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 혁명/고대의 2구체 우주

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1장

코페르니쿠스와 근대적 정신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사상의 혁명, 즉 우주에 대한 관념과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대한 관념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르네상스 사상사에서 이 사건은 서구인의 지적 발전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거듭 선언되었다. 그러나 그 혁명은 천문학 연구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던 난해한 세부 사항에 달려 있었다. 어떻게 이런 혁명이 그토록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까?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란 말은 무슨 뜻일까?

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holaus Copernicus)는 천문학 이론의 정확성과 단순성을 증가시키기 위해 종전까지 지구에 부여되었던 많은 천문학적 기능들을 태양에 넘겨 주자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 전까지 지구는 별과 행성의 운동에 대한 천문학자들의 계산에서 고정된 중심이었다. 한 세기가 지난 후, 태양은 적어도 천문학에서는 지구를 대신해 행성 운동의 중심 자리를 차지했고, 지구는 그 특별한 천문학적 지위를 잃고 움직이는 여러 행성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근대 천문학의 주된 업적 중 대다수는 이러한 자리 교체에 의존하고 있다. 즉 천문학의 근본 개념들에서 일어난 혁신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첫 번째 의미다.

그러나 천문학의 혁신은 그 혁명의 유일한 의미가 아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aelestium)』[이후에는 『회전에 관하여』로 줄여서 표기]가 출판되자,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이해 방식에서는 다른 근본적인 변화들도 빠르게 나타났다. 이러한 혁신들 중 대다수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이론에 따른 예기치 않은 부산물로, 이는 한 세기 반 뒤 뉴턴의 우주 관념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천체의 천문학적 위치를 예측하는 데 사용되던 기법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지구의 운동을 제안했다. 다른 과학의 입장에서 그의 제안은 그저 새로운 문제들을 일으킬 뿐이었고, 그 문제들이 해결될 때까지 이 천문학자의 우주 개념은 다른 과학자들의 우주 개념과 양립할 수 없었다. 17세기 동안, 코페르니쿠스 천문학과 다른 과학들 사이의 화해 과정은 현재 과학혁명으로 알려진 전반적인 지적 격동의 주요한 원인이었다.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과학은 새로운가역할을 얻어, 그 후 과학은 서구 사회와 사상의 발전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의미는 그것이 과학에 미친 영향으로도 다 채워지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어나 활동하던 때는 정치적, 경제적, 지적 삶에서 일어난 빠른 변화들이 근대 유럽 및 아메리카 문명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던 시기였다. 그의 행성 이론 및 그와 연계된 태양 중심의 우주 관념은 유럽 사회가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데 기여했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간이 우주 또는 신과 맺는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고전 천문학에 대한 매우 전문적이면서 고도로 수학적인 개선에서 시작됐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종교, 철학, 사회 이론에서 벌어진 엄청난 논쟁의 한 초점이 되어, 아메리카 발견 이후 2세기 동안 근대 정신의 기조를 정해 주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그저 무수히 많은 별들 중 하나의 주위를 맹목적으로 돌고 있는 행성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우주적 계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는 지구를 신의 창조에서 유일한 중심으로 여겼던 이전 사람들의 생각과 매우 달랐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서구인의 가치관 변화에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책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이러한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 세 가지−천문학적, 과학적, 철학적−의미 모두를 다룬다. 행성 천문학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 혁명은 당연히 우리의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첫 두 장에서는, 맨눈으로 하늘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와 별 관측가들이 거기서 본 것에 어떻게 처음 반응했는지를 살펴보기 때문에, 우리의 거의 유일한 관심사는 천문학과 천문학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고대 세계에서 만들어진 주요 천문학 이론들을 검토하고 나면, 우리는 관점에 변화를 줄 것이다. 고대의 천문학 전통이 가진 힘을 분석하고 그 전통과의 근본적 단절을 위한 필요조건들을 탐색하면서, 확립된 과학적 개념의 범위를 하나의 과학 또는 심지어 일군의 과학들에 제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점차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3장과 4장에서 우리는 천문학 자체보다는 천문학이 실행되던 지적 환경에 더 신경을 쓸 것이며, 사회경제적 환경도 살짝 살펴볼 것이다. 두 장에서는 전통적인 천문학적 개념 체계의 천문학 외적−과학적, 종교적, 일상적−함의들을 주로 다룰 것이다. 이는 수리 천문학의 이해 방식에서 나타난 변화가 어떻게 혁명적인 귀결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뒤의 세 장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와 그것이 수용되는 과정과 새로운 과학적 우주 관념에 기여한 바를 살펴볼 때에는, 세 측면 모두를 한꺼번에 다룰 것이다. 행성으로서의 지구 개념을 서구 사상의 전제로 확립시킨 투쟁이야말로 근대 정신에 이르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의 완전한 의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 혁명은 그것의 과학적, 역사적 귀결 덕분에 과학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사건에 속한다. 그러나 이 혁명은 그 특정한 분야를 초월하는 또 하나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어떤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 현대 서구 문명은 과거 그 어떤 문명에 비해서도 과학적 개념들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일상적인 철학뿐 아니라 빵과 버터를 위해서도 요구된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과학 이론들의 최종적인 증명은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우리의 태양을 포함한 별들이 무한한 우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형태의 발전된 천문학적 우주 관념의 나이는 아직 4세기가 되지 않았으며, 이는 이미 구식이 되었다. 그러한 이해 방식이 코페르니쿠스와 그 계승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전에는, 우주의 구조에 대한 다른 관념들이 하늘에서 관측된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천문학 이론들은 우리가 현재 믿고 있는 것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지만, 당대에는 우리가 지금 우리의 이론에 부여하고 있는 만큼의 확고한 신임을 대부분 받고 있었다. 더구나 그 이론들을 믿은 것은 다음의 똑같은 이유들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중요해 보이는 질문들에 대한 그럴듯한 대답을 제공했다. 다른 분야의 과학에서도 애지중지되던 과학적 믿음들의 무상함을 보여 주는 유사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사실 천문학의 기본 개념들은 그 어떤 믿음보다도 안정적이었다.

과학의 근본 개념들이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과학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각각의 새로운 과학 이론은 선행 이론에 의해 제공된 지식의 단단한 핵심을 보존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덧붙인다. 과학은 오래된 이론을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하면서 진보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처럼 과학이 중요해진 시대는 당대에 당연시하는 과학적 믿음들을 검토할 수 있는 관점이 정말로 필요하며, 역사는 그러한 관점의 중요한 한 가지 밑천을 제공한다. 만약 우리가 현대의 몇몇 과학적 개념의 기원과 그것이 이전 시대의 개념을 대체한 과정을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현명하게 그 생존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천문학적 개념들을 다루지만, 그것들은 다른 많은 과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개념들과도 매우 비슷하며, 그것들의 발전을 면밀히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과학 이론 일반에 대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 이론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신임을 얻기 위해, 그것은 무엇에 기초해 있어야 하는가? 그것의 기능, 그것의 용도는 무엇인가? 그것의 저력은 무엇인가? 역사적 분석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답을 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질문들을 분명히 밝히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여러 면에서 전형적인 과학 이론이기 때문에, 그 역사는 과학적 개념들이 발달하고 선행 개념을 대체하는 과정을 일부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나 과학 외부에 미친 영향을 놓고 볼 때,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전형적이지 않다. 과학 이외의 사상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수행한 과학 이론은 거의 없다. 그러나 유일한 것도 아니다. 19세기에는, 다윈의 진화 이론이 비슷한 과학 외적 질문들을 제기했다. 우리 세기[20세기]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들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들이 서구 사상의 근본적인 방향 선회를 일으킬 수도 있는 논쟁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지구가 행성에 불과하다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과 무의식이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을 통제한다는 자신의 발견이 낳은 유사한 결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론을 배웠든 안 배웠든 상관없이, 우리는 코페르니쿠스와 다윈과 같은 사람들의 지적 상속인에 해당한다. 우리의 근본적 사고방식은 그들에 의해 변형되었으며, 마찬가지로 우리의 아이나 손자들의 사고는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의 연구에 의해 변형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과학의 내적 발전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는 분명 사소해 보이는 고도로 전문적인 문제에 대한 한 과학자의 해결책이 어떻게 가끔씩은 일상의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도 이해해야 한다.

원시적 우주론 속의 하늘

이 책의 대부분은 천문학적 관찰과 이론들이 고대와 근대 초의 우주론적 사고, 즉 우주의 구조에 대한 인간의 이해 방식에 미친 영향을 다룰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천문학이 우주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점을 당연하게 여긴다. 만약 우주의 형태나 우주 속 지구의 위치, 또는 지구와 태양의 관계와 태양과 별의 관계를 알고 싶다면, 우리는 천문학자 아니면 물리학자에게 물어볼 것이다. 그들은 하늘과 지구에 대한 상세한 정량적 관측을 만들어 왔으며, 우주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그들이 예측한 그 움직임의 정확성에 의해 보장받는다.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이해 방식과 대중적인 우주론은 그들이 공들인 연구의 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천문학과 우주론의 이러한 밀접한 연계는 시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국소적으로 나타난 일이다. 기록이 남아 있는 모든 문명과 문화는 “우주의 구조는 어떠한 형태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답에 도달하기 위해 하늘의 모습에 많은 주의를 기울인 것은 오직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 서구 문명뿐이었다. 우주론을 구성하려는 노력은 하늘을 체계적으로 관측하려는 욕구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더 원초적이었다. 게다가 우주론적 노력의 원시적인 형태는 특히 유익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오늘날 익숙한 좀 더 전문적이고 추상적인 우주론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징들을 밝혀 주기 때문이다.

우주에 대한 원시적인 이해 방식들은 상당히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 주지만, 그럼에도 그 모두는 그 체계의 설계자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지상의 사건들에 의해 주로 형성되었다. 원시 우주론에서, 하늘은 단지 땅의 경계를 제공하기 위해 개략적으로만 그려진다. 그곳은 신비스런 인물들로 채워져 그들에 의해 움직이고, 그들의 영적 서열은 보통 당면한 지상의 환경으로부터의 거리와 함께 올라간다. 예를 들어, 이집트 우주론의 한 주요 형태에서, 땅은 가늘고 긴 접시로 그려졌다. 그 접시의 기다란 차원은 나일 강에 대응됐고, 그 평평한 바닥은 고대 이집트 문명이 한정되어 있던 충적 분지였다. 그리고 굽어 있으면서 물결무늬가 있는 가장자리는 지상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이었다. 접시ᐨ땅 위에는 공기라는 신이 있어서 뒤집어진 접시ᐨ돔, 즉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땅의 접시는 다시 물, 즉 또 다른 신이 떠받치고 있었고, 그 물은 우주의 대칭적인 아래쪽 경계를 이루는 제3의 접시에 의지해 있었다.

분명 이러한 우주는 이집트인이 알고 있던 세계를 본뜬 것이다. 정말로 그는 자신이 볼 수 있었던 물의 유일한 방향으로만 한정된 좁고 기다란 접시 안에서 살았다. 맑은 날이나 밤에 보이는 하늘은 정말로 돔 형태로 보였으며 지금도 그렇게 보인다. 우주의 대칭적인 아래쪽 경계는 그에 관한 관찰이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었다. 천문학적 관찰들은 무시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덜 정확하게, 그리고 더 신비스럽게 다루어졌다. 태양은 ‘라(Ra)’라는 이집트의 주요한 신이었는데, 그는 배 두 척을 거느렸다. 하나는 공기를 통과하는 낮의 여정을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물을 통과하는 밤의 여정을 위한 것이었다. 별들은 하늘의 둥근 천장에 그려져 있거나 박혀 있었다. 그들은 작은 신으로서 움직였고, 그 우주론의 어떤 버전에서는 매일 밤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때로는 더 상세한 천문 관찰이 들어오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주극성(週極星, 절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별)들은 ‘피로를 모르는 별들’ 또는 ‘소멸을 모르는 별들’로 인식되었다. 그러한 관찰로부터 북쪽 하늘은 죽음이 불가능한 지역, 즉 영원한 축복을 받은 사후세계의 지역으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천문학적 관찰의 흔적은 많지 않았다.

