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물리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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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정동욱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무엇을 다루고 있을까? 우선 힘과 운동에 대해 다루는 역학이 떠오른다. 열의 본성과 그것의 역학적 작용을 탐구하는 열역학도 떠오른다. 전기와 자기도 물리학의 한 분야이고, 빛에 대해 다루는 광학 분야도 물리학에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나열해보면 물리학이란 학문이 무척이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학의 각 분야들이 ‘물리학’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인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자연을 탐구하는 분야가 역학을 중심으로 한 수학적 분야와 전기, 자기, 열, 빛 등을 다루는 실험적 분야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각 분야들 사이에는 큰 교류가 없었다. 각 분야는 다루는 대상뿐 아니라 그것을 연구하는 방법과 사람까지 달랐다. 그렇다면 이렇게 분리되어 있던 탐구 분야들은 어떻게 하나의 물리학으로 통합될 수 있었을까? 또 그러한 통합은 현대 과학에 어떠한 변화를 낳았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선 물리학이 존재하기 이전의 모습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19세기 이전, 물리학은 존재하지 않았다

18세기 자연을 탐구하는 분야들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중 한 갈래는 역학, 수력학, 천문학 등을 아우르는 분야로서, 이 분야는 이미 고도로 수학화된 이론을 갖추고 있었다. 17세기 말 뉴턴은 운동의 세 가지 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통해 지상계와 천상계의 모든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이후 18세기의 재능 있는 수학자들은 뉴턴의 방법을 발전시켜 보다 복잡한 운동을 수학적으로 정교하게 다루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고무처럼 탄성을 지닌 물질의 복잡한 진동과 파동을 수학적으로 다루는 기법이 발전하는가 하면, 3개 이상의 천체가 상호작용할 때 나타나는 미묘하고 복잡한 궤도 운동을 뉴턴의 만유인력에 기반해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천체 역학이 고도로 발전했다.

그에 비해 전기, 자기, 열, 빛, 소리 등의 분야에서는 정립된 이론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설명되어야 할 현상조차 충분히 정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이들 분야에서는 새로운 실험적 사실을 발견하고 축적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연구 활동이 되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각 분야마다의 실험은 점점 체계화되었고, 그에 따라 실험적 지식도 상당부분 축적되었다. 전기 분야의 경우, 정전기 발생 장치와 함께 생성된 전기를 모아둘 수 있는 라이덴병(일종의 축전기)이 만들어짐으로써 전 유럽에 걸친 연구자들은 동일한 실험 기구를 가지고 비슷비슷한 전기 실험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온도계가 발명되면서 열 분야의 연구자들은 혼합물의 온도가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대한 실험을 반복하며 서로의 실험 결과를 교류했다.

18세기 후반까지 수학적인 분야와 실험적인 분야 사이에는 큰 교류가 없었다. 수학적인 분야는 대학에서 교육받은 전문적인 수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반면, 실험적인 분야는 주로 대학에 속해 있지 않은 아마추어들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중에서도 전기 실험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놀이가 되었는데, 전기를 모아둔 라이덴병에 바늘이나 손을 가까이 가져가 방전 스파크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직접 대전시킨 후 그와 ‘전기 키스’를 하는 등의 감전 놀이는 그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일부 순회 강연가들은 이러한 실험을 이용해 대중들에게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돈과 명성을 얻기도 했다.

전기 소년. 서커스처럼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했던 18세기 전기 시연의 한 장면으로, 한 사람(B)이 정전기 발생 장치의 손잡이(A)를 돌려 장치의 유리구(C)와 닿아 있는 소년(E)을 대전시키고 있다. 적당히 대전된 소년이 손을 뻗어 절연체 위에 서있는 소녀(G)의 왼손에 가까이 가져가면 두 손 사이에서 스파크가 튀면서 소녀도 함께 대전된다. 스파크가 튀고 나면, 소녀의 오른손 아래에 놓여 있던 종이조각들(H)이 손에 끌려 올라가게 된다.

