변으로부터 ‘이중 사용 금지’라는 규칙을 제안했다. 즉 가설을 구성하는 데 일단 사용된 자료는 또 다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데보라 메이요(Mayo 1996, 8장)는 사용-참신성 예측주의의 반례들을 발굴한 바 있으며, 토머스 니클즈(#Nickles 1987; 1988)는 과학사의 유명한 사례 속에서 ‘이중 사용 금지’ 규칙의 반례들을 찾아냈다. #정동욱 2017과 #정동욱 2018, 2장은 사용-참신성 예측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을 제시하고 있다.
베이즈주의적 논변
패트릭 마허(#Maher 1988; 1993)와 로저 화이트(Roger White 2003)는 베이즈주의가 상대적 예측주의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콜린 하우슨과 앨런 프랭클린(Colin Howson and Allan Franklin 1991)은 베이즈주의가 예측주의를 반박한다고 주장한다. 에릭 반즈(Eric C. Barnes 2005)는 베이즈주의를 통해 ‘지지 예측주의(endorsement predictivism)’가 정당화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스테판 브러쉬(Stephen G. Brush 1994)와 마티아스 프리쉬(Mathias Frisch 2015)는 베이즈주의가 예측주의를 정당화하지도 반박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한다.
예측주의를 옹호하는 마허(#Maher 1988)의 주된 논증은 동전 던지기 사고실험과 베이즈주의적 도출에 기초해 있는데, #정동욱 2018, 5장은 그 사고실험이 오히려 예측주의에 반할 수 있음을 보이는 동시에, 마허의 증명이 정당화되기 어려운 가정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또한 정동욱은 예측주의가 그럴듯해 보이는 두 가지 상황에 대한 베이즈주의적 분석을 제시하는데, 이 분석에서 ‘예측’은 가설의 높은 사전 확률 또는 높은 가능도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 부산물로 해석되며, ‘예측’ 자체가 증거에 특별한 기여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
- ↑ 케인즈는 밀의 입장을 옹호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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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퍼, 칼 (2001), “과학 : 추측과 논박”, 『추측과 논박 I』, 민음사.
- 정동욱 (2017), 「이중 나선과 DNA 회절 사진 : 가설 구성에 사용된 자료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철학』 132집, 237-264쪽.
- 정동욱 (2018), 「반사실적 베이즈주의 증거 이론」, 서울대학교 이학박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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