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위기에 대한 반응

토머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까치, 2013), 8장

위기에 직면한 과학자가 하지 않는 일

위기에 처했을 때, “과학자들은 신념을 잃기 시작하고 이어서 다른 대안을 궁리하기 시작할지 모르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기로 몰고 간 그 패러다임을 바로 폐기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 변칙현상들을 반증 사례로 간주하지 않는다.”(164쪽)

무슨 뜻? “하나의 패러다임을 거부하는 결단은 언제나 그와 동시에 다른 것을 수용하는 결단이 되며, 그 결정으로까지 이끌어가는 판단은 패러다임과 자연의 비교 그리고 패러다임끼리의 비교라는 두 가지를 포함한다.”(165쪽)

대안 없는 패러다임의 포기는 과학 자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런 과학자는 “자기 연장을 탓하는 목수”로 비춰질 것이다.[1]

퍼즐 vs. 반례

그렇다면 정상과학과 위기에 처한 과학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1. 반례의 유무는 그 구별 기준이 될 수 없다. 왜? 정상과학은 그러한 문제를 퍼즐로서 푸는 활동.
  2. 어떤 문제가 퍼즐인지 반례인지는 관점에 달려 있다.
  3. 위기가 퍼즐을 반례로 만들지도 않는다. 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없다.

다만 위기는 패러다임의 여러 버전의 난립 속에서 퍼즐 풀이의 규칙을 완화해줄 뿐이고, 이러한 제한의 완화가 새로운 패러다임 출현을 허용하는 역할을 한다.

결국 무엇을 반례로 보느냐에 따라,

어떤 과학 이론도 반례에 직면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고,
모든 이론이 언제나 반례에 직면해 있는 상태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과학은 왜 증거에 의해 참/거짓이 명확하게 결정되는 분야처럼 보이는가?

  1. 정상과학의 이론-사실 일치 노력 : 마치 입증이나 반증과 같은 시험으로 보임. 그러나 사실 그 목적은 퍼즐 풀이의 일환으로, 그 실패는 과학자의 책임이지 이론의 책임이 아님.
  2. 과학 교육의 성격 : 교과서의 적용 사례들은 마치 이론에 대한 증거처럼 보이기도 함. 그러나 학생들이 교과서의 이론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권위 때문이지 교과서의 적용 사례에 의한 증거 때문이 아님. 사실 그 사례들은 패러다임 학습의 일부로, 만약 그 사례들이 이론의 증거로 제시되려는 것이었으면 훨씬 방대해야 했고, 대안 이론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했을 것.

어떠한 변칙이 중대한 변칙이 되는가

변칙이 반드시 심각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다. 아무리 성공적인 것이든 어느 정도는 문제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점차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실제로 초기의 많은 변칙은 정상과학에 의해 해결되었다(e.g., 달 궤도 문제). 그러나 어떤 문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때까지 해결되지 않았지만,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 않기도 했다(e.g., 수성의 근일점 운동). 그런 문제는 반례로 인식되었을지라도 나중에 해결될 문제로 취급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변칙이 시급히 해결할 중대한 변칙이 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완벽한 답은 없지만, 몇 가지 전형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있다. (i) 그 변칙이 명시적이고 근본적인 일반화를 건드리는 경우(e.g., 상대성 혁명). (ii) 변칙이 실용적으로 가치가 있는 적용을 어렵게 만들 경우(e.g, 코페르니쿠스 혁명). (iii) 어떤 정상과학적 발전이 단순한 변칙을 위기의 근원으로 다시 보게 만드는 경우(e.g., 화학 혁명) (iv) 기타 : 오랜 헛수고.

어떻게든 하나의 변칙이 퍼즐 이상의 것으로 보이게 되면, 위기와 비정상과학의 시기로 이행 시작. 무슨 뜻? (i) 변칙의 광범위한 수용과 탁월한 학자들의 관심 집중 (ii)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그 문제는 그 분야의 가장 큰 문제로 인식 (iii) 여러 문제 풀이 시도 속에서 다양한 부분적인 풀이 제안. 이러한 부분적인 문제 풀이들의 성격 : 문제 풀이 규칙의 완화와 패러다임의 모호성 증대. 결국 패러다임이 존재하지만 그에 대한 전적인 합의 없음. 이러한 상태를 당대의 과학자 스스로 ‘위기’로 인식하기도(e.g., 코페르니쿠스, 아인슈타인, 파울리 등).