수학자들이 실험적 분야를 다루다

18세기 후반, 서로 떨어져 있던 수학적 분야와 실험적 분야 사이에 하나의 연결 고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학적인 재능을 갖춘 프랑스의 학자들이 실험적 분야의 현상들을 정량적으로 다루는 동시에 그것을 수학적 이론으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1785년 쿨롱은 대전된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과 척력이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과 똑같은 형태의 역제곱 법칙을 만족시킨다는 것을 정밀한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한편 천체 역학의 권위자였던 라플라스는 천체 역학에 쓰인 방법을 여러 다른 현상에 확장하기 시작했다. 천체 역학이란 기본적으로 천체 사이의 거리에 의존하는 만유인력을 통해 천체의 운동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분야로서, 라플라스는 이를 확장하여 모세관 현상이나 빛의 굴절과 같이 복잡한 현상에 대해서까지 입자들 사이의 거리에 의존하는 특별한 인력과 척력을 가정하여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쿨롱과 라플라스의 성공은 다른 연구자들이 여러 실험적 분야를 수학화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포병학교 시절 나폴레옹의 스승이기도 했던 라플라스는 나폴레옹 혁명 정부에 의해 설립된 엘리트 교육기관 에콜 폴리테크닉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학사원의 공모 제도를 통해서도 실험적 분야의 다양한 현상들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라는 문제를 출제하여 창의적인 해법을 모집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1820년 무렵에는 거의 모든 실험적 분야마다 그에 대한 기본적인 수학 이론이 마련될 수 있었다. 전기 현상은 포아송에 의해 물체 표면을 따라 흘러 다니는 (+)와 (-) 두 종류의 전기 입자들의 다양한 배치에 따른 원거리력의 결과로 분석되었고, 자석의 자기력 역시 자석의 양극에 밀집해 있는 두 종류의 자기 입자 사이에 작용하는 원거리력의 결과로 분석되었다. 한편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입자로 여겨져 왔던 빛은 프레넬에 의해 탄성 매질의 진동에 의해 전파되는 파동이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분석되었으며, 비슷한 시기 푸리에는 열 전도 현상을 수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열의 흐름이 공간상의 온도 차이에 비례함을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각 실험적 분야마다 그것을 기술하는 수학적 이론이 이처럼 별개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각 분야로 나뉘어진 수학적 이론들로는 각 분야 사이의 연관을 통합적으로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힘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외르스테드의 실험
19세기 유럽의 많은 자연철학자들은 한 종류의 힘을 이용해 다른 종류의 힘을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1820년 덴마크의 물리학 교수 외르스테드는 전기와 자기의 연관성을 밝혀낸 유명한 실험을 선보였다. ‘외르스테드 효과’라고도 불리는 그의 실험에 따르면, 도선 근처에 놓인 자침은 도선에 전류를 흘릴 때마다 움직였다. 이는 수많은 힘의 변환 사례 중 하나에 불과했다. 1800년 볼타에 의해 발명된 전지의 양 금속판에서는 전류가 흐르는 동안 화학 분해가 일어났는데, 이에 주목한 영국의 데이비는 볼타의 전지가 화학적 친화력을 전기로 변환시켜주는 장치라고 주장했다. 한편 외르스테드의 발견에 고무된 독일 프로이센의 제베크는 열을 이용해 자기 현상을 만들어내려다가 대신 전기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1830년대 발명된 사진술 또한 힘의 한 종류인 빛이 화학적 힘으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벤자민 톰슨은 대포를 깎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러한 마찰열은 운동이 열로 변환되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러한 발견을 주도한 실험가들은 대부분 독일의 ‘자연철학주의’라 불리던 낭만적 사상을 공유하고 있었다. 독일의 시인 괴테를 비롯한 자연철학주의의 옹호자들은 자연이 통일되어 있으며 자연의 모든 힘들이 상호 변환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주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취급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은 라플라스 방식의 수학적 입자론에 대해 너무 메마른 이론이라고 비판하곤 했다. 이런 관점 때문에 외르스테드는 전기와 자기의 연관성을 실제로 발견하기도 전에 그러한 연관이 자연에 실재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에게 그것은 단지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힘의 변환 문제가 낭만주의 사상가들만의 관심거리였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19세기 유럽 전역에는 힘의 변환 장치가 도처에 널려 있었는데, 유럽의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던 증기기관은 바로 열을 기계의 동력으로 바꾸어주는 대표적인 힘의 변환 장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증기기관의 효율을 계산하고 그 효율을 높이는 문제는 산업과 경제의 핵심적인 문제에 해당했다.

