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ence: Conjectures and Refu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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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rl Popper, "Science: Conjectures and Refutations", in Conjectures and Refutations (London: Routledge and Kegan Paul, 1963), pp. 33-39.
  • 번역 : 칼 포퍼, 과학 : 추측과 논박

포퍼는 이 글에서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반증가능성을 제시한다. 포퍼에 따르면, 한 이론이 현상에 대한 설명력을 갖추고 있는 것만으로는, 다양한 입증 사례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또는 많은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과학이 될 수 없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이론의 강점이기보다 약점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건에 의해서도 반박될 수 없는 이론은 비과학적이다. 한 이론이 과학적이기 위해서는 위험한 예측, 즉 반증가능한 예측을 하고 그에 대한 시험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한 이론이 반증가능한 위험한 예측을 할 수 있는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그 이론은 과학적이다. 둘째, 그 이론이 시험에 의해 반박되었을 때, 이론가는 이론에 대한 재해석이나 사후적인(ad hoc) 보조가설 수정을 통해 이론을 구제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구제는 이론의 과학적 지위를 손상시킴으로써만 이루어지게 된다. 즉 한 이론의 과학적 지위의 기준은 그것의 반증가능성(falsifiablility) 또는 반박가능성(refutability)이다.

요약

I

경험적 방법에 의해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할 수 있다는 널리 수용된 견해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경험적인 것과 사이비 경험적인 것의 구분이다. 점성술도 관찰에 근거한 엄청난 양의 경험적 증거를 가지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나머지 세 이론, 맑스의 역사 이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을 구분하고 싶어한다. 포퍼가 보기에, 전자는 과학으로 보이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는 참/거짓의 문제도 아니며, 정확성/부정확성의 문제도 아니며, 측정가능성에 관한 문제도 아니다. 그럼에도 후자의 세 이론은 과학보다는 신화와 더 많은 공통점을 가졌다.

맑스, 프로이트, 아들러의 이론은 엄청난 설명력을 자랑한다. 이 이론들은 우리에게 지적 전환을 가져다 주었으며, 숨겨져있던 새로운 진리를 보여주었다. 일단 지적 전환을 겪은 사람들은 어디서나 이론의 입증 사례를 보게 된다. 즉 세계는 이론의 검증으로 가득했다. 맑스주의자들은 신문 곳곳에서 맑스의 역사 해석에 대한 증거를 보게 된다. 뉴스에서뿐만 아니라 프리젠테이션 방식에서까지! 신문이 보도하지 않은 것에서는 신문의 계급적 편향을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분석가들은 정신분석학이 '임상 관찰'에 의해 지속적으로 검증되었다고 강조했다. 아들러는 아들러주의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마저 자신의 열등감 이론으로 분석해내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 때문이든 억압 때문이든 진리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들 이론에서 새로운 경험들은 '이전의 경험'에 비추어 해석되는 동시에 이론에 대한 추가된 입증 사례로 간주된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 정말 이론을 입증하는가? 단지 그 새로운 경험은 그 이론에 비추어 해석된 것 이상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례는 아들러 이론에 의해서든 또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의해서든 똑같이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별로 없다. 예컨대, 아이를 익사시킬 목적으로 물에 빠뜨린 사람과 그 아이를 구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희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전자의 사람은 억압에 시달렸던 반면 후자의 사람은 승화에 도달한 사람이다. 아들러에 따르면, 전자의 사람은 열등감에 시달렸을 것이며, 후자의 사람도 열등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포퍼가 보기에 그들 이론에 의해 해석될 수 없는 인간 행동은 없어 보인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 이론의 명백한 강점으로 보이겠지만, 포퍼가 보기에 그것은 사실 그 이론의 약점이다.

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의 경우는 상황이 매우 다르다.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은 별빛이 태양에 의해 휠 거라는 것을 예측했으며, 에딩턴은 그것을 일식기간에 사진으로 찍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아인슈타인의 예측에는 틀릴 수 있는 위험(risk)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이론은 어떤 가능한 관찰 결과와는 양립불가능하다. 만일 예측된 결과대로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이론은 반박될 수 있었다. 즉 앞서의 이론들은 거의 모든 가능한 관찰 결과와 양립가능한 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그렇지 않았다. 앞서의 이론들은 사실상 시험불가능했던 반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시험가능했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거의 모든 이론에서, 입증(이나 검증)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다.
  2. 입증은 오직 그것이 위험한 예측의 결과일 경우에만 셈해질 수 있다.
  3. 모든 '좋은' 과학 이론은 금지이다. 이론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금지한다. 더 많이 금지할 수록, 더 좋은 이론이다.
  4. 어떤 상상가능한 사건에도 반박될 수 없는 이론은 비과학적이다. 반박불가능성은 이론의 장점이 아니며, 오히려 약점이다.
  5. 이론에 대한 모든 진짜 시험은 그것을 반증(또는 반박)하려는 시도이다. 시험가능성은 반증가능성이다. 그러나 시험가능성의 정도가 있다. 어떤 이론은 다른 이론보다 더 시험가능한데, 다시 말해 반박에 더 노출되어 있다. 더 시험가능한 이론일수록 보다 큰 위험을 감수한다.
  6. 입증 사례는 그 이론에 대한 진짜 시험 결과인 경우를 제외하고 셈해지면 안 된다. 입증이란 이론을 진지하게 반증하려 했으나 실패한 시도로 간주되어야 한다. ('용인(corroborating) 증거'로 부르겠다.)
  7. 어떤 진짜 시험가능한 이론은, 거짓으로 판명나더라도 지지자들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 예컨대 애드 혹(ad hoc) 보조가설을 도입하거나 이론을 애드 혹하게 재해석함으로써 반박을 피할 수 있다. 그러한 시도는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그 이론을 반박으로 구해주긴 하지만 그것의 과학적 지위를 파괴하거나 낮추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이러한 구출 시도를 '규약주의적 트위스트' 또는 '규약주의적 전략'으로 부를 것이다.)