이집트와 비슷한 우주론의 단편들은 인도와 바빌로니아처럼 기록이 남아 있는 모든 고대 문명에서 발견될 수 있다. 현대의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현대 원시 사회들에서도 다른 원시 우주론들이 나타난다. 우주의 구조에 대한 그러한 모든 그림은 분명 기본적인 심리적 요구를 충족한다. 그 그림들은 인간의 일상적인 활동과 신의 활동을 위한 무대를 제공한다. 인간의 거주지와 나머지 자연의 물리적 관계를 설명함으로써, 그 그림들은 인간을 위해 우주를 통합해 주고 그 안에서 그가 안식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준다. 인간은 우주론을 발명하지 않고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주론은 그의 모든−실제적이거나 정신적인−행위에 스며들어 의미를 부여하는 세계관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주론에 의해 충족되는 심리적 요구는 상대적으로 균일하지만, 이러한 요구를 충족해 줄 수 있었던 우주론은 사회마다 또는 문명마다 엄청나게 달랐다. 위에서 언급한 원시 우주론 중 어떤 것도 세계관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할 텐데, 왜냐하면 우리가 속한 문명에서는 믿을 만한 우주론이 되기 위해 만족해야 하는 추가적인 기준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물리 세계의 일상적인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끌어들이는 우주론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최근 세기에 우리는 더 기계적인 설명을 고집해 왔다. 더더욱 중요하게, 지금 우리는 우주론이 자연의 행동에 대한 많은 세부적인 관찰들을 설명할 수 있어야만 그에 만족할 것이다. 원시 우주론들은 자연이 작동하는 개략적인 스케치에 불과해서, 그 작동의 극히 일부분만이 우주론에 통합되어 있다. 태양신 ‘라’는 매일 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여행하지만, 그 여정의 규칙적인 반복이나 계절에 따른 그 배의 경로 변화는 이집트 우주론에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한 세부 사항에 대한 설명을 우주론의 기능으로 여긴 것은 우리 자신의 서구 문명뿐이었다. 다른 어떤 문명에서도, 고대 문명이든 현대 문명이든, 비슷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우주론이 심리적으로 만족스러운 세계관뿐 아니라 매일의 일출 위치 변화와 같은 관측 현상에 대한 설명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는 우주론적 사고의 힘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그것은 우주 안에서의 안식을 향한 보편적 욕구를 과학적 설명의 발견을 향한 전례 없는 노력으로 이어 주었다. 서구 문명의 가장 특징적인 성취들 중 많은 부분은 우주론적 사고에 부과된 이러한 상이한 요구들의 조합에 의존해 있다. 그러나 그 조합이 언제나 잘 맞아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인으로 하여금 우주론의 건설을 천문학자를 비롯한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도록 했는데, 그들은 현대 우주론이 믿을 만한 것이 되기 위해 만족해야 하는 수많은 상세한 관찰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관찰은 우주론과 맞을 수도 모순될 수도 있는 양날의 칼이기 때문에, 이러한 위임의 결과는 엄청나게 충격적일 수 있다. 때때로 천문학자는 전까지 전체 문명의 구성원들−전문가와 비전문가 모두−에게 우주를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었던 세계관을 그의 전공에만 한정된 이유 때문에 파괴할 수 있다.

이와 매우 유사한 일이 코페르니쿠스 혁명 기간에 일어났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 일종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서구의 두 가지 주된 과학적 우주론, 즉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과 코페르니쿠스 우주론이 의존하고 있던−모두 맨눈으로 볼 수 있었던−주요한 관찰들을 알아 두어야 한다. 하늘에 대한 어느 한순간의 전경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맑은 밤의 하늘은 우선 시적 상상을 자극할 뿐, 과학적 상상을 자극하지 않는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어떤 사람도 별들을 “밤의 양초들”로 본 셰익스피어의 상상이나 은하수를 “그 먼지는 금이고 그 노면은 별들인 넓고 충만한 도로”로 본 밀턴의 상상에 도전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묘사들은 원시 우주론에 포함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천문학자의 질문들에 아무런 답도 제공하지 못한다. 은하수, 태양, 행성 목성은 얼마나 멀리 있는가? 이러한 빛의 점들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달의 물질은 지구와 비슷한가, 아니면 태양과 비슷한가, 아니면 별과 비슷한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체계적이고 상세한 정량적 관찰을 요구한다.

이제부터 이 장에서는 태양과 별에 대한 관찰과 그것이 고대 그리스의 첫 과학적 우주론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 역할을 다룰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기술적인 문제를 부과한 천체인 행성들에 대해 묘사함으로써 맨눈을 이용한 천문 관측의 부분을 마무리할 것이다.

태양의 겉보기 운동

기원전 1000년 이전부터(아마도 훨씬 전부터), 바빌로니아인들과 이집트인들은 태양의 운동에 대한 체계적인 관측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반듯하고 평평한 땅에 일정한 길이의 막대를 수직으로 세워 원시적인 해시계를 만들었는데, 그러한 막대를 그노몬(gnomon)이라 불렀다. 태양의 겉보기 위치와 그노몬의 끝과 그 그림자의 끝은 맑은 날 매 순간 일직선상에 있기 때문에,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을 측정하면 태양의 방향이 완벽하게 결정된다. 그림자가 짧으면, 태양은 하늘 높이 있다. 그림자가 동쪽을 가리킨다고 하면, 태양은 서쪽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그노몬의 그림자에 대한 반복된 관측은 태양 위치의 일간·연간 변화에 대한 막대한 양의 상식적이지만 모호한 지식을 체계화하고 정량화할 수 있다. 고대에 그러한 관찰들은 태양을 시계이자 달력으로 길들여 주었으며, 이러한 응용은 관측 기법을 지속하고 개선하는 하나의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다.

 
그림 1.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서 그노몬의 그림자가 계절에 따라 보여 주는 일간 운동. 일출과 일몰 때 그림자는 순간적으로 무한대의 길이로 늘어나 그 끝은 다이어그램의 점선과 ‘만난다’. 일출과 일몰 사이에 그림자의 끝은 점선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정오에 그림자는 언제나 북쪽 방향을 가리킨다.

그노몬 그림자의 길이와 방향은 둘 다 하루가 가는 동안 천천히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림자는 일출과 일몰 때 가장 길며, 이때 두 그림자는 대략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햇빛이 비치는 시간 동안 그림자는 대칭적인 부채꼴 형태를 따라 서서히 움직이는데, 고대의 관찰자들이 접근할 수 있었던 대부분의 지역에서 그 모습은 그림 1에서 보이는 형태들 중 하나와 매우 비슷하다. 다이어그램이 보여 주듯이, 부채꼴의 형태는 날마다 달라지지만, 그것은 한 가지 변치 않는 매우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날마다 그노몬의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순간에 그 그림자는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이 단순한 규칙성은 이후의 모든 천문학적 측정을 위한 두 개의 근본적인 기준틀을 제공한다. 하루 중 가장 짧은 그림자가 가리키는 영구적인 방향은 북쪽을 정의해 주며, 이로부터 다른 방위들이 따라 나온다. 또한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순간은 시간상의 기준점, 즉 정오를 정의해 준다. 그래서 연이은 두 정오 사이의 간격은 근본적인 시간 단위, 즉 겉보기 태양일을 정의해 준다. 기원전 첫 천 년 동안, 바빌로니아인, 이집트인, 그리스인, 로마인들은 태양일(solar day)을 더 작은 간격으로 잘게 나누기 위해 원시적인 지상 시계, 특히 물시계를 사용했는데, 이로부터 우리의 현대적 시간 단위인 시, 분, 초가 유래했다.[1]

 
그림 2. 일출 지점과 태양의 정오 고도와 그노몬 그림자의 계절적 변화 사이의 관계.

태양의 일간 운동에 의해 정의된 방위와 시간 단위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태양의 운동을 묘사하기 위한 기초를 제공한다. 일출은 언제나 동쪽 어디선가 일어나고 일몰은 서쪽에서 일어나지만, 일출의 위치, 그노몬의 정오 그림자의 길이, 일광 시간의 길이는 날마다 또 계절마다 달라진다(그림 2). 동지는 태양이 지평선의 동점과 서점으로부터 가장 남쪽으로 멀어진 지점에서 뜨고 지는 날(현대 달력에서는 12월 22일)이다. 이날은 다른 어느 날보다도 일광 시간이 적고 그노몬의 정오 그림자가 길다. 동지가 지나면 태양이 뜨는 지점과 지는 지점은 지평선을 따라 서서히 북쪽으로 함께 이동하고, 정오 그림자는 점점 짧아진다. 춘분(3월 21일)에는 태양이 가장 정확한 동쪽과 서쪽에서 뜨고 진다. 이때 밤과 낮은 같은 길이가 된다. 날이 더 지나면, 일출점과 일몰점은 계속 북쪽으로 이동하여 일광 시간의 길이는 하지(6월 22일)가 될 때까지 증가한다. 하지에 태양은 가장 북쪽에서 뜨고 진다. 이날은 일광 시간이 가장 길게 지속되는 때이면서 그노몬의 정오 그림자가 가장 짧은 때다. 하지 이후, 일출점은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고, 밤이 점점 길어진다. 추분(9월 23일)에 태양은 다시 한 번 거의 정확한 동쪽과 서쪽에서 뜨고 진다. 이제 그 지점은 동지가 되돌아올 때까지 남쪽으로 계속 이동한다.

지점(solstices)과 분점(equinoxes)의 현대적 이름들이 가리키듯이, 지평선을 따라 일출이 앞뒤로 오락가락하는 운동은 계절의 주기에 대응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고대인들은 태양이 계절을 지배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는 동시에 그것을 달력으로서 관찰했다. 즉, 태양은 그들의 농업 활동이 의존하는 계절의 흐름에 대한 실용적인 지표였다. 영국 스톤헨지의 신비스러운 거대 돌 구조물과 같은 선사 유물들은 태양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관심이 얼마나 오래되고 강했는지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스톤헨지는 석기시대 문명 초기의 사람들이 거대한 돌들을 이용해 공들여 건설한 중요한 사원으로, 몇몇 돌은 무게가 거의 30톤에 달했다. 또한 그것은 일종의 투박한 천문대였을 것임이 매우 확실하다. 그 돌들은 중앙의 관찰자가 고대의 한여름 날, 즉 하지에 “수도사의 뒤꿈치(Friar's Heel)”라 불리는 특별하게 놓인 돌 위에서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배열되어 있었다.

태양의 일간 운동이 하루를 정의해 주듯이, 계절 순환의 길이−춘분과 다음 춘분 사이의 간격−는 기본적인 달력의 단위인 1년을 정의해 준다. 그러나 1년은 하루보다 측정하기 훨씬 더 어려운 단위였기 때문에, 유용한 장기 달력에 대한 요구는 천문학자들에게 지속적인 문제를 야기했으며, 16세기에 불거진 그 문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최초의 고대 태양력은 1년 360일에 기초해 있었는데, 이는 바빌로니아인들의 60진법 수 체계에 잘 들어맞는 깔끔한 어림수였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에는 360일보다 많은 날이 필요했고, 따라서 이 초창기 태양력의 “새해 첫날”은 겨울에서 가을로, 여름으로, 봄으로 사계절을 따라 야금야금 움직였다. 이 달력은 오랜 기간에 걸쳐 사용하기에는 거의 유용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집트 나일 강의 범람과 같은 중요한 계절적 사건들이 해가 거듭될 때마다 점점 더 뒤의 날짜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태양력이 계절과 보조를 맞출 수 있도록, 이집트인들은 원래의 1년에 별도의 5일을 축제철로 추가했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에 필요한 날은 정수가 아니다. 365일로 이루어진 1년 또한 너무 짧았고, 40년 후 이집트 달력은 계절과 10일이나 어긋나게 되었다. 따라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집트 천문학자들의 기술적 도움으로 달력을 개혁했을 때, 그는 1년 365.25일의 길이에 기초해 새로운 달력을 만들었다. 이 달력에서는, 365일로 이루어진 3년 다음에 366일로 이루어진 1년이 뒤를 이었다. 이 달력, 즉 율리우스력은 기원전 45년에 도입될 때부터 코페르니쿠스가 죽을 때까지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에 의해 정의된 1년, 즉 계절년(seasonal year)은 실제로 365.25일보다 11분 14초 짧다. 그래서 코페르니쿠스가 살던 시기에 춘분 날짜는 3월 21일에서 3월 11일로 앞당겨졌다. 이에 따른 달력 개혁에 대한 요구(4장과 5장을 보라)는 천문학 그 자체의 개혁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동기를 제공했는데, 서구 세계에 현대 달력을 안겨 준 그 개혁은 『회전에 관하여』가 출판되고서 고작 39년 뒤에 일어났다. 새 달력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에 의해 기독교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에 도입되었는데, 이 달력에서는 400년마다 세 번의 윤년을 제외했다. 1600년은 윤년이었고 2000년도 윤년이 되겠지만, 율리우스력에서 모두 윤년이었던 1700년, 1800년, 1900년은 그레고리력에서는 그냥 365일이었으며, 2100년도 365일인 평범한 해가 될 것이다.