패러데이의 전자기 회전 장치
기계의 동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은 열뿐만이 아니었다. 1821년 패러데이는 전자기 회전 장치(일종의 전동기)를 제작함으로써 전기와 자기를 결합하면 동력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번에 그는 움직이는 자석을 이용해 전선에 전류를 만들어냄으로써 운동과 자기가 결합하면 지속적인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음을 보였다. 즉 그는 발전기를 발명했던 것이다. 그의 장난감 같은 장치가 실제 산업 현장에 곧바로 응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은 패러데이의 장치를 발전시키면 증기기관처럼 유용한 일을 수행하는 새로운 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기대했다.

이처럼 힘의 변환 문제가 철학적이면서도 경제적인 관심거리가 되자, 그 변환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인 시도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아이디어는 하나의 힘(예컨대 전기)이 다른 힘(예컨대 자기나 열)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소비되며 그에 따라 전체로서의 힘이 보존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당시 자명한 명제가 아니었다. 예컨대 증기기관을 연구했던 프랑스의 카르노는 증기기관에서 일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열이 소비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힘의 전환과 보존을 정량적으로 보여준 인물은 바로 영국의 줄이었다.

에너지로 하나가 되다

1830년대 영국의 줄은 전동기를 설계하고 그 경제적 효율을 측정하는 문제에 힘을 쏟고 있었다. 특정한 일을 만들어내는 데 가마에서 얼마나 많은 연료가 소비되는지를 통해 증기기관의 효율을 측정하듯이, 그는 전동기가 일정한 양의 일을 수행하는 데 전지에서 얼마나 많은 금속이 소비되는지를 측정했다. 전동기의 경제적 효율에 관한 여러 실험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의 관심은 일반적인 힘과 일의 연관성에 관한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리고 이는 열과 일 사이의 정량적 관계를 밝히는 그의 유명한 회전 날개 실험(paddle wheel experiment)으로 이어졌다.

줄의 회전 날개 실험 장치
1845년 그는 물통 안에 회전 날개를 설치한 후 그와 도르래로 연결된 추를 낙하시켰다. 추가 낙하하면 물통 속의 회전 날개가 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물의 온도가 높아졌다. 즉 일이 열로 변환된 것이다. 이러한 변환 과정은 정밀하게 측정되었는데, 무게 1파운드의 물의 온도를 화씨 1도만큼 올리기 위해서는 무게 890파운드의 물체를 1피트 높이에서 낙하시켜야 했다. 줄은 이러한 열과 일 사이의 정량적 관계를 ‘열의 역학적 등가량’이라고 불렀는데, 그는 자신의 실험에서 높은 곳에 있던 추가 낮은 곳으로 떨어지며 일을 수행한 만큼 열이 생산되듯이 증기기관에서는 높은 온도에서 낮은 온도로 떨어지며 열이 소비된 만큼 일이 생산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줄은 자신의 실험이 신이 창조한 세계의 질서를 보여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신에 의해 창조된 힘과 물질은 더이상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었다. 따라서 겉보기에 어떤 힘이 새로이 생성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사실 그 힘은 다른 힘으로부터 전환된 결과일 뿐 절대로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실험 과정에서 생성된 열은 추가 낙하하면서 일을 수행한 결과이며, 증기기관이 만들어내는 동력은 열이 변환된 결과이며, 전동기가 만들어내는 동력은 전기력이 변환된 결과였다.

당시 젊은 나이에 글래스고 대학의 자연철학 교수가 된 톰슨은 ‘열과 일의 상호 변환’ 및 ‘힘의 보존’이라는 줄의 신념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는 ‘에너지’라는 개념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정의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열을 비롯해 전기, 빛 등 다양한 힘이 가진 에너지는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으로 측정되고 비교될 수 있으며, 그 에너지는 물리적 상호 작용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될 뿐 소멸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의 에너지는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다른 종류의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일까?