요컨대 한 이론의 과학적 지위에 대한 기준은 그것의 반증가능성 또는 반박가능성 또는 시험가능성이다.

II

점성술의 경우, 그들의 예언은 너무 모호해서 실패하기 힘들다. 즉 반박불가능하다.

맑스의 역사 이론의 경우, 그 이론의 예측은 시험가능했으며, 실제로 반증되었다. 지지자들은 그 반박을 수용하기보다, 이론과 증거를 재해석함으로써 반증을 피했다.(실패의 설명) 물론 이를 통해 반박으로부터 이론을 구하긴 했지만, 이론을 더이상 반박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즉 '규약주의적 트위스트'를 한 것이다. 이 전략으로 인해, 그들은 그들이 선전했던 과학적 지위를 파괴했다.

두 정신분석 이론은 좀 다른 경우이다. 그들은 단순히(simply) 비시험적(non-testable)이다. 상상가능한 인간 행동 중 그들 이론과 양립불가능한 행동은 없다. 그들 이론이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 이론은 시험가능한 어떤 심리과학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석가들이 흔히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간주하는 '임상 관찰'은 전혀 입증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들 이론은 매우 흥미로운 심리학적 제안을 담고 있지만, 시험가능한 형태로 제안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신화는 발전되어 시험가능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역사적으로 거의 모든 과학이론은 신화로부터 유래했다. 따라서 한 이론이 비과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이라고 해서, 그 이론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의미없는(meaningless or nonsensical)'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이론은 (과학적 의미에서) 경험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주장될 수 없을 뿐이다.

여기서 반증가능성 기준을 제안함으로써 풀고자 했던 문제는 의미/무의미의 문제나 진리나 수용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다룬 문제는 경험 과학의 진술 또는 진술의 체계와 그 외의 진술 사이의 선을 긋는 문제였다. 이 문제는 '구획 문제(problem of demarcation)'라 칭해질텐데, 반증가능성이라는 기준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진술 또는 진술의 체계가 과학적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상상가능한 어떤 관찰과 대립될 수 있어야 한다.

평가

포퍼의 반증가능성에는 두 가지의 다른 개념이 섞여 있다. 하나는 논리적 의미의 반증가능성으로, 과학적 진술들(또는 진술들의 체계)이 적어도 하나의 시험가능한(반증가능한) 예측을 논리적으로 함축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반면에 다른 하나는 방법론적 의미의 반증가능성으로, 과학자들이 이론을 반박하려고 시도함으로써 그것을 시험해야 하고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경우 그 이론을 버리고 새로운 이론을 제안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많은 철학자들은 두 번째 의미의 반증가능성이 갖는 규범적이고 방법론적인 측면을 비판해왔다. 예측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나자마자 그 이론을 포기하는 것은 너무 많은 좋은 과학을 배제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철학자들은 첫 번째 의미의 반증가능성이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거부하기도 했다. 예컨대 어떤 무관한 진술 C를 과학 이론 T와 결합시켰을 때, (T&C) 또한 T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시험가능한 예측을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으며, 포퍼의 기준에 따르면 (T&C)와 같은 엉터리 이론도 과학적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무관한 연언의 문제)

관련 항목

구획 문제

어떤 분야나 이론이 사이비과학인지를 확인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있기는 있다. 그들의 작업이 보통 전문저널이 아닌 책으로 출판된다든가, NSF나 NAS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든가 하는 것을 보고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이론이나 연구활동이 사이비과학으로 간주되는 근거에도 관심이 있다. 과학철학자들의 구획 문제라는 이름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바로 그것이다.

어떤 철학자들은 진짜 과학이 가진 필요조건을 제안했는데, 그 필요조건은 일종의 과학/사이비과학의 구획 기준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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