 
그림 3. 북반구의 열대 지방에서 그노몬의 그림자가 계절에 따라 보여 주는 일간 운동.

위에서 논의한 모든 관찰은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천문학자에게 보였을 태양의 모습을 근사적으로 보여 준다.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북부 이집트가 그 지역에 해당하며, 고대의 거의 모든 관찰이 그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지역 내에서도 태양의 행동 중 어떤 면에서는 상당한 정량적 차이들이 나타나며, 이집트의 최남단 지역에서는 질적 변화도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들에 대한 지식 역시 고대 천문학 이론을 구성하는 데 한 부분을 담당했다. 관찰자가 동쪽이나 서쪽으로 이동하는 데에서는 아무런 차이도 관찰되지 않는다. 그러나 남쪽으로 갈수록 그노몬의 정오 그림자는 짧아지고, 정오의 태양은 같은 날 북쪽 지역에서보다 높은 하늘에 있다. 이와 비슷하게, 전체 하루의 길이는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낮 시간과 밤 시간 사이의 차이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 중 남쪽 지역에서 더 작아진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태양이 1년 동안 지평선상에서 북쪽이나 남쪽으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변동들 중 어떤 것도 위에서 제공된 정성적인 묘사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만약 어떤 관찰자가 여름에 남부 이집트까지 멀리 이동하게 되었다면, 그는 날마다 그노몬의 정오 그림자가 점점 짧아져 결국엔 완전히 사라졌다가 그다음에는 다시 나타나서 남쪽을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의 최남단 지역에서 그노몬의 그림자가 보여 주는 연간 운동은 그림 3에 그려진 것과 같다. 남쪽으로 더 멀리 또는 북쪽으로 더 멀리 여행한다면 태양의 운동에 관한 또 다른 변칙적인 관찰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고대에 관찰되지 않았다. 그에 대한−관찰이 이루어지기 전이라도−예측을 가능케 해 준 천문학 이론을 다룰 때까지, 우리는 그것을 논의하지 않을 것이다(#움직이는 별로서의 태양).

별들의 운동은 태양보다 훨씬 단순하고 더 규칙적이다. 그러나 그 규칙성은 그렇게 쉽게 인식되기 어려운데, 왜냐하면 밤하늘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위해서는 반복되는 연구에서 별이 하늘 어디에 보이든 각각의 별을 골라내는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에서, 오랜 훈련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이 능력은 상당히 희귀한 편이다. 오늘날 밤에 야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며, 밖에 있을 때에도 하늘에 대한 시야는 높은 빌딩과 가로등 때문에 가려진다. 게다가 하늘에 대한 관찰은 더 이상 평균적인 인간의 삶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대에 별들은 평범한 인간의 환경을 구성하는 직접적인 부분이었으며, 천체들은 시계이자 달력으로서 보편적 기능을 수행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눈에 별을 식별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능력이었다. 역사 시대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밤하늘을 계속 바라보는 일을 했던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별들을 별자리로 정리했는데, 이는 고정된 패턴으로 보이거나 인식될 수 있는 이웃한 별들의 그룹을 뜻했다. 하늘 가득한 별들 중에서 특정한 별을 찾기 위해, 관찰자는 우선 그 별이 포함된 익숙한 별 패턴의 위치를 찾아낸 다음 그 패턴 속에서 별을 골라낼 것이다.

 
그림 4. 북쪽 하늘의 큰곰자리. 익숙한 북두칠성의 국자 손잡이 부분이 곰의 꼬리를 이루고 있다. 북극성은 그림에서 곰의 오른쪽 귀 바로 위의 아주 밝은 별이다. 그것은 북두칠성의 그릇 부분의 마지막 두 별과 거의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현대 천문학자들이 사용하는 대다수 별자리들의 이름은 고대의 신화 속 등장인물을 따서 지어졌다. 어떤 것은 바빌로니아의 쐐기문자 점토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그 몇몇은 기원전 3000년경에 만들어졌다. 현대 천문학에 의해 그 정의가 달라진 것도 있지만, 주요한 별자리들은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있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유산에 속한다. 그러나 이 그룹들이 처음에 어떻게 선별되었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큰곰자리의 별들에서 곰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그림 4). 다른 별자리들도 비슷한 시각적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어쩌면 그 별들은 원래 편의상 묶인 후 아무렇게나 이름이 지어졌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매우 이상하게 묶여 있다. 고대의 별자리들은 매우 불규칙한 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하늘에서 상당히 다른 크기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편의상의 선택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은 현대 천문학자들이 그 별자리들의 경계를 변경한 한 가지 이유다. 아마도 고대의 양치기나 길잡이는 매시간 하늘을 쳐다보며 정말로 그에게 익숙한 신화 속 등장인물들을 ‘보았을’ 수도 있다. 가끔 우리가 구름이나 나무의 윤곽에서 사람 얼굴을 ‘보는’ 것처럼 말이다. 현대 게슈탈트 심리학의 실험들은 분명 무작위로 지어진 그룹에서 익숙한 패턴을 발견하려는 보편적인 욕구를 보여 주며, 이 욕구는 유명한 로르샤흐 ‘잉크 반점’ 검사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것들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 더 알았다면, 별자리는 그것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선사 사회의 정신적 특징에 대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별자리를 공부하는 것은 지도에 익숙해지는 것과 비슷하며 그것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즉 별자리는 하늘에서 길을 찾는 일을 더 수월하게 만들어 준다. 별자리를 앎으로써, 사람은 ‘백조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고된 혜성을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만약 ‘하늘에’ 있다는 것밖에 몰랐다면 십중팔구 그는 혜성을 놓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별자리가 제공하는 지도는 특이한 지도인데, 왜냐하면 별자리들은 항상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별자리들은 모두 함께 움직이면서 그들의 패턴과 상대적인 위치를 보존하기 때문에, 그 움직임은 그들의 유용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백조자리의 한 별은 언제나 백조자리에 있을 것이며, 백조자리는 언제나 큰곰자리와 동일한 거리를 유지할 것이다.[2] 그러나 백조자리도 큰곰자리도 하늘의 같은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것들은 마치 회전하는 음반에 붙어 있는 지도의 도시들처럼 움직인다.

고정된 상대 위치와 별들의 운동은 그림 5에 표현되어 있다. 이 그림은 어느 날 밤 북쪽 하늘을 세 번 바라보았을 때 (큰곰자리의 일부인) 북두칠성의 위치와 방향을 보여 준다. 북두칠성의 패턴은 볼 때마다 동일하다. 북두칠성이 북극성과 맺는 관계도 변함이 없어서, 북극성은 언제나 북두칠성 그릇의 열린 쪽에서 그릇의 마지막 두 별을 잇는 직선을 따라 29° 만큼 떨어져 있다. 다른 다이어그램들은 하늘에 있는 다른 별들 사이에서 이와 유사한 영구적인 기하학적 관계를 보여 줄 수 있다.

 
그림 5. 10월 말 밤에 4시간 간격으로 잇따라 관찰되는 북두칠성의 위치.

그림 5는 별의 운동에 대한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을 수놓은 별자리들과 별들이 하늘을 함께 도는 동안, 북극성은 정말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로 있다. 세심하게 관찰하면 사실 밤새 가만히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래도 북극성으로부터 1° 이내에 있는 하늘의 또 다른 점이 정확히 그림 5에서 북극성에 부여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은 북천극[또는 하늘의 북극]으로 알려져 있다. 북반구의 특정 위치에 있는 관찰자는 항상, 시간이 흐르고 날짜가 바뀌어도, 지평선의 정북점 위로 동일한 고정된 거리에서 그 점을 찾을 수 있다. 극을 가리키도록 고정시킨 곧은 막대는 별들이 움직여도 계속 극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천극은 별처럼 행동한다. 즉, 극은 오랜 기간에 걸쳐 별들과의 그 기하학적 관계를 유지한다.[3] 극은 지상의 각 관찰자에게 고정된 점이고, 별들은 움직일 때 이 점과의 거리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별은 그 중심이 천극인 원의 호를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5는 북두칠성의 별들이 그리는 이 원운동의 일부를 보여 주고 있다.

극 주변의 별들이 보이는 운동의 궤적으로 만들어지는 동심원들은 일주권(日週圈, diurnal circles)이라 불리며, 별들은 시간당 15°를 갓 넘는 속도로 그 원들을 돈다. 일몰과 일출 사이에 한 바퀴를 완주하는 별은 없지만, 맑은 밤에 북쪽 하늘을 관찰하는 사람은 극 근처의 별들을 거의 반원에 가깝게 추적할 수 있으며, 다음 날 밤에는 그 별들이 같은 속도로 같은 원을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는 그사이의 낮 시간에 그 별들이 변함없이 계속 돈다면 도달했을 바로 그 위치에서 그 별들을 발견할 것이다. 고대부터, 이러한 규칙성을 알아보게 된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별들이 밤에 보이는 방식대로 낮에도 존재하고 움직이지만, 낮에는 태양의 강한 빛 때문에 맨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자연스레 가정했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별들은 온전한 원을 따라 서서히 돌고, 각 별은 23시간 56분마다 한 바퀴를 완주한다. 10월 23일 저녁 9시 정각에 극 바로 아래에 있던 별은 10월 24일 저녁 8시 56분과 10월 25일 8시 52분에 같은 위치로 돌아올 것이다. 연말이 되면 그 별은 일몰 전에 극 아래 위치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에, 그 위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에서 천극은 정북 방향의 지평선에서 대략 45° 위에 있다(극의 고도는 관찰자의 위도와 정확히 같으며, 이는 위도를 측정하는 한 방법이 된다). 따라서 극에서 45°(또는 관찰자의 위치에서 극의 고도) 안에 있는 별들은 지평선 아래로 절대 떨어지지 않으며 맑은 밤이면 어떤 시간에도 볼 수 있다. 이 별들은 주극성으로, 고대 이집트 우주론자들의 말로는 “소멸을 모르는 별”이다. 또한 그 별들은 그 운동이 원형으로 쉽게 인식되는 유일한 별들이기도 하다.

 
그림 6. 북쪽 하늘에서 2시간 동안 평범한 별들이 그리는 짧은 원호들. 지평선에 접한 굵은 원은 주극성과 뜨고 지는 별을 구분해 준다. 이와 같은 별의 자취는 천극 방향으로 카메라를 고정하고 하늘이 도는 동안 셔터를 열어 두면 실제로 얻을 수 있다. 노출을 1시간 더할 때마다 모든 자취의 길이가 15°씩 늘어난다. 그러나 카메라의 넓은 앵글은 속기 쉬운 왜곡을 낳는다. 만약 극이 지평선 위 45° 위치(북반구 중위도 지역에서의 전형적인 고도)에 있다면, 굵은 원의 꼭대기에 보이는 별은 실제로는 관찰자의 머리 바로 위에 있다. 카메라 앵글에 의한 이러한 왜곡을 염두에 두면, 이 다이어그램의 별 자취를 그림 7a와 7b의 더 도식적인 별 자취와 연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극에서 더 멀리 떨어진 별들도 일주권을 따라 이동하지만, 그 일주권의 일부는 지평선 아래 감춰져 있다(그림 6). 따라서 그러한 별들은 가끔 뜨거나 지는 것을, 즉 지평선 위로 나타나거나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별들은 밤 내내 항상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별들은 극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일주권의 점점 더 적은 부분이 지평선 위에 남게 되며, 그 경로의 볼 수 있는 부분을 원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정동쪽에서 뜨는 별은 그 일주권의 절반만 보인다. 그 별은 태양이 춘분이나 추분 즈음에 취하는 경로와 거의 같은 경로를 움직이는데, 남쪽·위쪽으로 기운 사선을 따라 떠서(그림 7a), 동쪽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오른쪽 어깨 위의 점에서 최대 고도에 도달한 후, 결국 아래쪽·북쪽으로 기운 선을 따라 정서쪽에서 진다. 극에서 더욱더 멀리 떨어진 별들은 남쪽 지평선 위에서 잠깐 동안만 보인다. 그 별들은 정남 지점 근처에서 뜨고 난 후 매우 금방 지며, 지평선 위로 아주 높이 올라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그림 7b). 그 별들은 연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기간 동안 낮에 뜨고 지기 때문에, 아예 그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 많다.