세계를 기계장치로 구현하다

톰슨을 비롯한 에너지 과학의 옹호자들은 여러 물리적 작용 사이의 에너지 전환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들에게 에너지 전환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모든 물리적 작용을 하나의 역학적 시스템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열, 전기, 자기, 빛 등의 다양한 현상들을 물질의 여러 운동 형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에너지 전환이란 것은 한 가지 형태의 운동이 다른 형태의 운동으로 변화 및 전달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열의 본성을 기체 분자와 같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입자들의 운동으로 파악한다면, 열이 운동을 만들어내는 현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들의 운동이 일반적인 물체에 전달되어 눈에 보이는 운동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여러 현상을 물질의 운동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맥스웰의 전자기장 이론에서 최고조에 다다랐다. 1861년 맥스웰은 크고 작은 두 종류의 기어가 끊임없이 맞물려 있는 기계장치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다고 상상해보자고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따르면, 큰 기어의 회전 운동은 자기 작용을 의미했고, 그 사이에 끼워진 작은 기어들의 직선 운동은 전류 작용을 의미했다. 두 기어는 서로 맞물려 있으므로, 하나의 운동은 다른 하나의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맥스웰의 기계장치 모형은 전류와 자기가 서로 전환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역학적으로 설명해주었는데, 그에 따르면 전류와 자기의 상호 변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기어와 큰 기어의 운동이 상호 전달됨으로써 일어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맥스웰의 기계장치 모형은 전자기 현상에 대한 정성적인 이해를 제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수학적으로도 정교한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는 기계장치 모형의 운동을 다루는 데 고도로 발전된 역학의 수학적 기법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에너지 개념과 기계장치 모형, 그리고 역학의 수학적 기법을 종합하여 모든 전자기 법칙을 정교하게 유도해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기계장치에 탄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탄성 진동에 의해 만들어지는 파동의 존재를 예측할 수 있었는데, 그는 정립된 역학 이론에 기초하여 그 파동의 전달 속도를 계산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값은 빛의 속도와 같았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는 빛이 곧 전자기파임을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1887년 헤르츠의 실험을 통해 극적으로 입증되었다. 이로써, 전기와 자기 그리고 빛은 하나의 역학적 시스템으로 완전히 통합되었다.

결론

물리학은 19세기에 하나의 분야로서 탄생했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물리학이 하나의 분야로 통합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기여했다. 우선 19세기초 프랑스를 중심으로 각각의 실험적 분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수학화되면서, 이 모든 분야들은 수학적 기법을 교육받은 사람에 의해 함께 다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 둘째로 각 분야 사이의 상호 연관의 사례들이 끊임없이 밝혀짐에 따라 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틀이 필요해졌는데, 이는 ‘에너지’라는 새로운 개념을 낳았다. 셋째로 에너지를 통해 연결된 분야들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포괄하기 위한 시도가 고도로 발전함에 따라, 모든 물리적 작용은 하나의 ‘역학적 시스템’으로 정교하게 통합되었다.

그러나 물리학은 그 완성과 동시에 균열을 일으켰다. 열, 빛, 전기, 자기 분야와 역학 사이의 통합은 상당히 성공적이었지만, 그 성공은 도리어 각 분야와 기존 역학 사이의 미묘한 불일치를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열과 빛을 역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생긴 작은 균열은 양자역학을 낳았고, 전자기와 빛을 역학적으로 설명하면서 생긴 작은 균열은 상대성 이론을 낳았다. 즉 물리학은 자신의 완성과 동시에 자신의 토대를 무너뜨린 셈이다.

참고 문헌

  • 피터 하만 지음, 김동원․김재영 옮김, 《에너지, 힘, 물질: 19세기의 물리학》 (서울: 성우, 2000)
  • 피터 보울러․이완 리스 모러스 지음, 오철우 옮김, “에너지 보존”, 《현대 과학의 풍경 1권: 과학발달의 역사적 사건들》 (서울: 궁리, 2008), 4장.
  • 김영식․임경순 지음, 《과학사 신론》 (서울: 다산출판사, 1999), 18, 19장.

더 읽을거리

과학의 역사와 문화

  1. 17세기 과학혁명의 지적, 사회적 의미 (김봉국)
  2. 18세기 라부아지에와 화학연구의 새로운 방법 (오승현)
  3. 19세기 물리학의 탄생 (정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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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과학의 제도적 기반 (정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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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산업혁명을 통해 본 과학과 기술의 상호작용 (서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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