위기와 비정상과학의 특징

시작 조건 : “모든 위기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모호해짐과 더불어 그에 따라 정상과학의 규칙이 헤이해짐에 따라서 시작된다.”(129쪽) 이 시기 연구는 패러다임 이전 시절의 연구와 매우 유사해진다.

종결의 세 가지 경우 : (i) 정상과학적 해결 (ii) 미해결 (iii) 다른 패러다임에 의해 해결.

세 번째 경우는 ‘과학혁명’으로 일컬어짐. 이러한 변화는 축적적 과정이 아니며, 근본적인 재구성 과정을 포함. 새-영양 혹은 오리-토끼 시각적 게슈탈트 전환에 비유될 수 있음. (물론 차이는 있음 : scientists do not see something as something else; instead they simply see it. 오락가락 못함)

이제 위기 시에 나타나는 연구의 특징을 열거해보자. (쿤은 이를 매우 잠정적으로만 간주)

  1.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 : 그것은 위기 초반에도 출현할 수 있지만(위기 인식과 그 해결책이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 상당한 시간을 두고 나타날 수도 있다. 그 사이에 과학자들은 변칙을 분리시켜,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활동을 하거나, 가이드가 없는 상태에서 다양한 잠정적인 대안을 시도한다(e.g., 케플러).
  2. 철학적 분석으로의 전향 : 규칙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새로운 규칙 탐색. 위기의 뿌리를 명징하게 분리해내기 위한 사고 실험 시도.
  3. 새로운 발견들의 양산 : 집중된 연구의 우연한 결과(e.g., 반사에 의한 편광)이거나, 잠정적 가설의 새로운 예측(e.g., 프레넬의 점)이거나, 또는 흔했지만 무시되었던 관찰이 중요한 발견으로 재인식(e.g., 긁힌 자국의 색깔, 광전효과)되기도 한다.
  4. 새로운 패러다임의 주창자는 주로 젊거나 그 분야의 초심자

유의할 점 : 비정상과학(extraordinary science)은 혁명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상과학이냐 비정상과학이냐는 그것의 결과와 상관없이, 그 시기의 연구 성격에 의존한다. “변칙이나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 과학자들은 현존 패러다임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취하게 되며, 그들 연구의 성격도 그에 따라서 바뀌게 된다. 경쟁적인 명료화의 남발, 무엇이든 해보려는 의지, 명백한 불만의 표현, 철학에의 의존과 기본 요소에 관한 논쟁, 이 모든 것들은 정상 연구로부터 비상 연구로 옮아가는 증세들이다.”(137쪽)

주석

  1. 쿤이 기존의 인식론(검증주의나 반증주의)에 들어맞지 않는 역사적 사례들을 찾아서 제기할 때, 그것은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그것은 철학적 이론에 대한 위기를 심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철학적 이론을 반증할 수도 없고 반증하지도 않을 것이다. 기존 패러다임의 옹호자들은 어떤 행동을 취할까? 그들은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명료화를 시도하고 임시방편적인 수정들을 시도할 것이다. 만약 쿤의 문제제기가 이러한 사소한 역할 이상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대안적 분석의 씨앗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지 기존 패러다임을 그 자체로 무너뜨리기 때문이 아니다. [즉 기존 패러다임에게 매우 이상하게 보이는 현상이, 대안 패러다임에게는 당연한 일 또는 동어반복적인 일로 보이게 된다. 반례에 직면해 패러다임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들은 기존 인식론의 입장에서는 이상 현상으로 보이겠지만, 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 또는 필연적인 일이 된다. 그렇다고 이러한 새 관점의 출현이 기존 인식론을 자동적으로 폐기시키는 것은 아니다. 둘의 비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의 목차

과학혁명의 구조

  1. 서론 : 역사의 역할
  2. 정상과학에 이르는 길 (2-5장 발췌)
  3. 정상과학의 성격
  4. 퍼즐 풀이로서의 정상과학 (발췌)
  5. 패러다임의 우선성
  6. 변칙현상 그리고 과학적 발견의 출현 (발췌)
  7. 위기 그리고 과학 이론의 출현
  8. 위기에 대한 반응
  9. 과학혁명의 성격과 필연성 (번역)
  10. 세계관의 변화로서의 혁명 (발췌)
  11. 혁명의 비가시성
  12. 혁명의 완결 (발췌)
  13. 혁명을 통한 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