 
그림 7. (a) 동쪽 지평선과 (b) 남쪽 지평선 위의 별 자취. 그림 6처럼 이 다이어그램은 지평선의 90° 구역에 걸친 평범한 별들이 2시간 동안 나타내는 운동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다이어그램에서 ‘카메라’는 지평선을 향해 있기 때문에, 지평선 위로 40°만 보이고 있다.

밤하늘의 이러한 정성적인 특징들은 고대의 천문 관측이 행해진 전 지역에서 공통적이지만, 이러한 묘사는 중대한 정량적인 차이들에 대해서는 얼버무린다. 관찰자가 남쪽으로 이동할수록, 북쪽 지평선 위의 극 고도는 남쪽으로 69마일(약 111km)씩 이동할 때마다 대략 1°씩 낮아진다. 별들은 여전히 극을 중심으로 한 일주권을 따라 돌지만, 극이 지평선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북쪽에서 주극성이었던 몇몇 별들은 더 남쪽의 관찰자에게는 뜨고 지는 것이 보이게 된다. 정동과 정서에서 뜨고 지는 별들은 여전히 지평선의 같은 지점에서 나타나고 사라지지만, 남쪽으로 갈수록 그 별들은 지평선에 더욱더 수직에 가까운 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며, 최대 고도에 도달한 별은 더욱더 관찰자의 머리 바로 위에 있게 된다. 남쪽 하늘의 모습은 더욱 현저하게 변한다. 극이 북쪽 지평선을 향해 점점 낮아짐에 따라, 남쪽 하늘의 별들은 극과 동일한 각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남쪽 지평선 위로 더욱 높이 뜨게 된다. 북쪽 지역에서 볼 때는 지평선 위에서 살짝 뜨던 별들이 더 남쪽에서 관찰할 때는 더 높이 떠서 더 오래 보일 것이다. 남쪽의 관찰자는 여전히 지평선 정남 지점 위에서 살짝 뜨는 별들을 보겠지만, 그 별들은 북쪽의 별 관찰자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별일 것이다. 관찰자가 남쪽으로 이동할수록, 그는 점점 더 적은 수의 주극성−밤 내내 보이는 별−을 보게 된다. 그러나 남쪽에서 그는 북쪽의 관찰자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던 별들을 언젠가 관찰하게 될 것이다.

움직이는 별로서의 태양

 
그림 8. 대략 북위 45° 지역의 관찰자가 적어도 한 번은 볼 수 있는 모든 주요 별들을 담고 있는 북극 중심의 별자리 지도. 지도의 기하학적 중심에 있는 십자가는 천극의 위치를 나타낸다.만약 이 지도의 앞면을 땅 쪽으로 두고 그림의 아래 부분을 북쪽으로 둔 채 지도를 머리 위에 수평으로 들고 있으면, 지도는 10월 23일 저녁 9시에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관찰자에게 보이는 별들의 방향을 보여 줄 것이다. 지평선창의 경계를 이루는 실선 안에 있는 별들은 관찰자가 볼 수 있는 별들이며, 그 선 바깥에 있는 별들은 그날 그 시각에 지평선 아래에 있다. 지도상의 점 N 근처에서 지평선창 안에 있는 별들은 실제 지평선의 정북 지점 살짝 위에 보일 것이고(북두칠성을 보라), 동점 E 근처의 별들은 동쪽에서 막 뜨고 있는 중일 것이다. 10월 23일 몇 시간 뒤에 보이는 별들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는, 지평선창은 고정해 놓고 그 뒤의 원형 지도를 오후 9시부터 한 시간마다 15°씩 반시계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극을 움직이진 않지만, 별들을 동쪽 지평선 위로 올려 주고 서쪽 지평선 아래로 내려 준다. 며칠 뒤 오후 9시에 보이는 별들의 위치를 찾으려면, 고정된 지평선창 뒤의 지도를 10월 23일부터 매일 1°씩 시계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이러한 두 절차를 결합하면 1년 중 어느 날 밤 어느 시각이든 그때 보이는 별들의 위치를 찾는 것이 가능해진다.다이어그램에서 극을 둘러싼 점선은 황도, 즉 태양이 별들 사이를 지나다니는 겉보기 경로다(xx쪽을 보라). 지도의 1사분면에서 황도의 일부를 둘러싸고 있는 상자는 그림 9와 15에 확대된 형태로 그려진 하늘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별과 천극은 매시간 그리고 매일 밤 같은 상대적 위치를 유지하기 때문에, 하늘의 지도, 즉 별자리 지도 위에서 영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별자리 지도의 한 형태는 그림 8에 있다. 다른 형태들은 천문학에 대한 지도책이나 일반 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 8의 지도는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관찰자가 언제든 한 번이라도 볼 수 있는 밝은 별들이 모두 담겨 있지만, 지도 위의 모든 별이 한꺼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 별들이 동시에 모두 지평선 위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밤의 매 순간 지도 위의 별들 중 대략 5분의 2는 지평선 아래에 있다.

무슨 별이 보이는지, 그 별이 하늘의 어떤 부분에 나타나는지는 관찰 일시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도에서 네 기본 방위 N, E, S, W에 의해 끊어진 검은 실선은 10월 23일 저녁 9시에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관찰자에게 보이는 부분을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그 선은 그의 지평선을 표현하고 있다. 만약 관찰자가 지도의 아래 부분을 북쪽에 둔 채 머리 위에 들고 있다면, 네 방위는 그의 실제 지평선 위의 방위와 대략 맞추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도는 매년 그날 밤 그 시간 즈음에 북두칠성이 북쪽 지평선 바로 위에 나타나고, 또 예를 들어, 카시오페이아 별자리가 지평선창(horizon-window)의 정중앙 근처의 위치, 즉 하늘의 거의 머리 꼭대기의 위치에 있음을 알려 준다. 별들은 24시간보다 단 4분 모자란 시간마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 때문에, 지도의 같은 방향이 그 별들의 위치를 가리키게 되는 것은 10월 24일 저녁 8시 56분, 10월 25일 8월 52분, 10월 30일 8시 32분 등등이 된다.

이제 관찰자의 시야를 둘러싼 검은 지평선ᐨ실선이 그림상의 현재 위치로 유지되는 동안 그 뒤에 있는 전체 지도 원판이 중앙의 극을 중심으로 반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돈다고 상상해보자. 원판을 15° 돌리면 지평선창에는 10월 23일 저녁 10시나 10월 24일 9시 56분 등에 보이는 별들이 들어오게 된다. 45°를 돌리면 10월 23일 자정에 보이는 별들이 지평선ᐨ실선 안쪽에 들어간다. 어느 밤 어느 시각이든, 그때 보이는 모든 밝은 별들의 위치는 이런 방식으로 찾아낼 수 있다. 그림 8의 지도처럼 고정된 지평선창이 장착된 회전 가능한 별자리 지도는 흔히 ‘별자리판’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별자리 지도는 별처럼 항상적인 상대 위치를 유지하는 천체의 위치를 찾는 것 외에도 다른 용도가 있다. 별자리 지도는 달이나 혜성, 행성처럼 별들 사이에서 그 위치가 천천히 변하는 천체의 운행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인들도 알고 있었듯이, 태양의 운동은 별과 연관될 때 특별히 단순한 형태를 취한다. 별들은 일몰 직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들의 운동을 추적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관찰자는 일몰 시간과 지평선상의 일몰 지점을 기록하고, 일몰 시점과 별의 첫 등장 시점 사이의 시간을 측정한 다음, 별자리 지도를 뒤로 돌려 일몰 때 해당 지평선 지점에 어떤 별이 있었는지 알아냄으로써 별자리 지도상의 태양의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 며칠간 계속해서 저녁마다 별자리 지도에 태양의 위치를 표시해 둔 관찰자는 태양이 매번 거의 같은 위치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림 9는 한 달 동안 계속해서 저녁마다 관찰되는 태양의 위치를 별자리 지도상에서 보여 주고 있다. 태양은 잇따른 두 번의 관찰 동안 지도의 같은 위치에 있진 않지만, 멀리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저녁 태양은 전날 저녁의 위치에서 1°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관찰되는데, 1°는 상대적으로 작은 거리로 태양 각지름의 2배 정도 된다.

이러한 관찰은 태양을 날마다 별들 사이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천체로 간주하면 태양의 일일 운동과 지평선을 따라 남북으로 느리게 왔다 갔다 하는 운동 모두를 간편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만약 어느 날 태양의 위치가 별들 사이에서 정해진다면, 그날 태양의 운동은 지도상에서 해당 위치에 있는 별의 일주 운동과 거의 똑같을 것이다. 둘은 모두 회전하는 지도의 점처럼 움직일 것이고, 위쪽·남쪽으로 기울어진 선을 따라 동쪽에서 떠서 나중에 서쪽으로 질 것이다. 한 달 후 태양은 다시 어떤 별의 일주 운동과 같을 것이지만, 이제 태양은 한 달 전에 그 운동을 따라했던 별의 위치에서 30° 떨어진 지점의 별과 거의 똑같이 운동할 것이다. 그사이 한 달 동안 태양은 지도상에서 30° 떨어진 이 두 지점 사이를 느리지만 꾸준히 이동하게 된다. 각각의 하루 동안 그 운동은 거의 하나의 별과 같은 운동을 해서 하늘의 극을 중심으로 원호를 그리지만, 연이틀에 걸쳐 완전히 동일한 별처럼 행동하진 않는다.

 
그림 9. 양자리와 황소자리를 관통하고 있는 태양의 운동. 각 원들은 4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매일 저녁 해가 질 때 별들 사이에서 보이는 태양의 위치를 나타낸다.

만약 태양의 위치를 날마다 표시해서 저녁마다 계속되는 위치를 표시한 그 점들을 연결하면, 1년 뒤에 [처음의 점과] 다시 만나는 부드러운 곡선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황도라 불리는 곡선으로, 그림 8의 별자리 지도상에서는 점선으로 그려져 있다. 태양은 항상 이 선상의 어디선가 발견된다. 일반적인 별들의 일주 운동은 황도를 하늘 사이로 빠르게 실어 나르기 때문에, 태양도 그와 함께 다니며, 그 황도선상 어딘가 있는 점에 위치한 별처럼 뜨고 진다. 그러나 동시에 태양은 황도를 따라 천천히 돌고 있기 때문에, 매일, 매시, 매분 조금씩 다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즉, 태양의 복잡한 나선형 운동은 훨씬 단순한 두 가지 운동의 결과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이다. 태양의 전체 겉보기 운동은 (전체 지도의 반시계 방향 운동에 따른 서쪽 방향의 원형) 일주 운동과 그와 동시에 황도를 따라 (지도상의 극을 중심으로 시계 방향으로) 동쪽으로 느리게 움직이는 운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분석된 태양의 운동은 회전목마 위에 있는 요금 징수원의 운동과 매우 비슷해진다. 징수원은 바닥판의 회전에 의해 빠르게 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요금을 받으며 말에서 말로 천천히 걷기 때문에, 그의 운동은 탑승객의 운동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만약 그가 바닥판의 회전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면, 지면을 기준으로 한 그의 운동은 바닥판의 운동보다 약간 느릴 것이고, 탑승객은 그보다 다소 빠르게 한 바퀴를 돌 것이다. 만약 요금 징수를 위해 그가 바닥판의 중심에서 가까워지고 멀어진다면, 지면에 대한 그의 전체 운동은 전혀 원형이 아니라 한 바퀴를 돌아도 [시작점과] 다시 만나지 못하는 복잡한 곡선이 될 것이다. 요금 징수원이 정지해 있는 지면에 대해 움직이는 경로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그의 전체 운동은 두 가지 구성 요소−바닥판과 함께 꾸준히 빠르게 회전하는 운동과 바닥판을 기준으로 한 느리고 덜 규칙적인 운동−로 분해하면 훨씬 더 간단해진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태양의 겉보기 운동을 분석하면서 비슷한 구분을 사용했다. 매일 태양은 별들과 함께 빠르게 서쪽으로 움직이고(소위 일주 운동), 동시에 태양은 별들 사이에서 또는 별들을 기준으로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느리게 움직인다(연주 운동).

태양의 전체 운동을 두 가지 구성 요소로 나누게 되면, 그 움직임은 황도상의 이웃한 점들마다 태양이 도착하는 날짜와 시간을 이름표로 붙여두는 것만으로 간단하고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 일련의 이름표가 붙은 점들은 태양 운동의 연간 요소를 명시해 주고, 남은 일간 요소는 지도 전체의 일일 회전에 의해 명시된다. 예를 들어, 그림 8의 황도는 중심에서 상당히 벗어난 다소 일그러진 원으로 보이기 때문에, 황도상의 점들 중에는 중앙의 극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한 점 SS가 있게 된다. SS는 황도상의 점들 중에서 북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뜨고 지며, 지도가 회전하는 동안 가장 오랫동안 지평선창 안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SS는 하지점이며, 태양의 중심은 6월 22일쯤에 그 점을 통과하게 된다. 비슷하게 그림 8의 점 AE와 VE는 분점으로, 정동과 정서에서 뜨고 지는 한편 지도 1회전의 정확히 절반 동안 지평선창 안에 머물러 있는 황도상의 두 점이다. 태양의 중심은 각각 9월 23일과 3월 21일에 그 점들을 통과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태양은 극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황도상의 점 WS를 12월 22일경에 통과하게 된다. 분점과 지점은 처음에는 1년 중의 특정한 날짜들로 제시되었지만, 이제 더욱 정확하고 천문학적으로 더욱 유용한 정의를 얻게 되었다. 그 점들은 별자리 지도 또는 하늘의 점들이다. 해당 날짜들(또는 순간, 왜냐하면 태양의 중심은 각 점을 순간적으로 통과하기 때문에)과 더불어, 이렇게 이름표가 붙은 위치들은 태양의 연주 운동 방향과 근사적인 속도를 명시해 준다. 이 이름들을 비롯해 그와 비슷한 다른 이름들이 주어지면, 별자리 지도를 돌려 일주 운동을 시뮬레이션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연중 모든 날들의 일출 일몰 시간과 위치 및 태양의 최대 고도를 구할 수 있다.

표준적인 이름표를 얻은 황도상의 점은 지점과 분점만이 아니다. 별자리 지도 위에 그려진 황도는 황도십이궁으로 알려진 특히 유명한 일련의 별자리들을 통과한다. 아주 먼 옛날부터 내려온 관습에 따라 이 별자리들은 황도를 동일한 길이의 12조각으로 나눈다. 태양이 특정한 별자리 ‘안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황도상의 그 위치를 근사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되며, 이는 다시 말해 한 해의 계절을 명시해 준다. 12궁을 통과하는 태양의 연간 여정은 계절의 순환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관찰은 3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점성술이라는 과학 혹은 사이비과학의 한 근원이다.

과학적 우주론의 탄생 ― 2구체 우주

앞의 세 절에서 묘사한 관찰들은 고대의 천문학자들이 우주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사용한 자료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 관찰들은 그 자체로는 직접적인 구조적 정보를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천체들의 구성이나 그들의 거리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으며, 지구의 크기나 위치, 형태에 대해서도 아무런 명시적인 정보를 주지 않는다. 관찰을 보고하는 방식 때문에 그 사실이 감춰져 있었지만, 그 관찰들은 천체들이 정말 움직인다는 것을 암시조차 하지 않는다. 관찰자는 천체와 지평선 사이의 각거리가 지속적으로 변화한다는 것만을 확신할 수 있다. 그 변화는 천체의 운동만큼이나 지평선의 운동에 의해서도 쉽게 일어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일몰, 일출, 별의 일주 운동과 같은 용어들은 관찰 기록에 전혀 들어 있지 않다. 그것들은 자료 해석의 일부이며, 이러한 해석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관찰을 논하는 데서 그 어휘를 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관찰 그 자체의 내용을 분명 넘어선다. 두 천문학자가 관찰 결과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동의하면서도 별의 운동의 실재성과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불일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위에서 논의한 것과 같은 관찰들은 퍼즐에 대한 단서일 뿐이며, 천문학자들이 발명한 이론들은 그에 대한 잠정적인 해결책이 된다. 그 단서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객관적이다. 즉 그것들은 자연에 의해 주어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관찰의 수치 결과는 관찰자의 상상이나 개성에 거의 의존하지 않는다(그 자료가 정리되는 방식은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관찰에 의해 도출되는 이론이나 개념 체계는 과학자의 상상력에 정말로 의존한다. 그것들은 속속들이 주관적이다. 따라서 앞의 절들에서 논의한 것과 같은 관찰들은 우주의 구조에 대해 고대 이집트인들과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 수집되어 체계적인 형태로 정리될 수 있었다. 그 관찰 자체는 직접적인 우주론적 귀결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 관찰들은 우주론을 구성하는 데서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으며, 수천 년 동안 그랬다. 상세한 천문학적 관찰이 우주론적 사고에 주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전통은 기본적으로 서구 문명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 문명을 물려받은 것은 가장 중요하고도 특징적인 색다름 중 하나일 것이다.

별과 행성에 대한 관찰을 설명하려는 관심은 그리스의 우주론적 사고에 대한 가장 오래된 단편적인 기록에도 등장한다. 기원전 6세기 초,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of Miletus)는 이렇게 가르쳤다.

별은 공기의 압축된 부분으로, 불이 채워진 [회전하는] 바퀴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몇몇 지점의 작은 구멍에서 불길을 내뿜는다. …

태양은 지구의 28배 크기의 원이다. 그것은 그 테두리 안쪽의 빈 속에 불이 가득 차 있는 전차ᐨ바퀴와 같으며, 일정한 지점에서 풀무의 노즐 같은 구멍을 통해 불이 빛나게 해 준다. …
일식은 불이 분출되어 나오는 구멍이 닫히게 되면서 발생한다.

달은 지구보다 19배 큰 원이다. 태양의 원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그 테두리 안쪽 빈 속에 불이 가득 차 있는 전차ᐨ바퀴와 같으며, 또한 태양의 원과 마찬가지로 비스듬하게 놓여 있다. 풀무의 노즐 같은 분출구 하나를 가지고 있으며, 월식은 바퀴의 회전에 의존한다.[4]

천문학적으로 이러한 이해 방식은 이집트인들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해 있다. 신은 지상의 익숙한 메커니즘들에 밀려 사라졌다. 별과 행성의 크기와 위치도 논의되고 있다. 제공된 대답들은 매우 초보적으로 보이지만, 그 문제들은 성숙하고 사려 깊은 해결책이 나올 수 있기 전에 제기되어 있어야 했다. 인용된 구절에서 별과 태양의 일주권은 천체들을 회전하는 바퀴 테두리 위의 구멍으로 취급함으로써 꽤 성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식과 태양의 연간 왕복 운동에 대한 메커니즘(후자는 태양의 원이 비스듬한 자세로 놓여있다는 점을 통해 설명되고 있다)은 덜 성공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되고 있다. 천문학이 우주론적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그리스 철학자와 천문학자들이 아낙시만드로스에게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동시대인들과 계승자들 중 일부는 다른 이론을 개진했지만, 그들은 같은 문제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해답에 도달하기 위해 같은 기법을 사용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문제들과 기법들이다. 경쟁하는 이론들을 추적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그것들을 완전히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초창기 그리스인들의 우주 관념의 진화에 대해 추측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얻기엔 역사적 기록이 너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는 되어야 대략 믿을 만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무렵이 되면 오랜 진화 과정의 결과로 우주론의 핵심적인 부분에 대해 상당한 정도의 합의가 만들어지게 된다. 기원전 4세기부터 쭉, 대부분의 그리스 천문학자와 철학자들에게 지구는 별을 운반하는 매우 커다란 회전 구체의 기하학적 중심에 정지한 채 매달려 있는 작은 구체였다. 바깥 구체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도, 물질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는 고대의 우주에 대한 유일한 이론은 아니었지만, 이는 가장 많은 지지자를 획득한 이론이었으며, 중세와 근대 세계가 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이 이론의 발전된 버전이었다.

이는 내가 이제부터 ‘2구체 우주(two-sphere universe)’라고 부르게 될 것으로, 안쪽 구체는 인간의 자리이고 바깥쪽 구체는 별의 자리를 구성한다. 물론 그 이름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다. 다음 장에서 보겠지만, 지구(terrestrial sphere)와 천구(celestial sphere)가 있다고 믿었던 모든 철학자와 천문학자는 둘 사이의 공간에 태양과 달과 행성들을 운반하는 몇몇 우주적 장치도 추가적으로 가정했다. 따라서 2구체 우주는 사실 우주론이 전혀 아니며, 우주론을 위한 구조적 얼개일 뿐이다. 더구나 그 구조적 얼개는 기원전 4세기부터 코페르니쿠스 시대까지 1900년 동안 수많은 다양하고 논쟁적인 천문학적, 우주론적 체계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즉, 2구체 우주는 다양했다. 그러나 그것이 처음 확립된 이후, 2구체 구조 자체는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거의 2천 년 동안 그것은 모든 천문학자와 대부분의 철학자들의 상상을 인도했다. 이는 우리가 서구의 주된 천문학 전통에 대한 논의를 2구체 우주−비록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천문학자들이 개발한 다양한 행성용 장치들이 빠져 있는 얼개이긴 하지만−에 대한 고찰에서 시작하는 이유다. 2구체 구조의 기원은 불명확하지만, 그 설득력의 원천은 불명확하지 않다. 하늘의 구는 이집트인들과 바빌로니아인들의 반구형 하늘에서 몇 발짝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 하늘은 정말로 반구처럼 보인다. 나일 강 같은 강에 기초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이집트인들이 하늘에 부여했던 길쭉한 길이가 사라지고 반구형 껍질만 남는다. 땅 위의 둥근 지붕에 땅 아래의 대칭적인 반구를 연결하면 우주에 딱 맞는 만족스러운 폐쇄적 완결성이 주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구의 회전은 별들 자체에 의해 암시되며, 이 바깥 구의 끊임없는 회전은 23시간 56분마다 한 번씩 우리가 이미 묘사했던 바로 그 일주권을 만들어 낼 것이다.

게다가 구 형태의 우주를 옹호하는, 본질적으로 미학적인 논증도 있다. 별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것들은 모두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그 별들이 단순히 우주의 바깥 표면에 있는 표시들일 뿐이고 그와 함께 움직인다고 가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별들은 완벽한 규칙성을 가지고 영원히 움직이기 때문에, 별들이 움직이는 표면은 그 자체로 완벽히 규칙적이어야 하며 영원히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어떤 형태가 구 형태보다 이 조건을 더 잘 만족시키겠는가? 구는 완벽히 대칭적인 표면을 가진 유일한 형태이며, 운동의 매 순간 정확히 동일한 공간을 차지하면서 영원히 돌 수 있는 몇 안 되는 형태 중 하나다. 어떤 다른 형태에서 영원하고 자급자족적인 우주가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이는 기본적으로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세기)이 『티마이오스(Timaeus)』에서 사용한 논증으로, 이 창조 신화에서 우주는 하나의 유기체, 즉 하나의 동물로 등장한다.

[창조자의] 의도는, 첫째, 그 동물이 가능한 한 완벽한 전체이자 완벽한 부분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그것은 그러한 다른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 잔여 부분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또한 그것은 늙지 않아야 하고[영원함], 병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타락하지 않음]. … 그래서 그는 세계를 구의 형태로, 선반을 통해 둥글게, 그 극단이 중심으로부터 모든 방향에서 같은 거리에 있도록, 즉 모든 도형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그 자체로 비슷한 도형으로 만들었다. 왜냐하면 그는 비슷한 것이 다른 것보다 무한히 더 공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그는 표면을 동글동글 매끄럽게 만듦으로써 마무리했는데, 이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우선 그 생물은 그가 볼 수 있는 남은 바깥이 하나도 없기에 눈이 필요하지 않고, 들을 것이 없기에 귀도 필요하지 않고, 숨을 쉴 주변 공기도 없으며, 그에게 들어갔다 나올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음식을 받거나 이미 소화시킨 것을 처리하는 데 아무런 기관도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즉 그 외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설계상 그는 자신의 쓰레기가 자기 자신의 음식을 제공하도록 만들어졌으며, 그가 행하거나 겪는 모든 일이 그 안에서 또 그에 의해 일어나도록 만들어졌다. 왜냐하면 창조자는 자급자족하는 존재가 아무것도 없는 존재보다 훨씬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다른 것을 잡아먹거나 다른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창조자는 그에게 손을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발도 필요 없었으며 걷기 위한 장비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구형에 알맞은 운동이 그에게 부여되었으며, … 그래서 그는 같은 방식으로 같은 지점 위를 자신의 경계 안에서 원형으로 도는 운동을 갖게 되었다.[5]

 
그림 10. 지구가 구형임을 옹호하는 고대의(그리고 현대의) 논증. 산기슭의 관찰자는 볼록한 지구 위로 배의 돛대 끝만 겨우 볼 수 있다. 산꼭대기에서는 전체 돛대와 선체의 일부가 보인다.

땅이 구형임을 옹호하는 고대의 논증들 중 일부는 이와 비슷하다. 땅, 즉 인간의 거주지는 우주가 만들어진 것과 같은 완벽한 형태를 가져야 가장 적절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많은 수의 논증은 더 구체적이고 친숙하다. 해안에서 멀어지는 배의 선체는 돛대 꼭대기보다 먼저 사라진다. 높은 관찰 지점에서는 낮은 지점에서보다 더 많은 배와 더 많은 바다가 보인다(그림 10). 월식 동안 달 위에 드리운 지구의 그림자는 항상 둥근 테두리를 가진다(월식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기원전 4세기 전에도 통용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상세 부록 3절에서 논의할 것이다). 이러한 논증들은 지금도 회피하거나 반박하기 어려우며, 고대에는 그 설득력이 땅과 하늘 사이의 유비에 의해 확대되었다. 즉, 천상계가 땅의 형태를 닮았다면 특히 그럴듯해 보인 것이다. 다른 논증들은 두 구의 유사성과 대칭적 배치에서 파생되었다. 예를 들어, 지구의 중심 지점은 구형 우주 안에서 쭉 정지해 있었다. 구의 중심에서 물체는 어느 방향으로 떨어질 수 있을까? 중심에서는 ‘아래’가 없으며, 모든 방향은 똑같이 ‘위’다. 따라서 지구는 우주가 그 주위를 도는 동안 영원히 안정적으로 중심에 매달려 있어야 한다.

대칭성에 의존하는 이러한 논증들은 오늘날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의심스러운 결론을 옹호하는 논증들은 보통 이상해 보이기 마련이다), 고대와 중세, 근대 초의 사고에서는 매우 중요했다. 플라톤의 논증과 같은 대칭성에 관한 논의는 2구체 우주론의 당위성을 보여 주며, 왜 우주가 구형으로 만들어졌는지 설명해 준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3장과 4장에서 보겠지만, 두 구의 대칭성이 천문학적, 물리학적, 신학적 사고 사이에 중요한 연결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칭성은 각각의 사고에 본질적이었기 때문이다. 5장에서는 코페르니쿠스가 움직이는 행성 지구를 포함하도록 만든 우주에서 고대 우주론의 필수적인 대칭성을 보존하기 위해 헛되이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2구체 우주의 천문학적 기능에 가장 관심이 있으며, 여기서 그 점은 아주 분명하다. 천문학에서 2구체 우주론은 너무나 잘 작동한다. 즉, 그것은 이 장의 앞부분에서 묘사한 하늘에 대한 관찰들을 정확히 설명해 준다.

 
그림 11. 2구체 우주의 천문학적 기능들. 바깥쪽 원은 축 NS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꾸준히 회전하는 항성 천구의 단면이다. O에 있는 관찰자는 이 천구에서 음영 처리된 지평면 SWNE 위쪽에 있는 모든 부분을 볼 수 있다. 만약 이 다이어그램이 정확한 비율로 그려졌다면, 지구는 훨씬 작아졌을 것이고 그 지평면은 관찰 지점에서 지구와 접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례 척도에 따른 그림은 지구를 극히 작은 점으로 축소시킬 것이므로, 여기서 지평면은 항성 천구의 중심을 지나도록 그려졌고, 관찰자에 따른 그 방향은 관찰자와 지구 중심을 잇는 직선에 수직이 되도록 유지했다.다이어그램에서 수평으로 그려진 원들은 천구가 매일 회전하는 동안 천구상의 선택된 점들에 의해 그려지는 경로들이다. 따라서 그 원들은 선택된 별들의 일주권들로, 관찰자에게 보이는 부분은 실선으로, 지평선 아래에 있는 부분은 점선으로 그려졌다. 중간의 원은 천구의 적도상에 있는 별에 의해 그려진다. 그 별은 E, 즉 관찰자의 정동에서 떠서, 남쪽으로 비스듬한 선을 따라 위로 이동한다. 바깥쪽 가장 아래의 원은 지평선과 단 하나의 점에서 만나는 별들에 의해 그려진다. 위쪽 원 CC는 최남단 주극성의 일주권이고, 아래쪽 원 II는 O에 있는 관찰자에게 내내 보이지 않는 별들 중 최북단에 있는 별에 의해 그려진다.

그림 11은 커다란 항성 천구[6]의 중심에 있는 구형의 땅을 보여 주고 있는데, 땅의 크기는 매우 과장되어 있다. 화살표 O가 가리키는 위치에 있는 지구상의 관찰자는 구의 절반만 볼 수 있다. 그의 지평은 그가 서 있는 지점에서 지구에 접한(다이어그램에서 음영 표시된) 평면에 의해 제한된다. 만약 지구가 항성 천구에 비해 매우 작다면, 이 접면은 바깥 구를 거의 정확히 동등한 두 부분−하나는 관찰자에게 보이고, 다른 하나는 지면에 가려 그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가를 것이다. 별들처럼 바깥 구 위에 영원히 고정된 모든 물체들은 작은 중심의 지구에서 볼 때 동일한 상대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만약 그 구가 두 대척점 N과 S를 관통하는 축을 중심으로 꾸준히 돈다면, N이나 S에 실제로 위치하지 않는 한 모든 별들은 그와 함께 움직일 것이다. S는 다이어그램의 관찰자에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N은 그의 하늘에서 단 하나의 정지한 점인 그의 천극이 되며, 북반구의 중위도 지역인 O에 있는 관찰자에게 그 점은 실제로 지평선상의 정북 지점 위로 45° 정도에 위치해 있어야 한다.

바깥 구의 점 N 근처의 물체들은 O에 있는 관찰자에게 그 극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천천히 도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그 구가 23시간 56분마다 한 바퀴씩 돈다면, 이 물체들은 별들처럼 같은 시간에 자신의 원을 완성할 것이다. 그 물체들은 이 모형에서 별을 표상한다. 충분히 극에 가까이 있어서, 다이어그램에서 원 CC 안쪽에 있는 모든 별은 주극성이 되는데, 왜냐하면 구의 회전은 그것들을 절대로 지평선 아래로 데리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N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져, 원 CC와 II 사이에 있는 별들은 구가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번씩 지평선과 일정한 각도로 뜨고 지지만, 원 II에 매우 가까이 있는 별들은 남쪽 지평선 위로 거의 올라오지 않아서 잠깐 동안만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원 II 안쪽에 위치한 S 근처의 별들은 O에 있는 관찰자에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별들은 지평선 때문에 항상 숨겨져 있다. 그러나 그 별들은 안쪽 구의 다른 위치에 있는 관찰자에게는 보일 수 있다. S는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관찰 가능한 하늘의 고정점으로, 두 번째 극이 된다. 이를 남천극[또는 천구의 남극]이라고 부르고, N에 있는 관찰 가능한 점을 북천극[또는 천구의 북극]이라고 부르자.

 
그림 12. (a) 지상의 북극과 (b) 적도에 있는 관찰자에게 보이는 2구체 우주 속 별들의 운동.

다이어그램에서 관찰자가 O에서 북쪽으로(즉, 안쪽 구에서 북천극 바로 아래 지점을 향해) 이동하면, 그의 지평면은 그를 따라 움직여 그가 지상의 극에 접근할수록 항성 천구의 축에 대해 더욱더 직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관찰자가 북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천극은 지평선의 북점에서 점점 더 멀어져 최종적으로는 그의 머리 바로 위에 놓이게 된다. 동시에, 항상 지평선의 최북단에 접하도록 그려지는 원 CC는 점점 커져서 더욱더 많은 별들이 주극성이 될 것이다. 관찰자가 북쪽으로 이동하면 원 II 또한 커지므로, 보이지 않는 별들의 수도 그만큼 증가하게 된다. 만약 관찰자가 남쪽으로 이동하면, 그 효과는 정확히 반대가 되어, 극은 지평선의 북점에 점점 더 가까워지며, 원 CC와 II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어, 관찰자가 적도에 도달하면 그 원들은 각각 천구의 북극과 남극만을 겨우 포함하게 된다. 그림 12는 관찰자가 지구의 북극에 있을 때와 적도에 있을 때의 두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 준다. 첫째 경우, 지평면은 가로로 놓이고, 천구의 북극은 관찰자의 머리 바로 위에 있으며, 구의 위쪽 반구에 있는 별들은 지평선과 평행한 원을 그리며 꾸준히 돌고, 아래쪽 반구에 있는 별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둘째 다이어그램에서, 지평면은 수직이고, 천구의 북극과 남극은 지평선상의 북점과 남점에 고정되어 있으며, 모든 별들이 언젠가는 보이지만, 어떤 별도 반원 이상 보이지 않는다.

이 마지막 극단적인 예들이 고대에는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만 제외하면, 우주에 대한 2구체 모형 속 별들의 운동은 앞서 살펴본 실제 별들에 대한 관찰과 정확히 일치한다. 2구체 우주론에 대해 이보다 설득력 있는 논증은 없다.

2구체 우주에서의 태양

2구체 우주에서 태양의 운동을 완전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중심의 지구와 바깥에서 회전하는 천구 사이에 있는 태양의 자리를 설명할 수 있도록 우주론이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이러한 노력은 행성들에 관한 더 커다란 문제의 일부로, 이 문제는 다음 장에서 고찰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묘사한 미완의 우주론만으로도 태양의 겉보기 운동을 기술하는 데 엄청난 단순화가 가능하다. 중심의 지구에서 항성 천구에 의해 주어진 구형 배경을 바라보면, 태양의 운동은 별들을 지구 중심의 회전 구체 위에 위치시키기 전까지는 분명하지 않았던 규칙성을 얻게 된다.

 
그림 13. 천구상의 적도와 황도.

태양의 겉보기 운동에 관한 새로운 단순성은 그림 13에 묘사되어 있는데, 이 그림은 북극이 보이도록 그려진 항성 천구에 극 주위의 화살표로 서쪽으로 도는 일주 회전 방향이 표시된 간략한 스케치다. 천구의 북극과 남극의 중간에는 천구의 적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 대원 위에는 정확히 정동과 정서에서 뜨고 지는 모든 별(과 천구 위의 모든 점)이 놓여 있다. 대원은 구면 위에 그려질 수 있는 모든 곡선 중에서 가장 단순한 곡선−구심을 관통하는 평면과 구면의 교차선−으로, 태양의 운동에 대한 새로운 단순성은 천구상의 황도 역시 천구를 두 개의 똑같은 반구로 가르는 대원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그림 13에서 황도는 비스듬한 원으로, 천구의 적도와 두 개의 정반대 지점에서 23.5°의 각으로 교차하고 있다. 이 황도는 지상의 관찰자가 항성 천구를 배경으로 바라볼 때 태양의 중심이 보이는 모든 점을 포함하고 있다. 매순간 태양의 중심은 이 대원의 한 점에서 나타나 전체 구의 일주 서향 운동에 동참하지만, 동시에 태양은 동쪽으로 천천히 슬며시 이동하며(다이어그램의 화살표) 1년에 한 바퀴씩 황도를 돈다.

매 24시간 동안 태양은 황도상의 한 점 부근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태양은 별 하나의 일주권과 매우 흡사한 일주권을 따라 매일 돌게 된다. 그러나 천구 자체가 빠르게 서쪽으로 도는 동안 태양은 천구에 대해 동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따라서 태양은 별들에 비해 천천히 자신의 일주권을 완성하면서, 매일 별들과의 경주에서 조금씩 뒤처져, 해마다 별들에게 완전히 ‘한 바퀴를 따라잡히게’ 된다. 더 정확하게는, 태양은 황도를 완주하기 위해 360°를 돌아야 하고, 태양이 이 한 바퀴를 완성하는 데에는 365일보다 약간 더 걸리기 때문에, 태양은 황도를 따라 하루에 1°가 약간 안 되는 거리만큼 동쪽으로 이동하게 되며, 이는 관찰을 통해 이미 도출된 값이다(#태양의 겉보기 운동). 이는 태양이 매일 별들에 비해 조금씩 뒤처지는 거리다. 더구나, 하루의 길이는 태양의 일주 운동에 의해 정의되고, 별은 (시간당 15° 또는 4분에 1°씩 돌며) 매일 태양보다 1°씩 앞서 나가기 때문에, 오늘밤 자정에 머리 위에 있던 별은 내일 밤 자정 딱 4분 전에 자신의 일주 운동을 완성하고 하늘의 같은 자리에 돌아올 것이다. 하늘의 운행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처음엔 갖가지 다양한 관찰들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었지만(#태양의 겉보기 운동), 이제는 그 역시 2구체 우주의 정합적인 패턴을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다.

 
그림 14. 지구상의 다른 위치에서 관찰된 태양의 운동.(a) 북반구 중위도 지역의 관찰자 : 하지에 태양은 정동점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스듬한 선을 따라 뜨고, 그 일주권의 절반 이상이 지평면 위에 있기 때문에 낮이 밤보다 길다. 춘분과 추분에, 태양은 정동에서 뜨고, 그 일주권은 절반만 보인다. 동지에 태양은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뜨고, 낮이 밤보다 짧다. 지평선 위로 태양의 일중 최대 고도는 여름에 가장 높지만, 계절에 상관없이 태양의 정오 그림자는 반드시 정북 방향을 가리킨다.(b) 적도상의 관찰자 : 태양이 황도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 지평면은 태양의 일주권을 동일한 두 반원으로 자른다. 낮과 밤의 길이는 항상 같고, 계절에 따른 기후 변화가 거의 없다. 1년의 절반은 (춘분에서 추분까지) 태양이 정동점의 북쪽에서 뜨고, 태양의 정오 그림자가 정남쪽을 가리킨다. 1년의 나머지 절반은 태양이 동점의 남쪽에서 뜨고, 태양의 정오 그림자가 북쪽을 향한다.(c) 북극의 관찰자 : 황도의 절반은 항상 지평면 아래에 있기 때문에, 1년의 절반은 (추분에서 춘분까지) 태양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다. 춘분에는 태양이 지평선 위로 살짝 보이기 시작해서, 매일 지평선을 돌며 하지까지 나선을 그리며 서서히 떠오른다. 그러고는 태양이 서서히 나선을 그리며 지평선으로 돌아가, 추분이 되면 지평선 아래로 천천히 사라진다. 춘분과 추분 사이에는 태양이 지지 않는다.

비슷한 질서는 항성 천구 위에 가정된 분점들과 지점들의 위치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두 분점은 황도가 천구의 적도와 교차하는 천구상의 두 대척점 위치에 있게 된다. 황도상의 점들 중에서 항상 정동과 정서에서 뜨고 지는 점은 이들뿐이다. 이와 비슷하게, 하지점과 동지점은 두 분점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황도상의 점이 되는데, 왜냐하면 이들은 천구의 적도에서 북쪽과 남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황도상의 점들이기 때문이다. 태양이 하지점(또는 동지점)에 있을 때, 태양은 그 어느 때보다 정동점에서 북쪽(또는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뜨게 된다. 태양은 하지점에서 추분점을 향해 서서히 동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각각의 분점과 지점은 천구상에서 손쉽게 식별된다. 각각의 점은 그림 13의 황도상에 이름이 적혀 있으며, 일단 황도를 그리고 이와 같이 이름을 붙이고 나면, 천구 내부에 적절한 지평면을 그려 넣음으로써,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든 그곳에서 관찰되는 태양의 운동이 한 해 동안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낼 수 있다. 한 해의 다양한 계절에 따른 태양의 운동 중 특히 중요한 세 가지 경우가 그림 14의 다이어그램을 통해 표현된 2구체 개념 체계에서 도출된다. 이 다이어그램에서 그 개념 체계의 완전한 위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개념 체계의 기능들

이 장의 앞부분에서 묘사했던 관찰들과 달리, 2구체 우주는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것은 관찰들로부터 도출된 개념 체계, 즉 이론이지만, 동시에 관찰을 넘어선다. 그것은 아직 모든 천체의 운동을 설명해 주진 못하기 때문에(특히 행성은 여태까지 제쳐놓고 있었다), 2구체 우주론은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과학 이론이 그 이론의 개발자나 사용자들을 위해 수행할 수 있는 몇몇 논리적, 심리적 기능의 설득력 있는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 모든 과학적 개념 체계의 진화는, 천문학 체계든 아니든, 그것이 이 기능들을 수행하는 방식에 의존한다. 2구체 우주가 복잡해지는 다음 두 장에 앞서 그 기능의 일부를 분명히 밝혀 둠으로써, 우리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이 연구에서 나타날 가장 근본적인 몇몇 문제를 미리 조명할 수 있다.

아마도 2구체 우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것이 천문학자의 기억에 도움을 준다는 점일 것이다. 개념 체계의 이러한 특징은 흔히 개념적 경제성으로 불린다. 앞선 절들에서 다루었던 태양에 대한 관찰과 별에 대한 관찰은 둘 다 조심스럽게 선택되고 체계적으로 제시되었음에도, 하나의 묶음으로서는 극도로 복잡했다. 하늘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태양이 뜨는 비스듬한 선의 방향이나 그노몬의 그림자가 보이는 행동과 같은 하나의 관찰은 천극의 위치나 남쪽 하늘 별들의 짧은 출현과 같은 또 다른 관찰과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일 것이다. 각각의 관찰은 하늘에 관한 단순 사실들의 긴 목록에 포함된 별도의 항목일 뿐이고, 기억 속에 그 전체 목록을 동시에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2구체 우주는 그러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 별을 품은 거대한 천구는 고정된 축을 중심으로 23시간 56분에 한 바퀴씩 꾸준히 서쪽으로 돈다. 황도는 천구의 적도에 비해 23.5° 기울어진 천구상의 대원이고, 태양은 365.25일에 한 바퀴씩 황도를 따라 서서히 동쪽으로 움직인다. 태양과 별들은 거대한 천구의 중심에 위치한 아주 작은 고정된 구에서 관찰된다. 이 정도는 단숨에 완전히 기억할 수 있으며, 그것을 기억하는 동안 관찰들의 목록은 잊어도 된다. 이 모형은 목록을 대신해 주는데, 우리가 이미 본 것처럼, 관찰은 이 모형에서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2구체 우주를 머릿속에 단단히 박아 두고서 하늘을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그것 없이는 관련이 없어 보였을 관찰들 사이의 패턴이 개념 체계에 의해 밝혀지고, 관찰들의 목록이 처음으로 정합적인 전체가 되고, 그럼으로써 목록 속 각각의 항목들이 더욱 쉽게 기억될 것이다. 이론이 제공하는 이러한 체계적인 요약이 없었더라면, 과학은 자연에 관한 그렇게 엄청난 양의 상세한 정보를 축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2구체 우주는 엄청난 양의 중요한 관찰 자료들에 대한 압축적인 요약을 제공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활발하게 활용된다. 항해와 측량 모두의 이론과 실제는 그림 11의 명세대로 만들어진 모형으로부터 엄청나게 단순하면서도 정확하게 전개될 수 있으며, 현대 천문학에서 요구되는 모형은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에, 이 과목들을 가르칠 때는 2구체 우주가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보다 우선적으로 흔히 사용된다. 항해나 측량에 관한 대부분의 안내서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다. “지금의 목적을 위해, 우리는 지구가 작고 고정된 구이며, 그 중심은 회전 중인 훨씬 커다란 항성 천구의 중심과 같다고 가정할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 면에서 평가할 경우 2구체 우주는 항상 그래 왔던 대로 여전히 대단히 성공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2구체 우주는 더 이상 전혀 성공적이지 않은데, 이는 코페르니쿠스 혁명 이후의 일이다. 2구체 우주는 여전히 계속 경제적이지만, 그것은 단지 경제성이 순전히 논리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에게 알려져 있었고 현대의 항해사들에 의해서도 사용되는 천문학적 관찰들은 2구체 모형의 논리적 귀결로, 이는 그 모형이 실재를 표상하는 것으로 간주되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 과학자의 태도, 즉 개념 체계의 ‘참’에 대한 믿음은 그 체계가 경제적인 요약을 제공하는 논리적 능력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개념 체계는 논리적 기능뿐 아니라 심리적 기능도 가지는데, 이는 과학자의 믿음이나 의심에 정말로 좌우된다. 예를 들어, 2절에서 논의된 안식에 대한 심리적 욕구가 개념 체계에 의해 충족될 수 있으려면, 그 체계가 이미 알려진 것을 요약해 주는 편리한 장치 이상의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고대와 이후의 중세 시대에 유럽 세계는 정말로 2구체 우주 관념에 이러한 부가적인 믿음을 가졌다. 그들은 과학자든 비과학자든 모두 별들이 정말 인간의 거주지를 대칭적으로 둘러싼 거대한 천구 위의 밝은 점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2구체 우주론은 정말로 수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세계관을 제공했으며, 이 세계관은 창조된 세계 속에서 그들의 자리를 정의해 주는 한편 그들과 신의 관계에 물리적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3장과 4장에서 보겠지만, 신임을 받는 개념 체계로서 우주론의 일부로 기능하는 개념 체계는 과학적 의미를 넘어서는 중요성을 가진다.

믿음은 개념 체계가 과학 안에서 기능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순전히 논리적 기능인 경제성과 순전히 심리적 기능인 우주론적 만족은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있다. 그 스펙트럼의 양극단 사이에도 다른 중요한 기능들이 많은데, 이러한 기능들은 그 이론의 논리적 구조와 그 심리적 호소력, 즉 믿음을 자아내는 능력 모두에 의존한다. 예를 들어, 2구체 우주의 타당성을 믿는 천문학자에게, 그 이론은 현상들에 대한 편리한 요약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것들을 설명해 주고 왜 그것들이 그렇게 있는지 이해하게 해 줄 것이다. ‘설명’과 ‘이해’ 같은 말들은 개념 체계의 논리적 측면과 심리적 측면을 동시에 가리킨다. 논리적인 차원에서, 2구체 우주는 별들의 운동을 설명해 주는데, 그것은 그 운동이 매우 단순한 모형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성이 축소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이러한 논리적 환원은 설명의 한 가지 필수적인 요소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한 요소가 아니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2구체 우주는 그것을 참으로 믿지 않는다면 아무런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현대의 항해사는 일을 할 때 2구체 우주를 사용하지만, 별들의 운동을 바깥 구의 회전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는 별들의 일주 운동이 겉보기 운동일 뿐이라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그는 그것을 지구가 실제로 회전한 결과로 설명해야 한다.

설명에 어떤 개념 체계를 기꺼이 이용하고자 하는 과학자의 의향은 그 체계에 대한 그의 충성도의 지표, 즉 자신의 모형만이 타당한 모형이라는 그의 믿음의 징표가 된다. 그러한 충성 또는 믿음은 언제나 성급하기 마련인데, 왜냐하면 경제성과 우주론적 만족감은 참을−‘참’이 무엇을 의미하든−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사에는 한때 열렬히 신봉되었지만 양립 불가능한 이론들에 의해 대체된 개념 체계의 유물들이 어지럽게 깔려 있다. 한 개념 체계가 최종적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없다. 그러나 성급하든 아니든, 개념 체계에 대한 이러한 충성은 과학의 일반적인 현상으로,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점은 개념 체계에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개념 체계는 포괄적이며, 따라서 그 귀결은 이미 알려진 것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따라서 예컨대 2구체 우주를 신봉하는 천문학자는 자연이 개념 체계에 의해 예측되는 추가적인−그러나 아직 관찰되지 않은−속성을 보여 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그에게 그 이론은 알려진 것을 넘어서, 미지의 것을 예측하고 탐구하는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그것은 과학의 과거뿐 아니라 과학의 미래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2구체 우주는 그 과학자에게 (남반구나 지구상의 극처럼) 그가 가 본 적이 없는 세계의 지역들에서 보이는 태양과 별들의 운행에 대해 말해 준다. 더구나 그것은 그가 체계적으로 관찰한 적이 없는 별들의 운동에 대해서도 알려 준다. 그 별들은 천구에 박혀 있기 때문에, 다른 별들과 마찬가지로 일주권을 돌아야 한다. 이는 애초에 관찰로부터는 도출되지 않지만 개념 체계로부터는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새로운 지식이며, 그러한 새로운 지식은 엄청나게 중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구체 우주론은 지구에 둘레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며, 또한 지구의 둘레가 얼마나 큰지 알아내려면 천문학자가 어떤 관찰을 해야 할지도 제안해 준다(이는 상세 부록 4절에서 다루고 있다). 이러한 관찰들 중 일부(공교롭게도 나쁜 것이어서, 그에 따른 둘레의 수치는 매우 작았다)로 인해 콜럼버스는 세계 일주가 현실적인 일이라 믿게 되었고, 그의 항해 결과들은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그 항해들과 그 뒤를 이은 마젤란의 여행 및 기타 여정들은 과거 순전히 이론으로부터 도출되었던 믿음에 관찰 증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예상치 않았던 많은 관찰들을 과학에 공급해 주었다. 만약 개념 체계가 길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면, 그 항해는 착수되지 않았을 것이며, 그 새로운 관찰들은 과학에 누적되지 못했을 것이다.

콜럼버스의 항해는 개념 체계의 생산성을 보여 주는 한 사례다. 그것은 어떻게 이론이 과학자를 미지의 영역으로 안내할 수 있는지 보여 주는데, 즉 이론은 그에게 어디를 봐야 할지, 무슨 발견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말해 준다. 아마도 이는 과학의 개념 체계가 지닌 단일 기능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기능일 것이다. 그러나 개념 체계의 안내가 위에서 예시된 것처럼 그렇게 직접적이고 명백한 경우는 흔치 않다. 보통 개념 체계는 명시적인 지령을 주기보다는 연구의 준비를 위한 단서를 제공할 뿐이고, 이러한 단서를 얻으려면 보통 개념 체계의 확장이나 수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2구체 우주는 처음에는 주로 별들의 일주 운동과 그 운동이 지구상의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변화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러나 일단 그것이 개발되자, 그 새 이론은 태양의 운동에 대한 관찰에도 질서와 단순성을 주기 위해 손쉽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태양의 운행의 복잡성 아래에 깔려 있던 예기치 않은 규칙성을 끄집어냄으로써, 그 개념 체계는 그보다 훨씬 더 불규칙한 행성들의 운동을 연구할 수 있는 틀도 제공했다. 태양의 전반적인 운동에 질서가 잡히기 전까지, 그 문제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보였다.

이 책의 상당 부분은 특정 개념 체계들의 생산성, 즉 연구의 길잡이이자 지식의 체계화를 위한 틀로서의 그 유효성을 다룰 것이다. 특히 다음 두 장은 고대의 해결책에서 2구체 우주가 담당한 역할을 검토할 것인데, 첫째로는 행성들의 문제를, 그다음으로는 전적으로 천문학 바깥에 있었던 문제들을 다룰 것이다. 그 뒤에 우리는 ‘움직이는 행성으로서의 지구’라는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관념이 과학 연구에 제공한 다소 다른 종류의 가이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의 최고 중의 최고를 보여주는 사례는 이 책 전체에서 서술될 이야기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는 그 자체로 2구체 우주 덕분에 가능했던 일련의 탐구의 성과다. ‘행성으로서의 지구’라는 관념은 그와 양립 불가능한 ‘유일한 중심의 지구’라는 관념이 과학에 제공한 효과적인 가이드의 가장 강력한 사례다. 이것은 코페르니쿠스 혁명에 대한 논의가 종국에는 코페르니쿠스주의에 의해 폐기된 2구체 우주론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다. 2구체 우주는 코페르니쿠스적 우주의 부모로, 어떤 개념 체계도 무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2구체 우주에 대한 고대의 두 경쟁자

우주에 대한 2구체 관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제안된 유일한 우주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우주론은 가장 많은 수의 사람들에게, 특히 천문학자들에게 가장 진지하게 받아들여진 우주론으로, 이후의 서양 문명이 그리스인들로부터 처음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러나 고대에 제안되었다가 거부된 다양한 대안적 우주론들은 2구체 우주보다 현대의 우주론적 믿음과 매우 닮은 점들을 보여 준다. 2구체 우주 체계를 외면상 더 현대적으로 보이는 그 몇몇 대안들과 비교해 보면, 2구체 우주론의 힘을 가장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그것을 타도하려 할 때 부딪힐 어려움도 미리 알 수 있다.

일찍이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원자론자인 레우키포스(Leucippus)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우주를 무한한 수의 극히 작은 분할 불가능한 입자 또는 원자들이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무한한 빈 공간으로 상상했다. 그들의 우주에서 지구는 우연히 원자들이 모여 형성된 본질적으로 유사한 수많은 천체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지구는 특별하지도, 정지해 있지도, 중심에 있지도 않았다. 사실, 무한한 우주에는 중심이 없으며, 공간의 각 부분은 다른 모든 곳과 같기 때문에, 무한한 수의 원자들은−그중 일부는 우리의 지구와 태양을 만들기 위해 뭉쳤고−틀림없이 빈 공간 또는 진공의 다른 구역에 수많은 다른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원자론자들의 생각에, 별들 중에는 다른 태양들과 다른 지구들이 있었다.

기원전 5세기 말, 피타고라스(Pythagoras)의 추종자들은 지구가 움직이도록 설정하고 지구로부터 그 특별한 지위를 일정 정도 빼앗았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별들을 움직이는 거대 천구 위에 놓아두긴 했지만, 이 구의 중심에 그들은 지구에서는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불, 즉 제우스의 제단을 두었다. 그 불은 볼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지구의 거주 지역은 항상 그 불을 등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에게 지구는 태양을 비롯한 수많은 천체들 중 하나일 뿐이었으며, 그 모든 천체들은 중심의 불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움직였다. 1세기 후, 폰토스의 헤라클레이데스(Heraclides of Pontus, 기원전 4세기)는 하늘의 겉보기 운동이 바깥 항성 천구의 회전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지구의 자전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행성 수성과 금성이 중심의 지구를 중심으로 한 독립적인 원형 궤도가 아니라 움직이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원을 돈다고 제안함으로써 2구체 우주의 대칭성을 어지럽히기도 했다(2장을 보라). 더 나중에, 기원전 3세기 중반,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us of Samos)−천문학적 크기에 대한 그의 기발하고 영향력 있는 측정들은 상세 부록에 묘사되어 있다−는 ‘고대의 코페르니쿠스’라는 별명을 받을 만한 제안을 전개했다. 아리스타르코스에게 태양은 엄청나게 커진 항성 천구의 중심에 있었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원을 돌았다.

이러한 대안적 우주론들은, 특히 첫 번째 것과 마지막 것은, 우리의 현대적인 관점과 몹시 닮아 있다. 우리는 오늘날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수많은 행성들 중 하나일 뿐이고, 태양도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일 뿐이며, 그중 일부는 행성을 거느릴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믿고 있다. 이러한 사변적인 제안들의 일부는 고대에 중요한 소수파 전통들을 낳았고, 그들 모두는 코페르니쿠스와 같은 혁신가들에게 지속적인 지적 자극의 원천이 되었지만, 그것들은 오늘날 우리가 그것들을 믿게 된 논증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논증들이 없었던 당시에 고대 세계의 대부분의 철학자들과 거의 모든 천문학자들에게 거부당했다. 중세 시대에 그것들은 조롱당하거나 무시당했다. 거부의 이유들은 훌륭했다. 이러한 대안적 우주론들은 우주의 구조에 대한 감각들로부터 나온 가장 근본적인 제안들을 위반한다. 더구나, 이러한 상식의 위반은 그것들이 우주의 외양을 설명하는 능력이 아무리 증가해도 벌충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것들은 2구체 우주만큼 경제적이거나 생산적이거나 정확할 뿐이며, 그것을 믿기는 엄청나게 힘들다. 그것들을 설명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이 대안적 우주론들은 모두 지구의 운동을 전제로 사용하며, 그 모두(헤라클레이데스의 체계는 빼고)는 지구를 수많은 천체들 중 하나로서 움직이도록 둔다. 그러나 감각에 의해 제안되는 일차적인 구별은 땅과 하늘 사이의 구별이다. 땅은 하늘의 일부가 아니며, 땅은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발판이다. 그리고 그 발판은 거기에서 보이는 천체들과 뚜렷한 특징을 거의 또는 하나도 공유하지 않는다. 천체들은 빛나는 밝은 점들로 보이고, 땅은 흙과 돌로 이루어진 빛나지 않는 거대한 구로 보인다. 하늘에서는 거의 변화가 관찰되지 않는다. 별들은 매일 밤 똑같으며, 고대의 기록이 포괄하는 수 세기에 걸쳐 분명히 그렇게 유지되었다. 그에 비해, 지구는 생성과 변화와 소멸의 보금자리다. 식물과 동물은 매주 바뀌고, 문명은 세기마다 뜨고 지며, 전설들은 홍수와 폭풍에 의한 지구의 더욱 느린 지형 변화를 증언해 준다. 지구를 천체처럼, 즉 타락하기 쉬운 지구상에서는 절대 달성될 수 없는 불변의 규칙성을 자신의 현저한 특징으로 가진 존재처럼 취급하는 것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생각도 처음에는 마찬가지로 터무니없어 보인다. 우리의 감각은 우리가 운동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주며, 이는 지구에 아무런 운동도 없음을 알려 준다. 재교육을 받기 전까지, 상식은 우리에게 지구가 움직일 경우 공기, 구름, 새를 비롯해 지구에 붙어 있지 않은 여타 물체들은 뒤처져야 한다고 말해 준다. 점프를 뛴 사람은 처음 뛰어오른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의 땅에 내려올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공중에 있는 동안 지구는 그 아래에서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회전하는 투석기에서 돌이 날아가듯이, 돌과 나무, 소, 사람들은 회전하는 지구에서 내던져져야 한다. 관찰과 이성은 함께 이를 증명해 주었다.

오늘날 서구 세계에서 이런 방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아이들뿐이며, 오직 아이들만이 지구가 정지해 있다고 믿는다. 어릴 때 아이들은 교사, 부모, 교과서의 권위로부터 지구가 실제로는 행성이며 움직이고 있다고 설득을 당한다. 아이들의 상식은 재교육되며, 일상적인 경험에서 온 논증은 그 힘을 잃게 된다. 그러나 재교육은 필수적이며−재교육이 없을 경우 그 논증은 엄청난 설득력이 있다−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인정하는 것과 같은 교육적 권위는 고대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관찰과 이성에만 의존할 수 있었으며, 둘 중 어떤 것도 지구의 운동에 대한 증거를 내놓지 않았다. 망원경이나 (천문학과는 아무런 명백한 관련이 없었던) 정교한 수학적 논증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움직이는 행성 지구에 대한 어떠한 효과적인 증거도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관찰들은 2구체 우주와 매우 잘 맞아떨어지며(실제적인 항해사와 측량사의 우주를 떠올려 보라), 그 관찰들에 대해 그보다 자연스러운 설명은 없다. 고대인들이 왜 2구체 우주를 믿었는지를 깨닫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이해 방식이 왜 포기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1. 천문학적인 목적에서 별들은 태양보다 더 편리한 시계를 제공한다. 그러나 별에 의해 정해지는 시간 척도에 따르면, 겉보기 태양일의 길이는 계절에 따라 거의 1분 가까이 달라진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겉보기 태양 시간의 이러한 작지만 중요한 불규칙성을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는 이를 무시할 것이다. 이러한 변동의 원인과 그것이 시간 척도의 정의에 미치는 영향은 상세 부록의 1절에서 다룬다.
  2. ‘거리’는 여기서 ‘각거리’, 즉 관찰자의 눈에서 측정하고자 하는 간격을 가진 두 천체를 각각 잇는 두 직선 사이의 각도를 의미한다. 이는 천문학자가 직접, 즉 우주의 구조에 대한 일정한 이론에 기초한 계산을 하지 않은 채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종류의 거리다.
  3.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관찰은 별들 사이에서 극의 위치가 매우 천천히 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180년에 약 1°). 이 느린 운동은 춘분점의 세차 운동이라고 알려진 효과의 일부로, 상세 부록의 2절에서 다루기 전까지 우리는 이를 무시할 것이다. 고대인들은 기원전 2세기 말쯤부터 이를 알게 되었지만, 세차 운동은 그들이 천문학 이론을 만드는 데 부차적인 역할만 수행했으며, 또한 그것은 위에서 묘사한 단기적 관찰들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늘의 북극은 언제나 정북 방향의 지평선 위로 동일한 거리에 있었지만, 그 근처에 항상 같은 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4. Sir Thomas L. Heath, Greek Astronomy, Library of Greek Thought (London: Dent, 1932), pp. 5∼7.
  5. Benjamin Jowett, The Dialogues of Plato, 3rd ed.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892), III, pp. 452∼453.
  6. (옮긴이 주) ‘항성’이란 “항상 같은 자리에 있는 천체”라는 뜻의 단어로, 평범한 별을 의미한다. 1장에서는 별들을 운반하는 하늘의 거대한 구를 지칭하기 위해 ‘천구(celestial sphere)’와 ‘항성 천구(stellar sphere)’를 구분없이 사용한다. 따라서 1장에서 사용된 ‘천구’는 모두 ‘항성 천구’와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2장부터는 항성 천구와 구별되는 행성 천구가 도입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목차

토머스 쿤 지음, 정동욱 옮김, 『코페르니쿠스 혁명 : 행성 천문학과 서구 사상의 발전』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원문 : Thomas S. Kuhn, The Copernican Revolution: Planetary Astronomy in the Development of Western Thought (Harvard University Press,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